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TV예능프로를 뛰어넘는 '577 프로젝트'의 매력!

朱雀 2012. 8. 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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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하정우는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자최우수상을 또다시 수상하면 '트로피를 들고 국토대장정을 떠나겠다'라는 공약을 하게 되었다. 자신이 후보이긴 했지만, 하지원과 함께 시상자로 나왔기 때문에 당연히 되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말한 공약이었다.

 

아뿔사 그런데 이게 왠일? 그는 작년에 이어 <황해>로 남자최우수상을 수상하고 말았다. 기쁨도 잠시, 그는 어떻게 공약을 지킬 것인지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577 프로젝트>는 대국민공약을 지키기 위해 국토대장정을 떠난 하정우와 그의 마수에 빠져 동행하게 된 공효진. 그리고 오디션을 거쳐 함께 하게 된 16명이 함께 땅끝 해남까지 577km를 걸으면서 겪게 되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들을 그려내고 있다.

 

사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도 그렇고, 줄거리만 보고 나면 '굳이 TV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을 왜 영화로 봐야하나?'라는 지극히 당연한 의문이 뒤따른다. 야생 리얼버라이어티 <12>을 통해서 우린 몇 년 동안 지겹게 '복불복' 게임과 더불어 길 위에서 연예인들이 겪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말 한마디 실수로 알래스카까지 다녀온 <무한도전>의 이야기까지 있지 않던가?

 

그런 쟁쟁한 프로들이 다양한 에피소드를 보여주었는데, 영화에서 뭔가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있을까? 게다가 TV는 그냥 틀면 나오고, 월 몇천원 내는 시청료 외엔 별도로 들어가는 돈도 없다. 그런데 <577 프로젝트>는 표값을 내야하고 극장을 찾는 수고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유재석이나 강호동이 없다.

 

그런 명MC가 없는데 <577 프로젝트>는 뭔가를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필자의 회의적인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577 프로젝트>'표 값은 한다'라고 스스로를 증명해낸다. 2011년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자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하정우가 고민하는 장면부터, 하정우가 <러브픽션>을 같이 찍은 공효진을 설득하고 그녀가 고민 끝에 합류하고, 국토대장정에 함께 할 16명을 오디션 하는 장면들은 엄청난 스피드로 편집되어 눈앞에서 휙휙 지나간다.

 

<577 프로젝트>99분이란 짧은 시간 때문에 TV예능처럼 세세하게 멤버들의 사연을 보여주고,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그려내진 못한다. 대신 영화가 지닌 '편집'이란 내공이 TV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TV라면 최소 30분에서 1화 이상을 소요했을 내용을 겨우 몇 분 안에 세련되게 압축한다. 그러나 그 압축은 단순히 '짧은 분량'이 아니라, 하정우의 망설임과 공효진의 고민 16명의 사연을 효과적으로 전달해낸다.

 

<577 프로젝트>TV예능과 정면승부하지 않는다. 영화라는 매체의 힘과 하정우와 공효진과 같은 '배우들의 매력'을 철저하게 이용한다. 앞서 말한 편집이 '좋은 예'. 짧은 분량의 압축으로 효과적으로 내용을 전달하고, 때론 사건의 발생순서를 거꾸로 해서 '반전'을 준다.

 

TV예능에서 여러 번 선보인 '몰래카메라'는 연기자들의 열연에 힘입어, TV에선 볼 수 없었던 수준의 리얼리티와 현장감을 제공한다. 덕분에 반전 역시 놀라울 지경이다. 하정우는 '하대세'라는 최근의 별명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을 보여준다.

 

그는 긴 여정 동안 예상외로 지치지 않고 리더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공효진은 여배우로서 신비감을 어느 정도 걷어내고 자연인 공효진의 모습을 보여준다. 공효진이 영화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꽤 적나라하게.

 

그러나 <577 프로젝트>는 단순히 TV예능 프로를 따라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16명 참가자들의 눈물겨운 사연을 굳이 '눈물'로 승화시키는 '감정과잉'의 상태로 이끌지 않는다. 좀 더 끌어도 될 것 같은 상황에서 컷트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서 아쉬움을 느끼게 할 지경이다.

 

토크쇼와 고해성사 같은 깨알같은 코너에서 하정우의 예능감은 빛을 발하고, 평상시에는 리더로서 힘들거나 감정이 격양된 멤버들을 격려하고 다독이는 역할을 보여준다. <577 프로젝트>에서 하정우의 존재감은 거의 유재석급이다.

 

<577 프로젝트>는 대놓고 광고를 보여줌으로써 노골적인 간접광고가 판치는 오늘날의 TV예능 프로의 모습을 코믹하게 패러디한다. 그러나 역으로 <577 프로젝트>는 오늘날 예능이 얼마나 진화했는지 또한 역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예능은 그 자체로 이미 '로드 무비'수준에 올라가 버렸다. 매체적 차이 때문에 생기는 점을 제외하면 <12>과 같은 버라이어티 프로들은 세련된 연출과 각 출연자들의 캐릭터성을 세움으로써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냈다.

 

만약 <577 프로젝트>가 기존의 로드무비처럼 제작하거나 단순하게 다큐처럼 사실적으로 찍었다면 오늘날 극장가에서 철저하게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을 것이다. <577 프로젝트>는 기존 TV예능을 작접을 연구하고 그것을 영화에 맞게 수정보완해서 또 하나의 장르물에 도전해냈다.

 

그 도전은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재밌고 유쾌하다. 관객들은 <577 프로젝트>를 보면서 수시로 웃고 놀라며 심지어 박수까지 치게 된다. <577 프로젝트>TV예능 프로처럼 범국민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리 없으며, 하정우와 공효진을 제외한 출연자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며 유명세를 탈리는 없다.

 

그러나 그들의 진지한 도전은 시계태엽처럼 늘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무감각한 우리의 감성을 일깨우고, TV예능 프로에서 볼 듯한 설정과 상황을 매체를 바꾸면서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극영화만이 극장가에서 상영되는 우리네 현실에서 보기 드문 시도를 한 <577 프로젝트>는 극장에서 볼 가치가 충분하다. 아니 그 이상이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필자의 욕심이자 TV예능에 대한 과도한 익숙함일지도 모르겠다.

 

<577 프로젝트>에서 20일간의 대장정을 마친 하정우는 다시 도전하고 싶다는 말을 하던데, 부디 이번 작품이 잘 되서 2탄을 보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그만큼 <577 프로젝트>의 매력은 꽤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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