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제대로 알고 비판하자!

삼성전자는 어떻게 세계를 매혹시켰나?

朱雀 2011. 7. 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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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인 제품으로 세계를 매혹하라!’ 이건희 회장이 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한 주문이었다. 그리고 94~95년 사이에 개발된 TV의 책임자로 TV 개발 경험이 전무했던 요시카와 료죠가 선발되었다.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라고 하고, 전혀 경험이 없는 인물을 책임자로 배정하다니! 얼핏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일 같다.

 

한번도 TV를 제작해본 적이 없던 그가 이런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새롭게 도입한 CAD/CAM 시스템 덕분이었다. 몇 차례 강조했지만 3차원 설계도가 생산 시설에 도입된 덕분에, 고도로 숙련된 이들이 아니라도 TV제조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료죠는 책임자이지 제품을 직접 만드는 이는 아니다-

 

아울러 요시카와 료죠는 기존의 TV 제작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보다 자유로운 관점에서 TV 제작에 임할 수 있었다. 일례로 그는 종래의 18개월 걸리던 개발 기간은 12개월로 단축시키고, 제조 원가도 30% 가량 절감시켰다. 이때 나온 TV가 바로 삼성전자의 독창적인 혁신 제품 1호로 알려진 명품 TV’! 이건희 회장은 인물을 알아보고 적당한 자리에 배치한 셈이라 할 것이다.

 

그후 1995~1996년에는 명품 플러스 1’이 개발되었다. TV는 당시 일본에서 인기를 끌던 와이드 TV의 대항마였다. 당시 국내 상황에서 와이드 TV를 내놓으면 위아래가 짜부된 영상을 보여줄 수 밖에 없어 제품으로서의 매력이 전혀 없었다. 한마디로 와이드 영상을 제대로 즐길 컨텐츠가 너무나 부족한 상황이었다.

 

-비싼 돈을 들여 TV를 장만했는데, 이전 TV에선 제대로 보이던 방송 화면이 위아래로 눌려서 보인다고 생각해보라. 상상만 해도 짜증이 일어나지 않는가?-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기존의 브라운관 TV는 볼록형태라 대각선으로 1인치씩 잘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다는 데 착안했다. 그리하여 숨어있는 1인치를 찾아서 보여주게 되었고, 이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오리지널 TV’가 되었다.

 

삼성의 혁신이 이것이 끝이 아니다! 제품 이노베이션의 일환으로 모든 디자이너들을 서울 태평로 본사에 결집시켰다. 이런 노력으로 디자이너들이 현장과 멀어지는 폐해도 있었지만, 디자이너들 끼리 모여 자유로운 발상과 경쟁을 통해 이전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참신한 디자이너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는 삼성제품의 경쟁력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물론 이런 방식은 약간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처음에는 디자이너들을 각 사업부에서 독립시켜 디자인 센터에 소속시켰다가, 1998년에는 다시 소속을 원 사업부로 두는 방식을 채택했다. 물론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센터에 모인 형태는 유지시키면서 말이다.

 

삼성전자의 제품들은 같은 제품이라도 다양한 디자인을 갖추고 있다. 이는 다른 기업 제품에선 찾아보기 힘든 특징인데, 이런 특징으로 인해 각국의 기호에 맞춰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삼성 전자는 일본 제품을 많이 모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른바 벤치마킹인데, 제품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면서 알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울러 미국-일본의 기업들은 한국-대만 기업들이 자사의 제품을 베끼자, 특허권 침해소송과 더불어 기판에 의미 없는 회로등을 심어두어, 나중에 다른 업체들이 베꼈을 시에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삼성전자는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단순한 제품 모방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팬 프로젝트를 시도한다. ‘제팬 프로젝트는 간단히 말해 일본인 설계자들을 대량으로 고용한 것이다.

 

물론 1994년만 해도 일본인들이 100여명 이상 고용되어 있었다. 그러나 IMF가 터진 이후에는 그 방향이 달라졌다. 단순히 제조 현장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제품 개발 담당자들이 중심이 된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단순히 제품 모방에서 벗어나, ‘제품의 의도라는 추상적인 영역까지 거슬러 갔음을 의미한다. 흔히 스파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설계도를 빼돌리는데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설계도를 어렵게 빼와도, 이를 해석해낼 사람이 없으면 무의미하기 쉽다.

 

근데 그 설계도를 만든 사람을 고용한다면? 이는 단순히 제품을 모방하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살펴보겠다! 바로 제품의 가격을 제조사가 아닌 소비자의 관점에서 정한 부분이다. 일본 기업은 장인정신이 투철하다. 그들은 제품의 질을 최대한 높여서 만들고, 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 합당한 가격표를 붙인다. ‘일본 제품은 품질이 좋으니까 팔려나갈 것이다라는 믿음이다.

 

삼성전자는 역으로 갔다. 인도-중국 등의 신흥국에서 가격을 먼저 결정하고, 제품의 수준을 거기에 맞춘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대다수 일본 기업은 먼저 제조원가를 계산하고, 경비를 계산하고 마지막으로 이익을 계산한다. 반면 삼성전자는 판매가격과 이익을 계산하고 경비와 제조원가를 거기에 맞췄다. 일본기업이 덧셈식 원가였다면, 삼성전자는 뺄셈식 원가였던 셈이다.

 

이는 생각도 참신하지만, 실현하기도 만만치가 않다. 일본 기업은 제품의 질을 고수하기 위해 일본 협력업체들을 생산국가에 데리고 가거나, 그들의 부품을 수입해서 조립하는 방식을 택했다. 삼성전자는 가격이란 측면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최대한 현지에서 괜찮은 부품 업체를 찾았고, 없으면 최대한 근처 나라에서 수입 등의 방법을 통해 원가절감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당연히 일본보다 늦게 공장을 세우고 수출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런 철저한 현지조사를 통해 이루어진 가격체계와 차별화된 디자인 등은 현지 고객들에게 호응을 얻고 후발주자로서 선발주자인 일본을 뛰어넘게 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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