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수지는 틀렸는가? ‘도리화가’

朱雀 2015. 12. 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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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전에 너무 많은 악평을 접한 탓일까? 아니면 아무런 기대감없이 영화를 본 탓일까? 개인적으로 ‘도리화가’를 무척 괜찮게 보았다. 물론 관객들이 악평 한 이유는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에겐 1993년작인 ‘서편제’가 있다.



‘서편제’는 매우 특별하고 유의미한 성취를 이루었다. 단관개봉이 대부분이던 시절, 서울에서만 100만이 넘는 관객동원에 성공했다. 국내영화, 그것도 판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가 이토록 엄청난 기록을 동원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서편제’는 주연인 오정해가 애초에 국악인이다. 따라서 그녀가 영화에서 들려주는 판소리는 그 차원이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뿐인가? 영화 말미에 여주인공인 송화가 득음 후 들려주는 소리를 위해서 안숙선 명창이 직접 녹음까지 했다.



따라서 그런 판소리를 들은 관객으로선 ‘도리화가’에서 수지를 비롯한 배우들이 들려주는 소리가 마음에 찰 리가 만무하다. 또한 ‘서편제’는 말 그대로 소리에 미친 꾼들이 득음을 위해서 어떤 일을 했는가? 수양아버지인 유봉이 딸인 송화를 속여 약을 먹여 장님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야말로 소리를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할 짓까지 하고 만다. 이는 예술에 미친 사람이 무슨 짓까지 할 수 있는지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미 그런 ‘서편제’를 기억하는 관객에게 ‘도리화가’로선 정면승부를 해선 이길 방법이 없었다.



그런 탓일까? ‘도리화가’는 다른 방법을 취한다. ‘서편제’는 ‘소리’자체에 집중하고, 예술과 인생을 말한다. 반면 ‘도리화가’는 심청과 춘향에 집중한다. 수지가 맡은 진채선은 여자가 소리를 할 수 없던 시대에 온몸으로 저항하고 부딪쳐서 마침내 최초의 여류소리꾼이 된 인물이다.


그녀의 일생은 기가 막힌다. 어린 시절엔 아버지란 인물은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어디론가 도망가 버렸다. 어머니는 딸을 먹여살리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병에 걸려 죽고 만다. 어머니는 마지막 방법으로 인연이 있던 기생집에 딸을 맡긴다.



그런데 묘하게도 진채선이 기생이 되지 않고 일꾼으로 일하게 된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기생집에서 일하게 된 그녀가 느꼈을 감정이란. 관객으로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그런 그녀가 심청가를 들으면서 자신의 처지와 비교해서 소리에 끌림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훗날 스승이 되는 신재효가 아직 아이인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며 ‘마음껏 울어라. 울다보면 웃게 될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운명적이란 말밖에. 그녀가 나이를 먹고 소리를 너무나 하고 싶어서, 결국 신재효에게 ‘소리를 가르쳐 달라’라고 하면서 매달리는 모습은 역시 ‘운명’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도리화가’에선 익숙한 것들이 등장한다. 여자로선 무대에 설 수 없었던 그녀는 급기야 남장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여태까지 다른 영화와 드라마와 달리 ‘남장’은 금방 들통난다. 익숙한 클리셰를 처리함에 있어서 ‘도리화가’는 영리한 방법을 취한다.



관객들의 예상을 읽고 재빨리 반응을 한 것이다. 또한 ‘도리화가’에서 득음을 위해 수련하는 모습은 ‘서편제’와 비교될 수 밖에 없기에 다른 식으로 접근한다. 수련하는 모습보단 신재효와 진채선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다. 신재효는 진채선에게 스승이다.





따라서 그는 자연스럽게 진채선에게 부성애를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진채선은 스승인 신재효에게 아버지뿐만 아니라 남자 즉 정인으로서의 마음을 품고 있다. 영화에서 심청가와 춘향가에 집중하는 것은 그런 둘의 관계를 돋보이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도리화가’는 수지를 비롯해서 류승룡의 얼굴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클로즈업 신으로 잡아낸다. 이는 영화로 보면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얼굴을 화면에 가득 잡을 정도로 클로즈업 하면? 배우는 표정과 눈빛으로 연기를 해야 한다.



따라서 배우라면 이런 클로즈업신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수지는 스승을 보는 눈빛과 표정을 통해 존경과 애정을 동시에 담은 눈빛과 표정을 보여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화면에서 엄청난 빛을 발한다. 수지는 화장도 별로 하지 않은 채 자신을 내비춘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당당하고 아름답다. 배우로선 그녀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도리화가’ 한편을 통해서 아이와 여성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진채선은 처음엔 그저 소리가 좋은 아이였지만, 이내 시대의 편견과 선입견에 몸을 던져서 저항하면서 여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명의 당당한 여류소리꾼으로서 성장해내고 만다.



따라서 수지는 풋풋함을 지닌 소녀뿐만 아니라 만개한 소리꾼으로서 여성적 매력을 뽐내야만 했다. 또한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도 동시에 신재효를 자신의 정신적 아버지이자 연인으로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모습을 그려냈다. 이는 말이 쉽지 연기하기 쉬운 부분이 아니다.







비록 아이돌이긴 하지만 동시에 연기자로서 수지는 자신의 매력과 끼를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여겨진다. 극장안에서 여성관객들은 수지의 표정 하나와 손짓 하나에 웃고 울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또한 신재효역을 연기한 류승룡의 연기는 훌륭했다.



시대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소리에 자부심을 가지고 제자를 키우는 그의 모습은 우직하면서도 은근해서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송새벽 역시 훌륭했고, ‘응답하라 1988’을 통해 이제 관객에게 익숙해진 안재홍과 이동휘 역시 감초 역활을 톡톡히 해냈다.



자칫 너무 신파거나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를 띄우고 관객의 주위를 환기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렇다면 ‘도리화가’에서 잘못한 것은 무엇인가? 일단 첫번째는 서두에 밝힌 대로 ‘판소리’를 들 것이다. ‘서편제’의 오정해처럼 애초에 여주인공이 국악인으로 캐스팅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흥행을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문 국악인에게 의뢰해서 녹음하고 더빙하는 방법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했다. 비록 오늘날 판소리를 자주 듣지 않지만 극장을 찾아올 정도의 수고를 번거로워하지 않는 관객의 기대치를 채우기 위해서. 





물론 명창에게 직접 찾아가서 배운 배우들의 정성은 높이 평가하지만 짧은 기간안에 관객의 기대치를 채울 순 없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명창이 되기 위한 수련과정이 너무 약하게 처리된 것이다. ‘서편제’까진 아니더라도 그에 근접하는 성장과정을 원했던 관객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제작진으로선 다소 억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도리화가’는 ‘서편제’와 다른 방식으로 소리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객은 입장료를 지불하고 극장을 찾아온 만큼, 어떤 식으로든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은 제작진의 책임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도리화가’의 화면은 아름답고 신재효와 진채선의 이야기는 관객을 눈물짓게 하기에 충분했다. 수지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건축한개론’을 통해서 국민첫사랑이 된 그녀가 관객에게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도리화가’는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여겨진다.



그녀는 한명의 여배우로서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녀의 의도와 관객의 기대가 어긋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수지는 여배우로선 자신의 매력과 끼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충무로에 안착했다고 여겨진다. 그녀를 다른 작품에서 조만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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