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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를 보고 <삼국지>패러디를 운운했다(2009/07/14 - [TV를 말하다] - '선덕여왕' 너 마저 삼국지 패러디냐?). 그리곤 뭔가 찝찝했다. 어느 순간 퍼뜩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15화에서 비쳐진 미실의 면모를 보자. 그녀는 모습만 여성이지. 정치가로서 전략가로서 대단하다. 그녀는 못하는 것이 없다. 15화에서 비취지만 그녀는 다른 나라의 말에도 능통하고 각종 악기를 두루 섭렵했다. 미생공도 엄청난 악공을 가진 것으로 나오는데, 미실이 그에 버금가면 갔지 못할 리가 없다.

이전에 유리잔을 두드리며 연주하던 그녀를 떠올려보라! 그뿐인가? 그녀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인재는 과감하게 받아들인다. 덕만에게 자신이 사람이 되라고 갖은 아량을 베푸는 것 또한 좋은 예다. 그녀는 인간을 악하다고 생각하고 철저하게 자기 필요에 의해 쓰는 사람이다. 그러나 또한 여성의 감수성을 갖고 있어서 자신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10여년이 넘도록 사막을 헤매고 마침내 눈까지 먼 이를 위해 눈물 흘릴 줄 아는 군주다.

그 누군가가 떠오르질 않는가? 그렇다. <삼국지>의 또 다른 주인공 조조가 떠오른다. 조조는 마치 악의 화신인 것 처럼 <삼국지>에 묘사되어 있지만, 기실 따지고 들어가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환관 집안의 양자의 아들로 태어나 마침내 위나라를 세우고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장본인이다. 누구보다 과감한 판단으로 앞장서 난관을 헤쳐 나갔고, 똑똑했다. 그냥 똑똑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밤에는 손자병법을 읽으면서 주석서를 만들었고, 시서화 능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가 아들 조식과 함께 중국의 시풍을 완전히 바꿔놓은 인물이다. 그의 계략은 참모진을 능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그를 높이 평가하는 이들은 참모진은 단순히 참고만 했다고 여길 정도다.

또한 인재라고 생각되면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인물까지 과감하게 받아들인 인물이다. 대표적인 예가 나중에 집금오를 지낸 모사 가후다. 그는 한때 자신의 주군인 장수를 위해 조조를 죽을 위기에 몇 차례 밀어 넣은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가후를 받아들임에 있어 그는 털끝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가? 정말이지 비슷하지 않는가? 언젠가 그는 관상을 잘 보는 이가 “난세엔 간웅이요, 치세의 능신이다‘라고 했을 때 매우 호쾌하게 웃으면서 받아들였다.

그는 몸을 떨치고 일어나 1백만 황건적 무리를 토벌해 자신의 아래에 두었고, 자신보다 몇배 큰 세력인 원소를 물리쳤고, 삼국 시대에 당할 자가 없는 맹장인 여포를 죽였다. 그가 토벌을 나선 이후로 그의 상대가 변변히 된 자는 없었다. 그런 탓에 나중에 동오를 정벌하고자 일어섰을 때, 손권의 신하들이 감히 항복론을 주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대단한 조조도 어쩌지 못한 인물이 둘 있으니, 첫 번째가 유비요, 두 번째가 손권이다. 그러나 손권은 아버지와 형의 유업을 이어받고 받은 것들이 있다는 점에서 유비와 차이가 매우 크다.

누상촌에서 돗자리나 짜서 팔아먹던 유비는 근본을 알 수 없는 천한 자였다. 물론 한왕조의 후예라고 떠들어대지만, 당시는 혼란기라 누구도 진실을 알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따라서 그 정도 위증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유비가 대단한 것은 그 것 하나를 내세워 결국엔 삼국의 하나인 촉을 세웠다는 점이다. 송곳하나 세울 땅이 없던 그가 일국의 황제가 된 점은 높이 평가되어 마땅하다.

그럼 유비와 조조를 비교해보자. 둘의 행보는 전혀 다르다. 조조가 연일 적을 격파하며 승승장구할 때 유비는 자신의 세력을 둘 영지하나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녔다. 조조가 힘을 기세를 세울 때 겸손과 부드러움으로 사람들에게 인심을 쌓았다. <삼국지>에서 조조와 유비가 대결 양상으로 그려지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두 사람의 세계관과 처세술이 전혀 다른 탓도 크다.

<선덕여왕>으로 돌아가 보자. 미실은 분명 훌륭한 군주다. 엄청난 지식과 능력을 가진 것에 더해 적재적소에 사람을 부릴 줄 안다. 단순히 위엄이나 재물로 사람의 휘어잡지 않는다. 아무리 자신의 사람이라해도 느슨해지지 않도록 경쟁을 부추기고 심하다고 생각되면 멈추게 하고 풀어준다. 그야말로 인재를 활용하는 측면에서 천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의 덕만을 보자! 그녀는 초창기의 유비와 비슷하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미실에게 당당하다. 한번도 비굴하게 굴거나 겁을 먹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인간이 악하냐?’라는 선문답을 물었을 때, 해와 물의 예를 들며 자신의 철학관을 논했다. 이건 대사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한 시대의 철학이 중요한 것은, 나라의 군주의 철학이 중요한 것이 그것이 기반이 되어 백성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무릇 인간을 악하다고 본다면 법가처럼 법을 엄히 세워 위엄과 공포로 사람을 다스릴 것이다. 그러나 덕만처럼 본다면 사람들의 선한 본성을 끌어내는 방향으로 사람을 다스릴 것이다.

두 나라 모두 부유하고 잘 살아간다 해도 두 군구가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들의 생각과 행동은 전혀 달라질 것이다.

미실과 덕만의 서로의 철학을 논하는 장면은 그래서 중요하다. 원인을 분석하면 그에 따른 해결책은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미실이 덕만에게 거짓 편지를 준 부분을 보자. 여기서 작가는 능수능란하게 반전을 준비한다. 덕만은 천명공주와 김유신에게 철저하게 의심을 받는 듯하게 행동한다. 허나 결말부에 이르면 미실의 계책을 이미 눈치챈 덕만이 역이용한 거다.

여기서 한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포를 물리치고 장안으로 함께 유비와 돌아온 조조는 황제께 말해 그에게 높은 벼슬을 주고 수도에 머물게 한다. 그러자 순욱 등이 나서 간한다. “유비는 누구 밑에 있을 사람이 아닌데, 왜 높은 벼슬을 주고 이곳에 머물게 하십니까?”(이 부분에서 15화에서 천명공주의 측근이 덕만의 관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겹치지 않는가?) 조조는 웃으면서 “나도 그 사람이 내 밑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러나 이곳에 있으면 뭘 할 수 있겠는가? 황제는 말이 좋아 황제지 아무런 힘이 없다. 여긴 모두 내 사람이고 내 영토다. 이곳에서 유비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다”란 식으로 말한다. 그러자 그의 모사들은 조조의 깊은 심중을 헤아리고 물러난다.

그때쯤 유비는 황숙이란 칭호를 받고도 시골에서 밭이나 치며 똥지게를 졌다. 장비와 관우는 못마땅했다. 어느날 조조는 갑자기 유비를 불러 후원에서 술을 마시다가 취한척 하며, 용이야기를 꺼낸다. 용의 기상은 영웅과 비슷하다고 하며 시대의 영웅을 논한다. 그리곤 유비한테 슬며시 이 시대의 영웅은 자신과 유비밖에 없다며 슬며시 속을 떠본다. 난감해하던 유비는 때마침 친 번개에 급히 놀란 척 하며 조조를 안심시킨다. 그리고 서주근처로 도망가는 원술의 패잔병을 핑계로 병사를 청해 장안을 빠져나가고, 조조는 나중에 모사들이 일깨워주고 나서야 자신이 속았음을 알게 된다.

미실과 덕만은 <삼국지>의 조조와 유비에 비교하기 위해 작가는 일부러 조조가 마초진영을 이간질 시켰던 고사를 인용한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15화의 내용은 상당부분 맞아 떨어진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내세우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라고 주장한다. 사실 현재의 미실 주위엔 마치 조조가 그랬듯 엄청난 인재들이 포진해있다. 한신에 비견할 만한 설원공, 권력을 장악한 남편 세종. 나라의 기상인 화랑은 물론이요, 심지어 백성의 믿음인 신당까지 그녀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미실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악하다고 생각하고 갖가지 권모술수로 사람을 제어하고 지배한다.

<선덕여왕>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군주상은? 유비에 비견할 만한 덕만의 ‘덕치’가 될 것이다. 덕만은 자신의 대사에서 밝혔지만 사람을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다고 보았다. 다만 홍수 대비를 위해 치수를 잘 해야 하듯, 사람도 마찬가지로 다스려야 한다고 보았다. 이건 현재 주군으로 모시는 천명공주는 물론 <선덕여왕>의 훌륭한 왕으로 소개된 진흥왕조차 보여주지 못한 철학이다.

따라서 <선덕여왕>에서 덕만은 유비와 조금 다르게 표현된다. 우선 그녀는 교역이 활발한 사막지역에서 온갖 물문을 보고 익힌 사람이다. 따라서 지(知)에서 일단 상대가 된다. 또한 ‘정광력’을 가지고 있는 장면이 나왔지만, 현재 ‘사다함의 매화’를 통해 천문지리에 통달한 미실과 훗날 신통력 대결(?)을 펼치게 될 것이다. 미실이 일부러 관대한 척 자신을 꾸며 사람을 다스리는 것도 대단한 거지만, 마음으로 우러나와 사람을 대하고 다스리는 것은 더욱 훌륭한 것이다.

우리는 전자를 최선이라 하고, 후자를 이상이라 표현한다. 만약 <선덕여왕>의 제작진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쳐있다면 15화는 단순한 삼국지의 패러디가 아니라 시대를 관통할 주제와 세계관이 집약된 엄청난 방영분이라 할 수 있다.

과연 15화가 단순히 삼국지의 패러디였는지 아님 위에 열거한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었는지는 나중에 확실하게 밝혀질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방영을 기다려야겠다.




Posted by 주작 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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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선덕여왕 - 인간은 처음부터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

    Tracked from 그의 날이 오면 2009/07/16 22:11

    내가 요즘 가장 기다리는 드라마는 바로 30%가 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선덕여왕>이다.카리스마 넘치는 고현정의 악역 연기에 사람들은 연일 놀라고 있다.얼굴 예쁜 걸로만 버텨온 연예계 생활이 아니였음이 이번 작품을 통해서 더욱 더 확실히 밝혀졌다.그런데 이요원의 연기는 기대에 못 미치는 건 사실이다. <외과의사 봉달희>의 캐릭터 그대로를 <선덕여왕>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좀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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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정/삭제 댓글
    장문정 쌤 화이또 2009/07/14 23:15

    짱개 소설 . 삼국지의 조조유비.
    웃긴다
    m본부 남 나라 소설 갖고 신라 역사를 왜곡 하냐.
    바로 알고 드라마 만들어라.

  2. 수정/삭제 댓글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15 05:58

    16화의 반전이 더 멋지더군요. 미실이 이미 덕만의 계책을 모두 꿰뚫어보고 있었다는... 옷을 벗어라든지, 로마자를 알고 있다든지, 칠숙의 보고, 이런 것을 종합해보면 미실은 덕만의 정체에 훨씬 가깝게 다가간듯한 느낌이 드네요. 그러나 결국 미실은 미실의 꾀에 빠질 것이라는... 보통 드라마들이 그렇더군요. 제가 드라마에 관해서는 거의 광적 수준이라... 우리 마누라가 같이 드라마 보다가 저를 쳐다보면서 그런답니다. "고마 작가로 나서보시지." 물론 빈정대는 소린 줄은 알지만, 드라마를 오래 보다 보면 대충 신통력 같은 것이 생기게 되는 법이지요. ㅎㅎ

    • 수정/삭제 댓글
      Favicon of http://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朱雀 2009/07/15 10:28

      말씀에 적극 동감입니다. ^^

  3. 수정/삭제 댓글
    보보 2009/07/15 10:23

    주작님글을 재미있게 잘 읽고있습니다.
    보통 댓글은 남기지 않는데 살짝 인사글은 남겨봅니다.

  4. 수정/삭제 댓글
    게임만해 2009/07/16 23:05

    아 이글 진짜 잘읽었습니다. 15화를 삼국지에 비유해서 이렇게나 멋진글을

    보게되었습니다. 요즘 매주 월화 밤에 선덕여왕을 기다려서 보는데

    이번주 16화에서 미실이 모든것을 꿰뚫고있었을줄은 정말 반전급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