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독서의 즐거움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를 아십니까?

朱雀 2009. 9. 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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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국내에선 5편까지 나오고 절판된 <뱀파이어 연대기>가 황매 출판사를 통해 재출간되고 5권이후 완간될 예정이라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개인적으론 국내에 출시된 <뱀파이어 연대기>를 5편까지 모두 소장하고 있다. <뱀파이어 연대기>는 작가 앤 라이스가 초자연적 존재인 ‘뱀파이어’를 소재로 불멸의 삶을 사는 그들의 고뇌와 음모와 배신등을 적어내려간 소설이다. 특히 국내에선 김혜림 씨가 줄곧 앤 라이스의 현란하고 화려한 문체를 우리말로 고치느라 애썼는데, 그녀의 번역으로 계속 볼 수 있다는 사실도 기쁘기 한량없다. 다시 재출간된 <뱀파이어 연대기>의 각권의 의미와 간략한 내용을 여기에 소개해볼까 한다.


1)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 인류의 기원에 대한 끝없는 고민

우리에겐 동명의 영화로 더 유명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사실 이 책을 원작으로 한다. 이 책이 지어진 것은 무려 1972년의 일이다. 여기엔 가슴 아픈 일화가 있다. 앤 라이스에겐 미셸이란 딸이 있었는데, 네 살 때 백혈병으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에 그녀는 절망에 빠져 술에 빠진 채 2년여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어린 딸을 자신의 작품에서나마 부활시킬 요량으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쓰게 된다. 원래 앤 라이스가 처음 쓴 ‘뱀파이어’ 이야기는 단편소설 분량의 단순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철학적인 고민에 빠졌고,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혀 불과 5주 만에 이 소설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빛을 보기까지 꽤 긴 세월을 필요로 했다. 1977년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서서히 인기를 끌던 책은 드디어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다른 뱀파이어 관련 작품이 단순히 피와 모험이 있는 흥미성 위주의 읽을거리라면,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루이지애나에 살고 있던 주인공 루이스를 통해 뱀파이어의 기원과 삶에 대한 원초적인 고민을 하고 이를 추적하게 한다. 루이스가 끊임없이 고민하는 ‘뱀파이어는 누구이며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라는 고민은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란 철학의 제 1 명제를 치환한 것에 다름없다.

철학적인 뱀파이어 루이스는 여동생의 죽음 이후 절망에 빠져 있다가 장난끼 넘치는 뱀파이어 레스타에 의해 인간의 삶을 끝내고 뱀파이어가 된다. 피를 갈망하는 뱀파이어의 삶을 거부하고 동물의 피로 연명하다 어느 날 우연히 폐허가 된 집에서 혼자 있는 아이 클라우디아를 보고 끝내 유혹에 넘어가 흡혈을 하고 만다.

루이스를 따라다닌 레스타는 그를 위해 클라우디아를 뱀파이어로 만든다. 원래 뱀파이어계에서는 불문율로 아이를 불사신으로 만들진 않는다. 몇백년이 지나도 어린이의 외모를 취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미치기 때문이다. 젊고 아름다운 두 청년 뱀파이어와 어린 뱀파이어의 기묘한 동거생활은 평론으로부터 게이 부부와 입양아라는 새로운 가족형태를 예언했다는 평까지 받는다.

또한 즉흥적이고 모험심이 강한 레스타와 파리에서 뱀파이어 집단을 지배하는 아르망 등의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은 작품의 재미를 한껏 높여준다.

특히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출생상 그 어떤 문학작품보다 철학적인 냄새를 짙게 풍긴다. 따라서 단순히 뱀파이어 소설이라 생각하고 읽었다간 작품이 건드리는 철학적 명제와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놀랄 수 밖에 없다. 원작이 워낙 뛰어난 탓에 닐 조단이 영상화를 잘 하긴 했지만, 원작의 감동을 채 1/10도 전달하지 못했다. 원작을 읽어본다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앤 라이스 (황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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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와의 인터뷰
감독 닐 조단 (1994 / 미국)
출연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커스틴 던스트, 스티븐 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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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크루즈가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브래드 피트에게 주인공 루이스 역을 양보한 이유는 이후 작품에선 레스타가 주인공인 탓이었다. <크라잉 게임>의 닐 조단 감독은 원작의 방대한 분량과 철학적인 내용 그리고 주변의 엄청난 기대에 짖눌리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과 원작의 과감한 생략으로 상당한 완성도 있는 작품을 완성해낸다.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안토이노 반데라스, 크리스찬 슬레이터 그리고 어린 시절의 커스틴 던스틴까지 호화로운 캐스팅은 지금봐도 황홀하기 그지 없는 조합이다.



2) 뱀파이어 레스타 - 자유로운 영혼의 도발적 모험!

뱀파이어계에서 유일한 철학자 루이스의 삶은 1권으로 거의 끝이라 할 수 있다. 존재에 회의를 갖고 살아가는 그는 결국 인간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서 살 수 밖에 없다. 반면, 1편에선 악역으로 여겨진 레스타는 2권부터 5권까진 주인공으로서 변덕스런 성격으로 멋진 여행을 다니게 된다.

사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톰 크루즈가 루이스역을 당시 신예였던 브래드 피트에게 넘긴 것은 이후 작품에선 레스타가 주인공인 탓이었다. 그러나 영화 제작은 예상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안토니오 반데라스, 크리스찬 슬레이터 등의 특별한 조합은 이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2편에선 레스타가 화자로 등장해 루이스가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을 조목조목 뒤집어버린다. 말하자면 2편은 1편에 대한 반전이 주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근원을 찾기 위해 애쓰던 루이스는 결국 몇 백년을 산 아르망이 최고 원로(?) 뱀파이어로 아는데, 이것이 틀린 사실임을 알려준다.

레스타를 뱀파이어로 만든 마그누스, 그리고 뱀파이어의 최초 원인인 이집트의 아카샤와 엔킬까지 등장하며 뱀파이어가 어떻게 탄생하고 이어져 왔는지 알려준다. 2편에서 레스타는 록스타가 되어 도발적인 행동을 펼친다. 바로 뱀파이어계의 불문율인 어둠속에서 조용히 살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정체를 모든 인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밝히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를 위해 책을 쓰고 공연을 펼친다(루이스 역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란 제목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기자 다니엘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1편의 제목에 ‘인터뷰’가 들어간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레스타의 도발적인 행위에 반발해 엄청난 수의 뱀파이어들이 그를 단죄하기 위해 공연장으로 속속 집결하게 된다.

뱀파이어 레스타. 1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앤 라이스 (황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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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로미오 머스트 다이>에서 이연걸과 함께 출연했던 걸로 익숙한 알리야의 유작. 알리야는 여기서 뱀파이어계의 여왕 아카샤로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는 전작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와 달리 철학적인 냄새는 거세하고, 단순한 환상오락물로 흘러간다. 덕분에 최소 영화로 세 편이상 묶어야 할 작품은 한편으로 믹스된다(영화는 뱀파이어 연대기 2편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3편을 주내용으로 한다. 당연하지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내용이 진행될 수 밖에 없다).

알리야의 유작이자 앤 라이스 원작소설을 기반으로 한 탓에 기대를 모았지만, 영화의 수준은 오락영화에서 멈춘다. 참으로 아쉬운 작품이다. 이 작품 이후 <뱀파이어 연대기>는 더 이상 영화화 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퀸 오브 뱀파이어
감독 마이클 라이머 (2002 /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출연 알리야, 스튜어트 타운젠드, 마구리에트 모로, 벵상 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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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저주받은 자들의 여왕 - 결국 여왕의 움직이다.

록스타 레스타의 노래는 잠자고 있던 뱀파이어의 여왕을 깨운다. 인간과 뱀파이어들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석상처럼 미동조차 없던 그녀는 레스타의 젊은 영혼에 반해 아카샤는 레스타를 찾아오기에 이른다.

젊은 뱀파이어 레스타는 아카샤의 허락하에 그녀의 피를 흡혈함으로써, 햇빛에도 타지 않고 하늘을 날 수 있고 엄청난 힘과 능력의 소유자가 된다. 그리고 전 세계를 파멸시키려는 계획을 진행하는 여왕 아카샤를 막기 위해 전 세계의 뱀파이어중 원로들이 움직이게 된다.

뱀파이어 연대기 중에서 2편과 3편이 연결되는 이야기다. 상당히 철학적인 1편과 달리 2편과 3편은 상식을 초월하는 파격적인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설정으로 읽는 이의 입을 떠억 벌리게 한다. 앤 라이스는 뱀파이어란 존재의 시초가 실은 ‘육체를 가지고자 한 영혼과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빚어져 만들어낸 비극’으로 정한다. 그후 욕망에 의해 불멸의 뱀파이어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린다.

몇 천년을 살았고 ‘여신’으로 표현할 만큼 엄청난 힘을 가졌음에도 아카샤는 대도시가 아닌 섬에서 여신처럼만 지낸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엄청나게 변해버린 세상에 그녀는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뱀파이어 연대기>를 읽다보면 재밌는 게 영생이 허락된 뱀파이어지만 실제로 오래사는 뱀파이어들은 드물다. 그들은 자신이 알던 시대가 변하는 것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들의 육체는 영원히 살 수 있지만, 그들의 정신은 인간처럼 나약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것은 여왕마저 마찬가지며(그런 탓에 뱀파이어들은 동면의 형태를 취한다). 동면을 취하지 않고 몇백년을 살아간 뱀파이어론 루이스를 꼽을 수 있으며, 그의 그런 정신적 상태 때문에 레스타와 아르망이 그를 간절하게 원하게 된다.

저주받은 자들의 여왕. 1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앤 라이스 (황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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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육체의 도둑 - 작은 여행

엄청난 힘을 가진 레스타는 곧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낀다. 그리고 다른 이의 육체로 전이하는 능력을 가진 이와 위험한 거래를 한다. 바로 자신의 몸을 내주고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바꾸는 거래를 한 것이다. 잠시만 서로 다른 몸에 거주하기로 하지만, 당연히 ‘육체의 도둑’은 엄청난 능력을 지닌 레스타의 몸을 가지고 도주한다. 레스타는 자신의 몸을 되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1편을 문학서적, 2편과 3편을 꽤 괜찮은 고딕소설로 평한다면, 4편은 실망스런 소품이라 말하고 싶다. 앤 라이스의 문체는 화려체로 분류된다. 그녀는 촛불 하나만 가지고 10페이지 이상을 써내갈 수 있을 만큼 화려한 문체를 가지고 있다. 1-3편까진 그런 화려체에 상상을 뛰어넘는 등장인물들의 여행과 행동이 섞어 정말 독특한 읽을거리를 제공했다. 그러나 4편에선 화려체를 가진 이들의 단점이 드러난다. 바로 내용은 없어지고 화려한 묘사만 늘어난다는 것.

4편을 읽고 나면 정말 허무하다. 물론 뛰어난 그녀의 문체는 읽는 것만으로 멋지긴 하지만, 이전 작품에 비해 내용이 없는 탓이다. 재미도 그다지다. 따라서 개인적으론 4편을 추천하지 않는다.

5) 악마 멤노크 - 컬트 소설로 되돌아오다!

5편에선 놀랍게도 사탄이 등장한다. 인간의 간절한 목소리에 무심한 하나님에 반발해 악마가 된 천사 멤노크가 등장한다. 그는 지옥이 인간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곳이 아니라 실은 사람들이 천국으로 생각하는 곳으로 갈 수 있게끔 중간 기착지처럼 만든 곳이라 한다. 이제 레스타는 하나님과 멤노크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5편이 놀라운 것은 드디어 레스타가 만나는 이가 궁극의 인물까지 닿기 때문이다. 설마 신과 악마의 이야기까지 이를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작가 앤 라이스는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금단의 영역에 도전한다. 그리고 꽤 괜찮은 수확을 거둔다. 재미도 괜찮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고딕체’로 분류할 수 있던 그녀의 문체가 이번 작품에선 상당히 현대적인 문체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번역가 김혜림씨가 바꾼 탓도 있겠지만, 결국엔 원작을 충실하게 번역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 생각한다. 뜻밖의 결말은 다소 당신을 어리둥절하게 하 것이며, 5편을 끝으로 레스타는 연대기의 주인공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5편을 읽는다면 당신도 작가와 같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으리라. 왜냐하면 이 담대한 모험자에겐 더 이상 모험할 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뱀파이어 연대기>는 영미권에선 대학교재로 쓰이고 일상 대화에서 소재로 애용될 만큼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실제 책을 읽어보면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 이해할 것이다. ‘뱀파이어 연대기’를 읽으면서 놀라운 것은 단순히 흡혈귀 소재를 가지고 이 정도로까지 격조 높은 소설을 만들어낸 작가의 능력이다. 거침없는 상상력과 뛰어난 문체 그리고 시대정신을 꿰뚫는 작가의 문제의식은 환상소설을 문학의 반열까지 올렸다. 기회가 닿는다면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는 그만한 값어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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