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맛기행

콩국수 한 그릇이 준 행복, ‘충무칼국수’

朱雀 2011. 6.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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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국수를 좋아하게 된 때가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단 것을 좋아했던 나는 새콤달콤한 쫄면을 좋아했다. 비빔냉면이나 물냉면까지는 어머니가 말아주면 맛있게 먹었지만, 콩국수는 그 심심한 맛에 이내 손사래를 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땐 당연한 일이었다. 희어멀건한 콩국에 소금 외엔 아무런 간이 없는 국수는 어린 나에겐 아무런 매력이 없었다. 그런 내가 몇 년 전부턴 콩국수를 스스로 찾게 되었다.

 

한여름이 되면 더위를 쉽게 먹기 때문에 늘 애를 먹으면서도, 내가 여름을 기다리게 된 것은 풋풋하면서도 달콤한 아오리 사과와 콩국수가 있기 때문이라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다.

한적한 시간대를 찾아간 탓에 손님은 나 밖에 없었다. '냉콩국수 개시'라는 반가운 푯말이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게 해주었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 순간을... 

생각해보면 콩국수는 참으로 간단한 음식이다. 그저 5-6시간 불러낸 콩을 곱게 갈아서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보관한 다음, 면을 살아서 넣어주기만 하면 끝이다. 물론 취향에 따라서는 계란을 비롯한 다양한 고명을 얹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콩국수는 그저 곱게 갈은 콩국물에 면을 얹는 것으로 끝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1800년쯤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콩국수는 서민의 음식이었다. 더운 여름날, 입맛을 잃기 쉬운 이들에게 콩국수는 시원하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별미였다.

 

그러면서도 각종 필수 아미노산과 단백질과 녹말 등이 포함된 균형 잡힌 영양 덕분에 지치고 피로해지기 쉬운 서민의 보양식으로 그만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양반들은 콩국수가 아니라 깻국수를 먹었다고 한다. 음식에서도 계급차이가 느껴진다고 생각하니 왠지 씁쓸해졌다.

 

그러나 콩국수는 콩이 가진 영양가 때문에 이젠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여름철 별미가 되어버렸다. 내가 찾아간 충무칼국수는 그런 의미에서 서민들이 편안하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일부러 한적한 시간대를 찾아간 덕분에 홀로 앉아서 콩국수를 맛보게 되었다. 반찬은 무친지 얼마 되지 않은 겉절이 김치 한 그릇이 전부였다. 시원하게 말린 콩국수와 김치 한 가지. 소박한 서민의 음식으로 안성맞춤인 상이었다.

 

명성이 자자한 충무칼국수의 콩국수를 드디어 시식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처음 느낌은 실망이었다. 특별한 맛을 기대하고 찾은 나에게 콩국수는 그저 담백함으로 찾아왔다.

 

그러나...시간이 지날수록 그 담백함은 내 마음 깊은 곳을 두드렸다. 거기에는 일반 국수집에서 느낄 수 있는 지나친 고소함이 없었다. 정말 심심할 정도로 담백하고 담백했다.

 

소금간을 해도 그다지 맛의 변화는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콩국수는 심심하다가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불린 콩외엔 거의 들어가는 게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요즘처럼 극단의 맛을 추구하는 현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음식인지도 모르겠다.

 

불닭처럼 매운 맛이 화공약품을 연상시킬 정도로 지독하게 맵고, ‘내장파괴 버거처럼 기름기가 넘치다 못해 폭발하기 일보직전인 극단의 맛을 추구하는 요즘엔 말이다.

 

그러나, 어디선가 읽은 것처럼 사실 음식의 맛은 담백함이 기본일지 모른다. 양념을 거의 하지 않은 상태에서만이 재료가 가진 본래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비록 소금간을 조금 하긴 하지만, 애초에 콩국수는 콩국과 밀면외엔 들어가는 게 없다.

 

거기에 비법이 있고 양념이 있다면, 그저 먹는 이를 염려하는 어머니의 손길과 정성이 있을 뿐일 것이다. 내가 충무칼국수에서 먹은 것은 아마도 그러한 맛이 아니었을까?

 

어느덧 충무칼국수의 담백함은 내 허기진 위장은 물론이요, 갑갑하고 정신없는 도시생활에 지친 내 영혼까지 말없이 위로해 주었다. 그저 맛집을 찾아온 어린 블로거에게 소박한 콩국수는 그렇게 한 조각 행복을 맛보게 해주었다. 고맙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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