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싱가포르

스토리텔링의 진수를 보여준 멀라이언 타워

朱雀 2011. 12.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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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토사에 도착한 우리는 일단 목부터 축이기로 했다. 28도가 넘어가는 현지의 기온은 영하대로 접어든 우리나라와는 달라서 너무나 덥게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한낮의 작렬하는 태양빛은 우리네 한여름 풍경을 떠올리게 할만큼 충분히 치명적이었다.

 
-사진은 1600픽셀로 맞춰져 있습니다. 클릭하면 원래 사이즈로 볼 수 있습니다-


근데 아뿔싸
! 알고보니 지금 싱가포르 역시 겨울로 접어들어서 선선하고 시원한 편이란다. 허허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이곳의 여름 절정기라는 68월은 어떨지 상상조차 하기 싫어졌다. 하긴 돌이켜보니 덥긴 하지만, 우리네 여름처럼 한낮의 치명적인 습도는 없었다. 습기가 덜해 그나마 살만하긴 했다.

 

목을 축이고 바깥을 보니 싱가포르에서 가장 높게 올라간다는 타이거 스카이 타워가 우릴 반겼다. 불과 몇분만에 정상에 올라선다는 타이거 타워는 나 같은 겁쟁이는 보기만 해도 아찔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보고 있으려니 그낭 타워가 아니라 마치 바이킹처럼 끔찍한 놀이동산의 탈거리로 느껴져서 도저히 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물론 이것도 입장료가 당연히 있었다. 이미 센토사에 도착해서 앞으로 요금을 내야할 일이 줄줄히 기다리고 있는 우리 입장에선 도저히 불가능했다. 미련을 끓고 그냥 구경한 것을 위안삼아 버스를 타고 멀라이언 타워를 향했다.

 

 

분명히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나눠준 지도를 가지고 있건만, 목적지에 내려서 두리번 거려다봐도 분명히 보여야할 멀라이언 타워가 보이질 않았다. 순간 잘못 내린 게 아닐까?’란 두려운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다행히 아니었다. 일행중 한명이 저기에요라고 말하면서 성큼성큼 앞서나갔다.

 

뒤돌아보니 멀라이언 타워가 우릴 향해 미소를 짓는 것 같이 보였다. 저렇게 크고 특징적이 건축물을 찾지 못했다니. 새삼 필자의 무신경함에 절로 감탄사가 나올 지경이었다. 한달음에 멀라이언 타워 앞으로 달려나가니 ‘SENTOSA'라고 적혀 있는 블록과 각종 귀여운 캐릭터들이 멀라이언 타워 앞을 수놓고 있었다.

 

덕분에 관광객과 어린이들은 그 앞에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 역시 관광객답게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시간을 잠깐 보냈다. 그러나 역시 우리의 목표는 멀라이언 타워를 올라가는 것!

 

일단 올라가기로 했지만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이런 조형물 위에 올라갔다가 실망한 적이 어디 한두번이던가? 그래도 비행기로만 무려 7시간 가까이 타고 왔고, 언제 올지 모르는 곳인데, 속는 셈치고 올라가기로 했다.

 

허나 막상 멀라이언 타워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이 싸악 바뀌었다. 일단 멀라이언 타워 안은 밖과 달리 시원해서 좋았다. 뭐 그건 싱가포르에선 워낙 흔한 일이니 넘어가더라도, 할리우드 고전 괴물 영화속 포스터와 인어와 용 등등 바다와 관련있는 포스터와 조형물들이 뭔가 전설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게다가 끊임없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져 나오는 갖가지 효과음은 우리를 현실세계에서 벗어나 전설과 신화와 영화의 세계로 인도했다. 입구를 지나 얼마나 들어갔을까? 저 앞에 5분 단위로 표시되는 입구가 보였다.

 

호기심도 일어나고, 어차피 지나가는 길인지라 조금 기다렸다. 5분의 기다림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마법의 문처럼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니 상영관이었다. 그곳에 앉아 있으니 싱가포르멀라이언에 관한 이야기가 5분동안 애니메이션으로 펼쳐졌다!

 

게다가 한글자막까지 지원하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싱가포르를 맨 처음 찾은 이는 수마트라 스라비지야 왕조의 왕자인 수리토니 브아나였다. 그는 전설적인 제왕인 알렉산더 대왕의 후손이자 솔로몬왕의 왕관을 지닌 그야말로 신화적인 존재였다-이쯤되면 뻥도 예술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루는 사슴을 쫓던 그는 바다 건너 한 섬을 보게 되었고 부하들을 이끌고 그곳을 탐사하러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바다로 나아가자 갑자기 엄청난 태풍이 찾아왔고, 생사의 고비에서 그는 자신이 해야될 일을 알고 있었다.

 

 

바로 자신의 소중한 왕관을 벗어서 바다에 내던진 것이었다. 그러자 바다는 거짓말처럼 평온해졌다. 왕자는 마침내 땅에 닿았고 그곳에서 사자를 닮은 짐승을 만나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는 자신의 땅을 싱가푸라- 사자의 도시‘-’라는 의미로 부르게 되었다. 그럼 이제 왜 싱가포르의 상징이 사자가 아니라 사자와 물고기의 합성인 멀라이언인지 궁금해질 것이다.

 

현재 싱가포르의 상징은 멀라이언이지만, 이건 불과 1963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 이전까진 멀라이언은 존재하지 않았다. 멀라이언은 싱가포르를 상징물을 고민하다가 만들어낸 합성물이었던 것이다!

 

 

상영관에서 재밌게 애니메이션을 감상하고 나오니, 행운의 동전을 나눠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간직하고 싶었으나, 황금의 멀라이언 상에 넣으면 행운을 준다고 해서 넣었다. 그러자 왠 카드가 하나 나왔고 그걸 일단 간직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전망대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와 입으로 두군데 길이 있었는데, 우선 머리로 향했다. 그곳에선 엄청난 전망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다른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내가 카메라를 들자 이쪽을 향해서 미소를 지어주었다. 새삼 얼마나 고맙던지...

 

멀라이언 타워에서 보는 센토사의 전망은 훌륭하다 못해 기가 막혔다.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하루종일 보아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37미터에 올라와 마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 나오는 듯한 구름과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그리고 센토사 곳곳의 녹지와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비롯한 시설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해졌다.

 

거기에는 이곳까지 스피커가 설치되어 끊임없이 바다소리를 비롯해서 들려오는 갖가지 효과음이 단단히 한몫을 했다. 상영관에서 본 애니메이션과 입구에서 본 할리우드 영화 포스터들이 결합되어서 현실세계에 있음에도 왠지 이곳에선 당장이라도 환상속의 짐승이나 인물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느낌을 부여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까운 시간을 보내다가 결심을 하고 밑으로 내려갔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기에, 센토사의다른 곳을 보기 위해 아쉽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1층으로 내려와 카드를 내미니 센토사 로고가 박힌 부채를 내주었다.

 

 

1층 곳곳에는 멀라이언과 관련된 갖가지 관광상품이 팔리고 있었다. 동선을 확실하게 고려하고 관광객의 호기심을 동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든 그들의 상술에 가벼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건 얄밉기 보단 그들의 적절한 배려와 효과적인 대처에 감탄사가 나왔기 때문이다. 멀라이언 타워는 겉보기에도 멋있지만, 내부로 들어갔다 나오면서 계속되는 스토리텔링에 감탄할 수 밖에 없는 관광지다.

 

상영관은 싱가포르의 탄생과 멀라이언에 대해 어린이라도 각인시킬 수 밖에 없게끔 만들고, 행운의 동전을 비롯한 설치물은 관광객에게 행운을 빌게끔 만들며 기꺼이 환상의 세계로 향하게끔 만든다.

 

내가 멀라이언 타워에서 감탄한 것은 바로 스토리텔링이었다. 사실 멀라이언 은 1963년에 만들어진 것이라 이야깃거리가 많지 않다. 멀라이언 타워에 무슨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센토사를 관리하는 이들은 할리우드 영화를 빌려오고, 거기에 갖가지 신화속 동물들을 집어넣어 효과적인 배치를 했다.

 

게다가 할머니가 손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 어른이라도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밖에 없게끔 만들었다. 많은 곳을 돌아다녀보진 않았지만, 관광객으로서 이름난 명소를 찾아갔다가 실망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우리도 덜렇하니 을씨년스럽게 건축물이나 조형물 하나 뎅그러니 만들어놓고 끝낼 것이 아니라, 싱가포르처럼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관광지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끊임없이 관광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끔 말이다. 센토사를 찾아온 필자는 멀라이언 타워 하나만 가지고도 싱가포르가 괜히 선진국이 아니요, 관광대국이 아니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하게 되었다. 그저 문화대국의 저력에 저절로 머리를 숙이게 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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