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21세기 초강대국?!

중화사상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다?

朱雀 2011. 1. 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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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를 읽어보지 않은 이라도,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은 워낙 유명해서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보는 순간 누구나 ‘모자’라고 생각한 어린 왕자의 그림은 사실 ‘코까리를 삼킨 보아뱀’이란 무시무시한 내용을 담고 있다. 생 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이런 그림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기를 주문’하고 있다.

 

<어린왕자>가 1943년 작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것은 단순히 어린왕자의 모험을 그린 아름다운 소설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는 중요한 것들을 환기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중화사상이란 게 있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며 모든 것이 중국을 중심으로 하여 전 세계에 퍼져 나간다고 믿는 중국의 민족사상”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러니까 진한 꽃향기가 퍼져나갔듯이 중국의 뛰어난 문명이 주변국으로 퍼져나갔다는 이야기다. 얼핏 들으면 그런 것 같다. 몽고족이나 만주족처럼 중원대륙을 차지한 이민족 정복왕조가 결국 중화문물을 받아들여, 스스로 ‘한족화’되었다는 설명을 우린 여러 책에서 보아왔고 그동안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 들여왔다.

 

그런데 최근 읽은 <20세기 중국사>에선 이에 반발했다. 거기선 한발 더 나아가 ‘의심해보라’고 주문했다. 정작 제일 중요한 이유에 대해선 말해주지 않았다. 덕분에 지난 몇주간 머리 나쁜 필자는 무척이나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몇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우선 생각해보자. 몽고족과 만주족은 기마민족이자 유랑민족이었다. 한마디로 어디서 정착해서 사는 게 아니라, 초원을 찾아다니며 떠돌아다녔다. 그런 민족에겐 애시당초 농경민족처럼 문명이 발달할 수 없었다. 대신 바람처럼 빠른 기마술과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강인한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몽고족과 만주족은 그런 강점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몽고족과 만주족이 중원대륙을 통일하여 각각 원나라와 청나라를 세운 것은 한족에겐 참기 힘든 치욕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선 야만족에 불과했으므로- 그래서 원나라 100년 내내, 청나라 300년 내내 한족은 어떻게든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중원대륙은 워낙 넓고 지금의 영토와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서 오늘날 중국인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지를 강요당하게 된다. 그들이 청나라를 무시하는 순간, 티베트를 비롯한 자치구는 독립을 요구하게 되고, 중국대륙은 다시 분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는 현대 중국으로선 상상조차 끔찍한 일이다.

 

따라서 중화사상은 중국인들을 하나로 묶는 유일한 방패막이 이론이다. 생각해보자! 원나라와 청나라가 중국문물을 그대로 받아들였던가? 물론 원나라와 청나라는 각각 한족을 다스리기 위해, 관료제를 비롯한 한족의 문명을 받아들이긴 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효율적인 측면에서였다.

 

잘 아는 대로 몽고족은 색목인들을 중용하고, 한족을 차별화해서 그들이 요직에 진출하는 것을 막았다. 청나라 역시 만주족을 대거 요직에 등용하고, '과거제'를 적절히 이용해서 다수의 한족이 그들을 따르게끔 만들었다.


몽고족이나 만주족 모두 정치나 관료체계를 비롯한 몇몇 부분을 빼놓고는 복식부터 시작해서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고자 애썼으며, 실제로 그들은 거의 한족화되질 않았다. 따라서 원나라와 청나라의 예만 보아도 그들은 중화사상의 ‘좋은 예’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원나라와 청나라 후기에 들어서면 몽고족과 만주족이 타락해서 말타는 법을 잊고 한족의 풍습에 젖어 향락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어느 나라건 말기에 들어서면 흔히 보이는 행동이다. 오히려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 ‘중화사상’이 오히려 정신을 좀먹고 나라를 망치는 ‘나쁜 예’라고 반박할 수 있다. 원나라와 청나라의 강성기는 그들이 자신의 정신을 가장 잘 지켰을 때 였으니까.

 

정리해보자! 몽고족과 만주족이 중국 문명을 받아들인 것은, 유목민족이자
정복왕조로서 한 번도 관료제 등을 가져보지 못한 처지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만약 조선을 비롯한 다른 대안을 알았다면, 충분히 그쪽을
참고할 수도 있다-

 

두 번째 강희제의 예를 들 수 있지만, 정복자로서 피지배계층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들이 그토록 떠받드는 공맹을 비롯한 성인들의 가르침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소수에 불과한 정복자들이 다수의 피지배계층을 다스리기 위해서 이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세 번째 효율적인 측면이나 여타 측면에서 봤을 때, 당시 중국 문명은 세계 다른 문명과 비교해도 고도의 문명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따라서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위에서 지적했지만, 쿠빌라이 칸이나 강희제 등의 위대한 황제들은 그들이 한족화될 경우, ‘멸망’하리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들이 각각 게르에서 생활하고, 변발을 고수한 것 등은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중화사상’은 분명 주변국가를 무시하는 중국의 자존심이 섞여있지만, 동시에 이민족에게 수시로 정복당한 역사를 지닌 중국에게, 그들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방법이자 자신들의 정통성과 명분을 세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기도 하다.

 

우리의 ‘단일민족’처럼 그들의 ‘중화사상’ 역시 대륙을 하나로 묶기 위한 허황된 이야기일 뿐이다. 중화사상은 ‘귀에 걸며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그들의 역사와 행동을 합리화 시켜주는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언뜻 보면 모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처럼 섬뜩하고 끔찍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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