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독서의 즐거움

무리한 창조론, 그러나 읽을 수 밖에 없는 ‘격을 파하라’

朱雀 2011. 9. 2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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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라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로 싫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 인물이 성공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가 성공비법을 알고 있다거나, 열심히 해서가 아니다. 그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과 그 자신의 혼신어린 노력 그리고 뜻밖의 행운 같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성공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서의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한 인물의 성공비결에 대해 과도하게 단순화 시킴으로써 독자가 인물의 성공배경과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인물에게만 과도하게 집중하는 오류를 가져오기 쉽다. 따라서 <격을 파하라>는 제목만 보고도 별로 좋은 느낌을 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게다가 대한민국 NO.1 크리에이터 송창의의 파격적인 창의창조론이란 부제는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목차를 보니 창의는 습관이다’ ‘사소함 속의 장엄함을 발견하라’ ‘마음, 모두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방법등은 자기계발서가 유행하는 요즘에 과도하게 교훈을 이끌어내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게 만들었다.

 

물론 송창의 본부장은 대단한 사람이다! 그는 1977MBC에 입사한 이후, <뽀뽀뽀>를 새롭게 일으켰고, 몰래카메라를 도입함으로써 침체된 <일밤>을 되살려냈다. <남자 셋, 여자 셋>은 평균 26%대의 시청률을 올렸고, 성인시트콤 <세 친구>로 홈런을 쳤다. 그뿐인가? 2006CJ E&M으로 옮긴 후에는 본부장으로서 <롤러코스터> <TAXI> <막돼먹은 영애씨>의 산파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의정-송승헌 등의 신예스타를 발굴한 <남자 셋 여자 셋> 초기 두달은 시청률이 안 나와서 애를 먹다가, 당시 MBC 사장의 격려와 이의정이 투입되면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었다고.



따라서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IT혁명을 일으키며, 소프트웨어가 그 어느 때보다 시대의 화두가 되어있는 상황에서 35년 동안이나 일선 PD로서 히트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한 그의 책은 분명히 상당한 메리트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30페이지 남짓한 책은 시대의 흐름을 잘 반영한 탓에 읽기 쉽다. 활자는 크고 여백도 많으며, 저자 송창의의 사진을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창의는 습관이다라는 식의 표어보다는 그가 들려주는 드라마의 성공비결이나 뒷이야기들이 훨씬 흥미로웠다. <뽀뽀뽀>의 경우, 처음 맡았던 선배가 너무 잘해왔기에 그냥 유지했다가 당시 MBC 국장으로부터 핀잔을 듣고 나서 화가 나자신만의 개성으로 다시 만들어서 칭찬을 들었다거나, <남자 셋 여자 셋>의 경우 초반에는 시청률을 비롯한 반응이 좋지 않아 두달 만에 좌초할 위기에 갔다가 이득렬 사장의 나는 이 프로가 잘 될 것 같아라는 한 마디에 힘을 얻어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이야기 등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무엇보다 나름 수월하게 인생을 살아온 것으로 보이는 그가 대학생 시절에는 히피문화에 빠져서, <카타리나> 같은 다방에서 음악을 듣고 다른 히피들과 함께 치열한 고민과 대화를 하면서 문화적 자양분을 쌓아간 사실이 마음에 깊게 다가왔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엄혹한 군사독재시절을 살아가면서 장발족의 머리를 자르고 30센티 자로 여성의 미니스커트 길이를 재는 황당한 세상에서, 비틀즈의 음악조차 검열을 당하는 시절에, 레드 제플린을 비롯한 금지곡을 들으며 문화를 논한 그의 젊은 시절은 너무나 감명 깊었다.

 

그가 <남자 셋 여자 셋>을 만들던 시기는 국내에 아직 시스템이란게 존재하지 않을 때였다. 그는 처음엔 작가 한명과 함께 일주일 분량을 만들다가, 한명씩 늘려서는 다섯 명의 작가가 돌아가면서 대본을 쓰는 시스템을 완성했고, 이를 토대로 <남자 셋 여자 셋>이 무려 2년간이나 성공적으로 방송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원래 윤다훈이 아니라 <남자 셋 여자 셋>의 인연으로 신동엽이 예정되어 있었고, 정웅인은 정극을 하고 싶어서 고사했으나, 같이 술마시면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 끝에 오히려 '하겠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송창의 PD의 대화술은 대단했다.


아직 방송기술이 미비하던 시절에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연출하기 위해, 김완선 같은 댄스가수의 방송을 외국 뮤직비디오 찍듯이, 다양한 댄스와 세트를 통해 변화를 꾀하고, 신인가수의 무대에 특히 공을 들인 그의 자세는 몹시나 멋졌다.

 

<일밤>을 진행하면서 PD가 왕인 시절에, 주병진을 비롯한 개그맨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서 코너를 신설하고, 그의 제안대로 코너를 짜내고, 모두가 기피하던 조명감독을 먼저 찾아가서 인사하고 함께 밥먹고 이야기하며, 도저히 섭외가 불가능한 탤런트를 찾아가 격의 없이 이야기 함으로써 섭외는 물론, 해당인물의 포텐셜을 이끌어 내는 그의 리더십에선 그저 박수가 나올 뿐이었다.

 

tvN 본부장인 지금도, ‘케이블은 지상파에 비해 후지다라는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후배PD들에게 자신이 맡은 방송의 마지막 엔딩 텔롭(영화로 치면 엔딩 크레딧)까지 책임지게 함으로써 프로그램 전체의 질을 높인 그의 리더십 역시 오늘날 사회에서 응용할 수 있는 대목이 많다고 여겨진다.

 



당시만해도 보조로만 쓰던 6mm를 본격 도입해보라고 조언함으로써, <막돼먹은 영애씨>는 이전까지 드라마들이 가질 수 없는 '사실성'과 '접근성'을 가지게 되었다. 송창의 본부장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던 드라마.

아울러 60살을 바라보는 지금도 홍대 클럽에 가서 음악을 감상할 정도로 젊은 취향과 감각을 지닌 그의 생활을 보면서 창조적인 인간이 어떤 인물인지 새삼 음미하게 되었다. 확실히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인물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격을 파하라>의 자기계발식 목차에는 불만이 많다. 책을 더 잘 팔기 위한 수단이었겠지만, 송창의 본부장 역시 <카타리나>로 그를 인도한 동창생이나, 그를 이끌어준 멘토들(MBC 국장, 선배 PD, 개그맨, 스탭진 등등)과 잘 따라온 멘티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런 성과를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히피 생활을 하는데도 아들을 나무라지 않았던 어머니 역시 오늘날 그를 만들어낸 원동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운도 실력이며, 오늘날의 송창의 본부장을 만든 것은 본인 스스로의 일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새벽 2시에 퇴근해서 아침 9시에 출근할 정도로 사랑한 열정과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고 그리고 모든 이들과 친분을 가지고 그들의 가능성을 이끌어낸 리더십 등이 뒤엉켜진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초반에 썼지만 과도한 단순화와 일반화 그리고 교훈 추출하기는 독자에게 자칫 성공 비결을 너무 도식화하여 오해할 수는 소지가 너무나 많다. 물론 오늘날처럼 생각하는 싫어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대에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겠지만, 만약 다음에 다시 책을 쓴다면 그땐 지금처럼 교훈보다는 그냥 인생에서 느낀 점들을 가감없이 적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마 그땐 지금보다 그 완성도와 진정성 면에서 훨씬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지금의 <격을 파하라>도 상당히 읽을 만하며, 배울 점이 많은 책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송창의 본부장이 지적한 것처럼, 틀에서 벗어나 더 나은 책을 위해 격을 파하는심정으로 논해보았다.

 

TV와 방송 시스템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면, 방송 뒷이야기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냥 재미로 읽는다고 해도 꽤 술술 넘어갈 괜찮을 책이라 여겨진다. 재미로 읽다가 커다란 교훈을 얻게 되는 책이라 감히 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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