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선덕여왕'의 비담은 싸이코패스였다!

朱雀 2009. 9. 1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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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비담의 충격적인 과거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 거기서 문노는 어린 비담을 찾아 동굴을 헤맸고, 거기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죽어있었다. 놀란 문노는 시체들 사이에서 비담을 찾았고, 밖으로 데려나왔다. 정신을 차린 비담은 천진난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두 자신이 죽였노라고. 짧지만 워낙 강렬한 장면이라 기억에 남았다. 앞뒤 이야기가 쏙 빠지고 그 부분만이 방영된지라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는데, 어제 방송된 33화에서 드디어 그 이유가 밝혀졌다.

삼국통일을 덕만이 문노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비담은 과거를 회상했다. 어린 비담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문노와 함께 마치 부자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정을 나눈다. 고구려와 백제를 넘나드며 뭔가를 준비하던 문노는 이 모든 게 비담의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카메라는 그의 품에 꼭 안고 있는 서책을 비춘다.

어린 비담이 저지른 엽기적인 살인행각에 그저 망연자실해 하는 국선 문노

장면이 바뀌면, 아무도 보면 안되기에 어린 비담은 가슴에 서책을 꼭꼭 품고 화장실까지 갈 정도다. 그러나 마을 왈패들은 그걸 귀금속 등으로 오인해 어린 비담을 두들겨 패선 빼앗아 가버린다. 뒤늦게 사정을 알고 왈패소굴로 간 문노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다. 시체들 사이에서 찾아낸 비담은 가져간 음식에 독을 타서 모두들 죽였다고 고백한다.

수십구의 시체를 보며 망연자실한 문노의 표정과 삼국의 지도를 그린 ‘삼국지세’를 보며 기뻐하는 어린 문노의 표정이 자연스럽게 겹쳐 묘한 두려움을 가지게 한다. 문노는 비담을 보며 늘 “측은지심이 없다”고 나무란다. 그동안 <선덕여왕>에서 비담은 사람을 죽여놓고 죄의식을 느낀 경우가 없다. 그는 자신의 스승인 문노에게 혼날 것을 두려워할 뿐,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 따위는 없다.

어린 시절 비담의 엽기적인 살인행각에 무림 최고수 문노마저 당황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눈 하나 까딱 안하고 살인을 저지른 것과 이후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밝히는 모습은 누구나 놀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꽃보다 남자>에서 금잔디의 남동생 역할로 나온 박지빈은 <선덕여왕>에선 비담의 아역을 맡아 순진무구하면서 잔인한 비담의 성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보인다. 나온 분량은 얼마 안되지만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내는 점에서 ‘씬 스틸러’라 칭할 만하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자면 비담은 싸이코패스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자다. 이른바 ‘싸이코패스’라 불리는 범죄자들은 대부분 우리와 달리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우리와 뇌구조가 다른 탓에 일반적인 사람이 가져야할 두려움이나 죄책감이 없다. 따라서 살인을 저지르는데 있어서 망설임이 없다. 다른 범죄자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때문에 현장에 흔적을 남기기 쉽지만, 싸이코패스들은 망설임 없이 살인을 저지르기 때문에 흔적도 남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을 잡기란 매우 어렵다.

또한 이들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자상한 이웃집 오빠나 아저씨로 웃으면서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고, 직장에선 유능하거나 평범한 일상을 영위해간다. 따라서 우린 엽기적인 살인마와 바로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도 그가 설마 범인이라곤 생각지도 못하게 된다.

비담을 보라! 그는 눈 깜짝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른다. 그러면서 매력적인 미소와 빠른 두뇌회전 그리고 큰 배포를 자랑한다. 게다가 얼굴까지 꽃미남으로 매력적이다. 다행이라면 그는 일단 전쟁이 난무하는 삼국시대에 태어났다는 거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살인 욕구를 얼마든지 전투에서 풀 수 있다. 그뿐인가? 미실과 항상 격전을 치러야 하는 덕만의 입장에선 그의 망설임 없는 행동이 큰 힘이 되어준다.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따뜻한 부모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 심지어 아버지로 생각했던 문노마저 어린 시절의 사건 때문에 그를 무서워하기에 이른다. 그런 불행은 그의 마음을 삐뚤게 이끈다. 비담은 아직은 덕만공주를 좋아하고 그녀의 일처리 등에 반했기 때문에 그를 위해 힘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을 알았고 신라를 차지하기 위한 자신의 열망이 무너질 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 것이다.

삐뚤어질 수 밖에 없는 그의 마음을 문노가 만약 부드럽게 타이르고 어루 만졌다면, 어쩌면 훗날의 비극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생 처음 겪어보는 어린아이의 엽기적인 살인행각에 충격을 받아 어찌할 바를 모른 그의 행동은 결국 훗날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사태를 부를 씨앗이 되어버렸다.

싸이코패스가 될 가능성을 태어난 이들이 모두 범죄자가 되진 않는다. 주변에서 따뜻한 사랑으로 보살피고 적절한 교육이 뒤따르면 그들은 다른 이들과 잘 어울려 살 수 있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황금만능주의의 사회에서 소외받는 이들이 생겨나면서 그속에 속한 가능성 있는 이들이 엽기적인 살인마로 분하는 것이다. 비담은 전쟁이 많은 당시엔 영웅이 될 수 있었으나, 평화시인 지금에 태어났다면 영락없는 엽기적인 살인행각을 저지르는 싸이코패스가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다행히 문노란 큰 스승과 이후 덕만과 김유신 등을 만나면서 어느 정도 개심할 수 있는 기회는 생겼지만, 자신을 비정하게 내다버린 어머니 미실과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주고 사랑으로 안아주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고 혼만 내는 문노의 행동은 결국 비담이 단순 살인마를 넘어서서 신라를 전복시키려 하는 인물로 성장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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