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21세기 초강대국?!

유방은 어떻게 항우를 이길 수 있었는가?

朱雀 2011. 4. 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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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위키백과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이 격돌한 <초한지>를 어린 시절 읽으면서, 어떻게 유방이 항우를 이길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항우는 일단 명문가 출신이었다. 게다가 인품도 고결했으며, 예의가 있었다. 반면 유방은 촌구석 출신으로 변변한 이름조차 없었다.

 

그의 이름인 ()’은 훗날 그가 지은 것이며, 실제 그의 이름은 유계였다. 그런데 그 당시 ()’는 막내에게 붙여주는 것이었다. 우리로 치면 유씨네 막내가 유방의 원래이었다. 얼마나 그의 출신이 한미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항우는 70번의 전투에서 단 한번도 진 적이 없다. 9척 장신에 새까만 오추마를 타고 전장에 나서면 적병들이 그를 보는 것만으로 두려워서 도망칠 정도였다. 그의 마지막 전투를 보아도 수천명을 다 부러진 칼 한자루로 죽일 정도로 그의 힘은 천하를 덮고 남음이 있었다.

 

반면 유방은 뭐 하나 변변한 능력이 없었다. 한신처럼 군사를 일으켜서 싸울 줄도 몰랐고, 소하처럼 국가재정을 꾸릴 능력도, 장량처럼 계책을 꺼낼 줄도 몰랐다. 전투에 나가서 진적이 한두번이 아니요, 항우에게 쫓겨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함양에 항우보다 먼저 도착했지만, 항우의 기세에 밀려 왕을 양보해야 했고, 궁벽한 한중으로 들어가 훗날을 기약해야만 했다. 출신이 한미한 탓인지 유방은 주변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교만한 모습도 많이 보였다. 역이기 같은 서생이 찾아왔는데도, 양옆에 여자를 끼고 그들이 발 닦게끔 했다. 훗날 천자가 되어서도 신하들과 하도 격의없이 놀아서, 보다못한 신하들이 궁중예의를 만들어서 신하들이 받들게 하자, ‘이래서 황제가 좋구나라고 말할 정도 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정잡배에 불과했던 유방은 천하의 주인이 되고, 항우는 패배자가 되었을까? 먼저 그것은 용인술에서 찾아야 한다. 항우는 당대의 영웅이었다. 당시 최강을 자랑하는 진나라 군대조차 두려워할 정도로 용맹과 담력이 뛰어났다. 그러나 그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다. 일례로 진평과 한신은 원래 그의 수하에 있었다. 그러나 항우가 그들을 알아주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유방측으로 자리를 옮겨 의탁했고, 각기 능력을 펼쳐서 결국 그를 역사의 패배자로 만들었다.

 

여기선 항우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는 귀족출신답게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깔봤다. 자신과 천하의 패권을 놓고 다툰 유방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의 말을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가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따랐던 범증조차, 유방측의 이간책에 말려들어 자결을 권할 정도로 그는 어리숙했다.

 

반면 유방은 출신이 한미한 탓인지, 주변에 누가 오던지 귀히 대접해주었다. 덕분에 귀족출신인 장량, 시정잡배인 한신, 산적출신인 영포와 팽월 등등 다양한 이들이 그의 곁에서 보좌했다. 심지어 유방은 그들의 과거조차 용인해주었다. 자신을 배신했어도 참고 넘어갈 정도였다.

 

이중톈은 또한 유방이 비록 건달출신이지만, ‘천하의 지배자가 될 정도로 큰 인물로 평가한다. 얼핏보면 유방은 우습게 보인다. 아는 것도 없고, 인격도 형편없으며, 훗날 영포-팽월-한신등의 공신들을 척살하는 모습을 보면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란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정도다.

 

그러나 돌이켜보자! 유방이 항우와 패권을 다툴 시기엔 모든 것이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항우에게 번번히 패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유방은 그런 상황에서도 낙담하지 않고, ‘내일은 어떻게 되겠지라는 특유의 낙천성을 발휘했다. 여기엔 그가 잃은 게 없는상황인 탓도 있다.

 

가진게 많은 사람일수록 전전긍긍하게 되고, 중요한 순간에 재빠른 판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반면, 가진 게 없는 사람은 몸뚱아리 하나기 때문에 밑져봐야 본전이란 심정으로 도박을 감행할 수가 있다. 물론 이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만큼 큰 그릇이어야만 가능하다.

 

또한 유방은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장량-소하-한신 같은 인물들에게 모든 업무를 맡기고 일임했다. 이것도 쉬운 대목이 아니다. 당시는 혼란기라 병권을 지닌 자가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다. 또한 재정을 맡은 이가 공금을 횡령하는 일이 너무나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유방은 누구에게 맡기면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유방도 사람인데 어떻게 의심이 없었겠는가? 다만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따지고 들어봤자 득될게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한 사람이 아쉬운 판국에 그런 사소한 것을 가지고 싸워봤자 오히려 항우만 좋은 일 시킬 뿐이었다. 유방이 그것을 생각했든 무의식적으로 행동했든 그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반면 항우는 다른 이에게 무슨 일을 맡기고도 의심을 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가장 신임했던 범증마저 의심할 정도였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리고 항우는 결단력이 너무 부족했다. 항우는 유방을 없앨 수 있는 기회가 숱하게 많았다. 그러나 모두 놓쳤다. ‘에이. 저련 녀석 없애봐야 뭐하겠는가? 나중에 없애도 돼?’라는 식으로 안이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항우는 70차례 전투에서지지 않으면서 가뜩이나 높은 자존심이 태산처럼 높아져 버렸다. 그래서 마지막 전투에서 권토중래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고사에 전해져 내려오는 것처럼 그를 흠모한 뱃사공이 그를 위해 배를 나룻터에 대놓고 있었다. 당시에 나룻터에는 오직 그 배밖에 없었기 때문에 항우가 만약 그 배를 탔다면 한나라 군사들이 쫓아올 수 없었다. 따라서 얼마든지 힘을 키워서 다시 유방과 격전을 치룰 수 있었다.

 

그러나 항우는 그러지 않았다. 말로는 초나라 사람들에게 면목이 서지 않아서라고 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오는 상황에 처했을 때, 그가 걱정한 것은 놀랍게도 우희였다. 당장 망할 판국에 자신의 여자나 생각하는 꼴이라니. 그래가지고 어떻게 천자가 될 수 있었겠는가?

 

한나라 시조인 유방은 이전까지 왕조를 개창한 이들이 황족이거나 호족이었던 것과 달리 평민출신이었다. -재밌게도 명나라 주원장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오늘날 중국인들에게 끊임없이 추앙받는 한나라 유방이 큰 평가를 받는 것은 그의 출신성분에 따른 부분도 꽤 크다.

 

그렇다고 유방을 너무 우습게 보면 곤란하다. 그는 배움이 적었지만 그릇이 크고 남의 말을 귀담아 들으면서 그걸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조립하는데 성공했다. 그의 곁에는 장량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이들이 여러 가지 계책을 내놓았다. 지도자의 위치에서 그중에서 시의적절한 것을 받아들여 실행에 옮긴다는 것은 말이 쉽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유방은 거의 본능적으로 그런 일을 감행해서, 마침내 한나라를 개국하기에 이른다. 이는 그가 하늘이 내린 인물이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이다.

 

물론 훗날 그가 영포-팽월-한신등을 숙청하는 장면은 눈살이 찌푸려지는 대목 가운데 하나다. ‘토사구팽이란 한자성어를 만들어낸 이 장면도 그러나 정권안정이란 대목에 가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한다.

 

한신은 대장군으로서 그 능력이 탁월했다. 항우조차 어쩌지 못한 대단한 장군이었다. 따라서 유방이 그를 의심하고 경계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게다가 한신은 전쟁은 모르겠으나 정치적으론 우매한 인물이었다. 유방의 됨됨이를 파악한 장량이 초야에 묻혀 지내는 식으로 처신을 한 것에 비해, 수하에 병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이는 가뜩이나 의심의 고삐를 쥐고 있는 유방에게 더더욱 안 좋은 영향을 끼칠 뿐이었다.

 

한나라 개국 초기, 막강한 군사력과 뛰어난 장군인 한신을 처리하는 것은 제국을 튼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지일 수도 있다. 후손에게 보다 안정된 제국을 물려주고 싶은 것은 황제의 당연한 마음이 아니겠는가?

 

참고: <품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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