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독서의 즐거움

우린 유재석에게 속고 있다? ‘일인자 유재석’

朱雀 2012. 8. 3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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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밝히지만 이건 필자의 말이 아니라, 정재승 교수의 말을 옮겨온 것이다. <일인자 유재석>에서 김영주 저자가 인용한 부분을 보면, 메릴랜드 대 심리학과 로버트 프로빈 교수가 1200여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를 예로 든다. 다양한 웃음소리를 들려준 다음 호감도를 조사했더니, 그 결과 노래하는 듯한 하이톤의 웃음소리에 거의 대부분이 호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유재석은 본인도 알다시피 하이톤의 웃음소리를 지니고 있고, 인간이란 일단 웃고 나면 그때 재미있어서 웃었다라고 기억한다고. 따라서 결론은 우리 모두는 유재석에게 속고 있는지도 모른다란다. 재밌지 않은가?

 

 

웃음을 이런 식으로 과학적으로 규명하니 왠지 정나미가 떨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일인자 유재석>은 제목 그대로 오늘날 국민MC로 추앙받는 1인자 유재석을 집중 연구한 책이다.

 

 

저자 김영주는 1991<MBC 아카데미>를 수료한 뒤, 1992<PD수첩> 막내작가로 합류해서 <일요일 일요일 밤에>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우정의 무대> <코미디 하우스>등등 다수의 예능 프로의 작가로 활약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그가 자연스럽게 유재석이란 인물을 본격해부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여겨진다. 무엇보다 ‘...안철수보다 키도 크다. 얼굴도 작다. 훨씬 웃긴다. 기껏해야 대통령 후보인데, 유재석은 이미 예능의 대통령이다. 무엇보다 유느님이다라면서 그가 이 책을 써내게 된 동기를 적는 부분은 예능을 정말 말 그대로우습게만 보는 세상에 보내는 사자후라고 생각될 정도다.

 

 

유재석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가장 난해한 부분은 예전의 그와 오늘의 그가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그는 매우 사려 깊고 친절하며 겸손한 인물이지만, 20대 때의 그는 달랐다. 정확히 말자하면, 199154일의 그는 달랐다.

 

 

<대학 개그제>에서 장려상을 받은 그는 기분 좋지 않은 표정으로 손으로 귀를 후비는 행동을 했다. 당시에 유재석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웃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런 건방진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유재석은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지만. 대학생 시절의 그는 개그신 때문에 어렵사리 개그맨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유재석이 <대학개그제>에 장려상이나마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대학생에 한정되어서 겨우 132명만이 응시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만약 지금의 <슈퍼스타 K>처럼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면? 어쩌면 유재석은 통과를 못했을 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하느님이 보우하사였다.

 

 

그러나 이후론? 우리도 알다시피 유재석은 거의 10년 가까이 무명으로 지내야만 했다. 20세에 방송국에 들어온 그는 방송 카메라 앞에만 서면 사시나무 떨듯이 떨면서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당연히 1년 후엔 나설 프로하나 남질 않았다.

 

 

여기서 당연한 의문이 하나 샘솟는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송울렁증의 그는 어떻게 오늘날 국민MC1인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그의 성실함을 비롯한 미덕에 돌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행운도 따랐다.

 

 

그는 7년차에 <코미디 세상만사>남편은 배짱이코너에서 백수 남편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당시 그를 받쳐준 것은 김숙이었단다. 유재석 스스로 인기가 조금 있구나라고 느낀 때가 19999월 무렵.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메뚜기란 별명으로 사람들이 그를 알아본 시기다. 그 별명을 붙여준 이는 정선희다. 그녀가 피디에게 무심코 던지 , 메뚜기 닮지 않았어요?’라는 말에 그대로 별명이 되고 말았단다.

 

 

지금은 너무나 고마워하는 별명이지만, 당시 유재석은 제 이미지가 고정되는 게 아닐까요?’라고 담당피디에게 적반하장격의 이야기를 했었다고 한다. 게다가 아직 인기가 별로 없었던 유재석은 메뚜기탈을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버스에서 튀어나온 더듬이를 보고 한 아이가 알아보자 너무나 부끄러워서 내렸단 일화까지 있었다.

 

 

그렇다면 유재석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때는 언제일까? 10년째 무명이던 유재석은 <서세원쇼>에 출연해서 에피소드를 말하면 떴고,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에서 일행들과 다른 유니폼을 입고 나와서 놀림감이 되고, 장대높이뛰기를 하면서 수직으로 뛰었다가 수직으로 매트에 얼굴을 들이받는 최고의 몸개그를 보여주었단다.

 

 

인상 깊은 대목은 오히려 그 다음이다. 당시 영상을 보면, 유재석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고, 오른손이 떨면 왼손으로 잡으면서 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정도라고.

 

 

유재석의 내공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한 시점은 2000114일이다. <목표달성! 토요일>의 마지막 코너인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에서 유재석은 그야말로 바닥을 보여준다. 고공 낙하 훈련에서 무서워서 거의 기절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인간적인 모습을 이때부터 보여준 것이다. 게스트의 성향과 특징을 잘 포착해서 캐릭터를 만들어주고, 웃음을 위해선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함께 뒹구르고, 앞서서 망가지기를 피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후 그렇다면 유재석은 탄탄대로를 걸었을까? 아니다. 그가 인기를 끌긴 했지만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는 당시 <일밤>의 상대가 되질 못했다. 오랜 고민 끝에 공포의 쿵쿵따를 탄생함으로써 유재석은 비로소 성공의 맛을 본다. 그러나 그는 이때 고난의 길을 선택한다. 바로 본격 콩트 프로인 <코미디타운>에 참여한 것이다.

 

 

우리의 시각에선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당시 유재석은 MC로서 능력이 인정받고 있었고, 공중파 3사에서 서로 부를 때였다. 누구보다 예능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던 그가 정통 코미디에 나선 이유는 뭘까?

 

 

그건 유재석이 아마도 정통 코미디에 대한 애착 혹은 미련이 아니었을까 하고 저자는 추리한다. 유재석의 도전은 잘 알다시피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그건 의미있는 실패가 아니었을까 싶다. 유재석은 2003<해피투게더>2004<놀라와>MC를 맡게 된다.

 

 

 

 

이 두 프로는 현재까지 방송되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특히 요즘처럼 시청률에 민감한 시기에 10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는 건 그야말로 유느님의 능력을 높이 평가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토크의 딜레마를 아는가? 토크쇼 진행자의 최대 고민은 출연자가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와 시청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일치시키는 부분이다. 이게 말이 쉽지 정말 어렵다.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주병진조차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병진쇼>가 불과 6개월 만에 폐지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저자는 유재석표 토크쇼가 장수하는 이유에 대해 초대손님이 편하게 왔다 갈 수 있게 하는 점을 든다. 오늘날 토크쇼는 자칫 말실수나 행동을 잘못하면 구설수에 올라 인기하락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심지어 <해피투게더>와 같은 프로에 나오기 전날 밤에 긴장해서 잠을 자지 못했다는 출연자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유 중에 하나이리라.

 

 

유재석은 애프터스쿨의 리지가 선생님이라고 할 정도로 출연자에게 친절하다. 위에서 지적했지만, 한명 한명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기억하며 그들의 캐릭터성을 부여해준다. 무엇보다 개개인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주는 친절함을 보여준다. 이거 보통 내공으로 불가능하다. 일례로 이런 토크를 구현해내는 한국에서 유재석이 거의 유일무이하다.

 

 

저자가 말했지만 유재석은 그냥 앉아서 편하게 하는 토크로서 얼마든지 인기를 끌고 높은 출연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도전을 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5423일 공중파에 등장한 <무모한 도전>을 들 수 있다.

 

 

기억하다시피 <무모한 도전>은 이름 그대로 대한민국 평균이하 남자들이 제목대로 무모한 도전을 벌이는 프로였다. ‘황소 vs 인간 줄다리기’ ‘전철 vs 인간 100미터 달리기등등 지금봐도 황당한 수준이었다.

 

 

국내 최초로 야외에서 별다른 정해진 대본 없이 진행된 <무모한 도전>은 그때까지 없었던 새로운 도전이었고, 고통의 연속이었다. 시청률도 꽤 오랫동안 나오질 않았다. 지금에야 레전드지만, 그땐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프로였다.

 

 

왜 유재석은 <무모한 도전>에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을까? “...’, 맞아요. 우리 많이 부족해요. 우리 한참 멀었어요. 모자라요. 그렇게 많은 관심 안 가져주셔도 돼요. 그냥 밟지만 말아주세요. 그럼 우리도 꽃 피울 수 있어요그런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라고.

 

 

그렇게 시작한 <무모한 도전>은 김태호 PD가 들어가고, 멤버의 변화 등을 거치면서 <무한도전>이 되었다. 그리고 <무한도전>은 우리도 알다시피 매회 특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매번 다른 소재와 아이디오를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그뿐인가? 20086SBS에서 시작한 <패밀리가 떴다>는 어떤가? 시골집을 찾아가서 12일 동안 집을 봐드리면서 좌충우돌형 여행기를 보여준 <패떴>은 한때는 <12>을 밀어내고 일요일 최강자가 되기도 했지만, 대본 공개사건-이효리 욕설논란-참돔 낚시 의혹 사건 등이 불거지면서 불과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끝맺었다.

 

 

그후 유재석이 다시 SBS 일요예능에 컴백한 작품은 <런닝맨>이었다! <런닝맨>걷지말고 뛰어라라는 이른바 랜드마크에서 쉴새없이 게임을 통해 런닝볼을 획득하고, 진 이가 민망한 벌칙을 수행하는 식이었다.

 

 

잘 아다시피 초창기엔 유재석이 잘 보이질 않았다. 하긴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쉴새없이 뛰다보니 유재석이 활약을 펼칠 기회가 없었다. 언론들 역시 처음에는 기대하다가 예상보다 시청률 등이 저조하자,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그러나 현재는? 우리도 알다시피 <12>을 위협하며 일요 예능계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유재석은 유르스윌리스라는 별명을 가졌고, 사자 김종국, 임팔라, 기린, 에이스 멍지효, 월요커플 등등. 캐릭터도 확실하게 잡혔다.

 

 

다소 장황하게 유재석과 관련된 TV예능 프로 이야기를 적은 것은 이것이 고스란히 우리의 예능계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끝으로 그가 국민MC가 되고도 오히려 겸손해지는 이유를 적어보겠다.

 

 

“...그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은 이 짧은 인터뷰 동안 다 얘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요. 수 많은 좌절, 아픔, 남몰래 가슴 치며 울었던 시간들. 그 안에서 제가 느낀 여러 가지 감정들은 다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에요. 전 종교가 불교입니다만, 무명 시절에 밤마다 부처님께 기도했어요. 기회를 한번만 달라고.

   

부처님. 정말 제게 딱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그동안 절 위해 애써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이 은혜를 평생 갚으면서 살겠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했어요.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그걸 어떻게 잊어요. 전 정말로 모든 게 감사해요.”


 

 

유재석은 잘 알려진대로 10년 가까이 무명에 가까운 시절을 보냈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가 왜 그렇게 성실한 지, 노력하는지, 모든 이들에게 친절한 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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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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