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TV비평

행복과 노동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삼시세끼’

朱雀 2015. 8. 25. 07:00
728x90
반응형

어떤 이들은 제목을 보고 ‘예능을 보면서 넘 다큐로 받아들이는 거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물론 어느 정도 동감한다. 우리가 예능을 보는 데 넘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피곤한 일일 것이다. 우리가 예능을 보는 이유는? 아무런 생각없이 즐기기 위해서다.



그런데 ‘삼시세끼’에선 마냥 편하게(?) 그러기가 어렵다. 왜? 여기저기에 숨은 의미가 많기 때문이다.  ‘삼시세끼’에서 출연자들은 말 그대로 삼시세끼를 먹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한다. 텃밭에서 각종 채소를 가져오고, 불을 피워 가마솥에 밥을 한다. 싱크대를 비롯한 문명의 이기를 거의 쓸 수 없기에 무척이나 어렵고 수고러움이 요구된다.



그야말로 유기농 라이프다. 오늘날 시청자들의 절대 다수는 마트에서 식재료를 구입해서 집에서 해먹는다. 그나마도 외식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굳이 이서진과 옥택연처럼 인기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직장인과 대학생들은 바쁜 생활 때문에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는것 조차 어렵다. 따라서 정성스런 ‘집밥’을 삼시세끼로 챙겨먹기란 오늘날 우리에겐 '미션 임파서블'이자 '사치 아닌 사치'가 되어버렸다.







물론 ‘삼시세끼’에서 출연진이 하는 집밥은 험난하기 그지 없다. 그들은 한끼를 해먹기 위해서 최소 3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이 필요하다. 그들의 그런 모습은 시청자에게 자연스럽게 웃음과 함께 밥과 반찬을 해먹는 과정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런데 ‘삼시세끼’는 여기에서 한단계 더 나간다. ‘삼시세끼’ 정선편에선 고기를 먹기 위해선 옥수수를 그만큼 수확해야만 한다. 지난 15화에선 무려 1,000개의 옥수를 따야만 했다. 약 두 시간의 고동노동 끝에 출연자들이 손에 쥔 돈은 겨우 30만원에 불과했다-그들이 연예인이란 사실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분명히 적은 돈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돈을 가지고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그들은 읍내에서 소고기와 각종 물품을 마구 구입하는 사치(?)스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웃음과 함께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행복’에 대해 고민케 한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오늘날 한국인들은 ‘행복=많은 돈’으로 등식화되어 있다. 통계적으로 한국에선 자산이 20억부터가 부자로 여겨진단다. 2억도 아니고 20억이라니. 한달에 100만원씩 저금해도 1년해봤자 1,200만원이니, 100년을 저금해야 고작 12억이다. 이런! 두번 환생해도 불가능한 액수다.



하긴 서울의 평균집값이 4억 5천만원이니, 이것도 일반 봉급생활자로선 최소 10년 이상 저금해야 가능한 일이니 난감한 상황이다. 실제적으로 한국인의 삶은 분명히 여유가 없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잘 알려진대로 세계에서 행복지수 1위인 나라인 부탄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이 겨우 2천불 수준으로 가난한 나라다.




겨우 채끝살을 먹으면서 '부농의 맛'이라 운운하는 것은 다소 우습지만, 채끝살 450그램을 먹기 위해서 무려 옥수수 140개를 팔아야 하는 상황은 그들에게 고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우게 한다. 아울러 예능에서 고기를 어렵게 획득(?)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긴장감(?)을 더하면서 더욱 재밌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들은 매우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왜? 매 순간을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만족해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인 한국에선 TV를 비롯한 매체들은 소비를 부추기고 있고, 우린 저도 모르게 거기에 빨려 들어가서 ‘더 많은 것’을 갖기를 원한다.



그러나 가지면 행복할까? 오히려 가지면 가질수록 우린 더 불행해지는 건 아닐까? ‘삼시세끼’에서 출연자들은 잠시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서 전원의 삶을 체험한다. 도시인들의 예상과 달리 전원의 삶은 끊임없는 노동을 요구한다.



농사는 시시때때로 잡초를 뽑아내고, 가꾸고, 수확하고, 판매하는 등의 수고를 요구한다. 게다가 많은 것을 ‘자급자곡’해야 하는 삶은 분명히 도시의 삶에 비해서 더 육체적 노동의 강도가 셀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삶은 나름대로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저도 모르게 육체노동을 경시하고 정신노동을 중요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농사를 짓거나 산이나 들에서 채취하는 노동이 없다면 우린 기본적인 식생활을 할 수가 없다. 먹지 않으면 우린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어렵게 번 돈은 그만큼 값지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오늘날 도시에서 고기를 먹기란 얼마나 쉬운 일이며, 우린 그것에 대해 그다지 감사할 줄 모른다. 그러나 ‘삼시세끼’의 출연자들은 고기를 먹으면서 환호성을 터트린다. 



행복의 가치는 많이 가짐으로써가 아니라 적게 가졌어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닐까? 출연자들은 땡볕에서 옥수수를 수확하는 수고를 통해서만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얼마나 달콤하게 느껴지겠는가? 그들에게 그 순간의 고기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일 것이다.



땀을 흘리며 노동을 하면서 땅의 소출을 먹으면서 우린 자연을 경외하고, 노동의 가치와 더불어 오늘날 우리가 잊고 있는 행복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비록 예능에 불과하지만 ‘삼시세끼’는 시청자들에게 많은 것들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지 않은가?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