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독서의 즐거움

김영희 PD가 ‘나가수’를 만든 이유

朱雀 2011. 11. 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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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물론 시청률 때문이다! 김영희 PD<일밤>에 구원투수로 들어왔을 때,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당시 <일밤>은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거의 애국가 시청률에 맞먹을 정도로 이젠 대다수 시청자들은 <일밤>을 외면하고 <12>이나 <런닝맨> 등으로 채널을 옮긴 상황이었다.

 

아무리 김영희 PD몰래카메라양심냉장고를 탄생시킨 <이경규가 간다> <칭찬합시다> <느낌표> 등의 레전드급 코너와 프로를 만들었지만, 벌써 오래전의 일. 이제 <개콘>의 시대가 흐름이 된 상황에서 김영희 PD는 아무래도 시대의 흐름에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일밤>에 투입된 김영희 PD는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시청률을 위한 프로를 만들지는 않았다. 외국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단비>, 우리네 농촌을 돕기 위한 <헌터스>, 늘 고생하시는 우리 아버지들의 찾아서 위로하는 <우리 아버지> 등의 코너를 신설했다. 그러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반짝하고 말았다.

 

게다가 <헌터스>는 공익과 예능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해 무너졌고, <우리 아버지>는 결국 감동은 있으나 재미는 없었다. 그런 식으로 김영희 PD가 만든 코너들은 하나하나 문을 닫고 말았다. 따라서 그가 <나는 가수다>를 들고 나올 때 많은 이들은 놀라고 말았다.

 

이미 레전드급이 되어버린 가수들을 데려와서 노래를 부르게 하고 순위를 매긴다니? 그 얼마나 발칙한 일인가? 그러나 김영희 PD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고 만다. 1차 경연에서 탈락한 김건모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그 일로 인해 그는 쫓기듯 <나가수>에서 하차하고 말았다. 따라서 나는 김영희 PD60일간 남미여행을 다녀와서 쓴 책인 <소금사막>에서 <나가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런 예상은 철저하게 배반(?)당했다. <소금사막>은 정신 없는 도시 생활에서 벗어난 한 예술가의 일정을 여정이 아니라 느낌 위주로 적어내려가고 있었다. 이는 형식은 에시이지만 내용은 문학에 가까웠다.

 




거기엔 PD 김영희가 아니라 자연인 김영희가 있을 뿐이었다. 다만 필자의 아쉬움을 달래주려는 듯 김영희 PD가 살짝 살짝 밝힌 <나가수>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나가수>를 만든 이유에 대해 김영희 PD는 다소 생뚱맞게도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사이렌의 이야기를 들고 나온다.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어서, 자신의 몸을 배에 부하들에게 시켜 결박시키고 어떤 일이 있어도 풀지 말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부하들은 솜으로 귀를 막았다. 사이렌이 노래하는 구역에 들어갔을 때, 오디세우스는 그 황홀함에 바다에 빠져들고 싶었지만, 묶여 있는 탓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결국 오디세우스를 태운 배는 무사히 빠져나왔고, 오디세우스는 살아있는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사이렌의 노래를 들은 사람이 되었다. 김영희 PD ‘이런 진짜 노래를 누구에게나 들려줄 수 있다면.’ 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나가수>를 만든 이유라고 밝혔다.

 

김영희 PD<나가수>의 첫회를 진행하고 김건모가 탈락하게 되자, 가수들의 얼굴을 보고 당혹감에 휩싸였고 녹화 불능의 말그대로 통제 불능의 패닉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긴급회의를 통해 김건모에게 재도전 의사를 타진했고, 김영희 PD는 마이크를 잡고 떨고 있는 김건모의 모습이 전파를 타면 시청자들이 진심을 믿어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나. 김영희 PD는 제대로 해명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나가수>에서 하차하고 말았다. 억울할텐데도 그는 어머니 말을 들은 청개구리 이야기를 들면서 후회하고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는 말을 한다.

 

그 외엔 모든 것을 훌훌 털고 60일동안 29번이나 비행기를 갈아타며 여행한 남미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소금사막>이 특이한 점은 정말 여백이 많다는 거다. 이 책을 읽기전까지 <진보집권플랜> <국가란 무엇인가?>처럼 어렵고 정보와 지식의 밀도성이 무지막지하게 높은 책을 읽던 나로선 신선한 체험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소금사막>은 만들기 쉬운 책처럼 느껴진다. 글 내용은 얼마 되지 않고, 그 마저도 남미에서 김영희 PD가 찍은 사진이 다수를 차지하고, 다른 페이지는 핸드메이도로 스케치한 그림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금사막>은 읽은 이에게 휴식을 선사한다. 세계각국의 여행정보가 일상화된 오늘날 여행정보는 일체 포기하고, 오로지 글쓴이의 느낌에 집중한다. 그리고 문학가 김영희의 진가가 발휘된다. 29만원짜리 디카로 찍은 사진은 남미의 예쁘고 멋진 풍광 뿐만 아니라 자연앞에 겸손한 한 인간의 심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잘난 척 하지않고 자신의 느낌을 솔직담백하게 쓴 <소금사막>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달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속에도 저런 달이 하나 떴으면 좋겠다고 하고, 쿠바에 가서 평상시 존경하던 체게바라를 쫓아서 모자를 쓰고, 40년된 쿠바의 차를 보고 멋있다라고 말할 줄 아는 김영희의 서술은 예술가로서 남다른 그의 시선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29만원짜리 디카 하나와 스케치북 하나로 예술작품을 탄생시킨 김영희 PD의 솜씨는 그저 놀랍고 탁월하다. <소금사막>50살이 넘은 작가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여기서 그는 지천명의 나이가 된 사람답게 인생에 대해 자신이 느낀 부분을 술회하기도 하고, 지나간 삶에 대해 후회하고 넋두리하며, 때론 어린이처럼 누군가를 만나고 작은 것에 행복해하며 기뻐한다. 그러면서 삶의 대한 관조적 자세도 엿볼 수 있다.

 

<소금사막>은 맘먹고 읽는다면 단 30분만에 독파할 수 있다. 어찌보면 화학조미료를 친 맛깔난 책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소금사막>은 너무 밍밍한 맛의 책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잘 팔리기 위해 자기계발서를 위장하는 책들이 대세를 이루는 세상에서 질박하게 이어간 이 책을 외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다.

 

당신이 이 책을 펼쳐든다면 신선한 충격을 받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여백의 미에서 느껴지는 광활한 남미의 향취는 독특함으로 뇌리에 각인되고, 김영희 PD를 단순한 예능 기획자나 연출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예술가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리라 본다 



29일부터 12/2일까지 싱가포르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현지사정으로 소중한 이웃님의 블로그에 방문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점 이해 부탁드립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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