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신비로움을 벗어던진 눈물의 여왕 수애

朱雀 2009. 9. 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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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나비처럼>홍보차 수애가 무릎팍 도사를 찾았다. 그녀의 고민은 ‘단아한 이미지를 깨고 싶다’고 방문한 이유를 밝혔다. 얼핏 생각해보면 복에 겨운 고민인 것 같지만, 당사자인 수애의 말마따나 연기자인 그녀로서는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줘야 하는데, 관객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매우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의상부터 홀딱 깬다”고 유세윤이 수애의 의상을 꼬집을 정도로 그녀는 털털하게 입고 <무릎팍 도사>를 찾았다. 우리에게 항상 드레스를 입거나 한복을 입은 의상으로 잘 알려진 탓일까? 평상시 트레이닝복을 즐겨 입는다는 말에, 유세윤은 “오늘은 평상시가 아니고 방송하는 날인데..”라고 일격을 날렸다. 웃으면서 넘겼지만 그녀가 굳이 편한 복장을 택한 이유는 꾸미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1979년생인 그녀는 2002년 MBC베스트극장 <짝사랑> 주연으로 데뷔한 이래, <맹가네 전성시대><러브레터><회전목마> 등으로 눈도장을 찍다가 <해신>을 찍으며 단아한 이미지를 쌓게 된다. 2004년 <가족>으로 대한민국 신인상을 받고 이후 <나의 결혼원정기><그해 여름>등을 찍다가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 곳에>로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지만, 흥행에선 재미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대신 광고에선 장동건과 함께 베스트커플상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이준익 감독 역시 <님은 먼 곳에>에 대해 나름 기대가 컷다. 수애가 조심스럽게 밝혔지만, "관객수가 얼마나 들겠냐?"는  감독의 질문에 수애는 500만을 이야기했다가 이준익감독의 800만이란 숫자를 듣게 된다(참고로 최종 관객수는 약 180만명 정도였다).

첫 무대인사에서 이준익 감독은 “다소 어려운 영화가 되었다”라고 관객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고 . 수애는 가슴이 아파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자신은 영화 덕분에 연기의 폭이 넓어졌지만 이준익 감독은 반대라 죄송한 듯 말했다.

수애는 데뷔 초창기 정윤희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리틀 정윤희’란 별명을 얻게 된다. 공교롭게도 어머니의 성이 정씨고 나이대도 비슷하다보니, 정윤희의 숨겨진 딸이 아니라는 의혹까지 사게 되었다. 물론 정윤희의 팬들로부터 ‘너 따위가’란 반응을 받기도 했다.

수애는 친구 따라 갔다가 덩달아 캐스팅된 사례였다. 그러나 왠지 사기성이 느껴지는 계약이었다. 계약금을 받는 게 아니라 계약금을 내고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른 친구들은 60만원을 냈는데, 그녀는 35만원을 냈다는 정도?

며칠 뒤 광고 오디션에 합격했는데, 팬티 모델로 촬영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애는 광고촬영장에 가서 스스로에게 놀랐다고 한다. 속옷 촬영에 주변의 수 많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잊고 몰두하고 재밌어 하는 자신에게.

근데 안타깝게도 결과물은 좋지 않았다. '코가 주먹만'하게 나온 탓이었다. 더 웃긴 “컨디션에 따라 코가 달라진다”고 말해 무릎팍 일동을 폭소에 빠뜨렸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한때 코수술까지 생각할 정도였다고.

그리고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잡지 모델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걸그룹을 조직하고 랩퍼를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무릎팍에서 수애가 보여준 랩실력은 안하느니만 못했다. 어느 날 현소속사 대표가 수애를 보고 ‘연기자의 길로 가자“며 2개월 동안 매일같이 쫓아다녀 결국 그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연예인이 되는 게 꿈이었느냐?”란 질문에 수애는 “아니다”라고 했다. 어린시절부터 부끄럼 많이 타고 얼굴이 잘 빨개지는 그녀는 자신이 이 길을 가리라 미처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데뷔를 하고 가족들이 힘이 되어줄 거라 예상과 달리, <맹가네> 등의 드라마로 인지도를 쌓고 있을 때, 가족들이 “어색하다. 안 어울리는 것 같다”라는 평을 들으며 심각하게 고민했었단다. 또한 가족들은 당시 아버지의 직업이 밝혀질까봐 노심초사했었다. 구두수선공이란 직업이 밝혀지면 수애에게 큰일이 날까봐 걱정한 탓이었다.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수애는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려운 가정 환경 탓인지 수애는 장녀로서 자신이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단다. 불안해하는 부모님을 위해 “3천만원을 모으면 그만 두겠다” 조금 지나선 “2억을 벌면 관두겠다. 전세 아파트 자금을 모으면 관두겠다”란 식으로 부모님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광고모델로 급부상하면서 이젠 집까지 해드릴 정도로 성장했다.

주변에 자신의 누나가 연기자 수애란 사실을 밝히지 않아, 집을 찾아온 여자친구마저 놀래 밥을 제대로 못 먹을 정도로 불편해했다는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수애는 대학진학을 하지 못했다. 상고 출신인 그녀는 “대학 시험을 쳤지만 떨어졌다”는 말을 덤덤하게 했다.

고교시절 학교선생님들이 파업을 했을 때, 수애는 버스를 타고 2호선 지하철을 타고 내내 공상에 빠졌단다. 서른 두 살의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그리고 그때 생각보다 훨씬 잘 되었다고 말했다. 당시 그녀가 꿈꾸는 것은 화목한 집안을 꿈꿨다. 크리스마스때 선물을 가져오고, 양말에 선물을 집어넣는 그런 아기자기한 상상을. 서른이 되어 그녀는 독립했지만, 6개월동안 살고 외로워서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쑥스럽고 소심했던 수애가 열심히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이었지만, 이젠 자신을 위해 연기한다고 그녀는 밝혔다.

수애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무렵엔 “한발만을 담았다”라고 표현했다. “자신이 없었다”라고 했다. 제작진이 자신을 원치 않으면 언제든지 나갈 준비를 한 것이다. 그러나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았기에 최선을 다해 혼신의 연기를 펼쳤단다.

수애는 처음에 오해를 많이 받았다. 소심하고 쑥스러운 성격에 주변에 워낙 뛰어난 이들이 많아 그녀는 스스로 주눅이 든 탓이었다. 그런 탓에 연기 선배자들에게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했고, “수애는 건방지다”란 소문과 기사가 날 정도였다.

수애는 작가진들과 미팅했을 때 “눈물이 나면 녹화를 그만두겠다”라고 선전포고했는데, 너무 자주 울게 되어 전혀 무의미한 공수표가 되어버렸다.

“가장 사과하고 싶은 선배”를 묻자, 수애는 이병헌을 꼽았다. <그해 여름>을 찍을 때 이병헌은 상대 배우로서 소통을 원했는데, 수애는 그걸 거부했다. 수애는 “앞뒤 가리지 않고 빠질 만한 배우”라 더욱 마음의 벽을 쌓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수애는 여태까지 두 번의 사랑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러브콜도 있었지만, 단아하고 여성적인 이미지를 가진 것으로 생각했다가 예상과 다르자 떠나간 것 같다고 했다. 중학교때 내내 짝사랑을 한 이를 고등학교때 만나 졸업할 때까지 사귀었다. 배우되기 전에 한번 더 사랑을 했고.


<짝사랑>이 방송되자 홈피에 “당신의 모습이 아름답다. 열심히 해달라”고 맨 처음 게시글을 남겨 기뻤다고 한다. 그러나 "연락은 안 하고 싶다"며 가슴속에 첫사랑을 좋은 추억으로 남기고 싶어했다. 최종 꿈을 묻는 질문에 수애는 의외로 “좋은 엄마”로 답했다. 아마 약간은 힘들었던 가정 생활과 자신의 소심하고 약한 모습 때문인 듯 싶었다.

수애는 <무릎팍 도사>에서 참으로 많은 눈물을 보였고,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 명성황후 역할로 단아하고 우아함이 필요함에도 자신의 털털함과 꾸미지 않은 모습을 내보이며 자신의 아픈 과거까지 최대한 밝혀냈다. 광고모델로선 최고 주가를 올리고 <해신>등에선 재미를 보았지만, 아직 수애는 영화에선 이렇다할 대표작이 없다. 부디 동갑내기 배우인 조승우와 함께 하며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는 이번 작품으로 그녀를 대표작이 탄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다음주엔 <내 사랑 내 곁에>의 홍보를 위해 하지원이 나올 예정이라는데, 하지원은 수애와 어떻게 다른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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