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이방원은 어떻게 흑화하는가? ‘육룡이 나르샤’

朱雀 2016. 1. 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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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30화에선 이방원이 흑화될 수 밖에 없게 되는 상황을 보여주었다. ‘역사가 스포’라고 우린 정몽주가 이방원에 의해 선죽교위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정도전 역시 제 1차 왕자의 난때 (이방원에 의해) 제거되는 사실을 알고 있다.



‘육룡이 나르샤’에선 이방원은 현재 정도전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가 만들고자 하는 새 나라의 이상에 몹시 심취되어 있는 상태였다. 심지어 스승인 정도전이 정몽주를 포섭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는 모습마저 이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시청자의 입장에선 언제쯤 이방원이 스승인 정도전과 맞서게 될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30화에서 그 계기가 드러났다! 정창군을 보위에 올린 후, 정몽주와 정도전은 단둘이 만나게 된다. 무명의 조직원인 초영이 둘을 급습하려는 현장을 이방원이 한발 앞서 처리하고, 우연히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그러면서 정도전이 꿈꾸는 나라에서 왕은 그저 아무런 실권이 없는 존재에 불과하고, 모든 권력은 과거를 통해 선발된 관료들, 즉 사대부들이 갖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왕은 재상외엔 뽑을 권리가 없고, 사유재산을 가질 수 없고, 신화와 독대를 할 수 없다-. 심지어 왕족과 종친은 아예 정치에서 배제된다. 이로 인해 이방원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극중에서 이방원은 ‘무기력한 자신’을 제일 참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따라서 썩어빠진 고려를 뒤집어엎고 새로운 나라 조선을 창건하여 모든 백성이 행복한 나라를 꿈꾸는 젊은 이방원으로선 기껏 힘들게 나라를 만들어봐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은 엄청난 절망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극중 그려지는 정도전이 그리는 나라는 충분한 학식과 인품을 지닌 이들이 나라를 공동으로 다스리는 점에서 플라톤의 ‘철인정치’와도 일맥상통한다. 얼핏 생각하면 모든 이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오늘날의 민주정치가 제일 좋은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 정치가 이루어지기 쉬운 맹점이 있다(혹은 중우정치 역시 문제다). 따라서 정치를 할만한 식견을 갖추고, 모든 시간을 정치에 할애하고, 사심없이 일할 수 있는 이들이 모여서 하는 철인정치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의견이라 할 수 있겠다. 아울러 극중 정도전이 꿈꾸는 관료제는 신분에 의한 세습이 아니라 철저히 능력제이므로, 그런 부분이 상당부분 보장된다고 하겠다.



이방원이 정도전에게 크게 실망하고 아마도 배신감을 느끼는 순간에, 정도전과 정몽주 역시 서로의 메꿀 수 없는 차이에 대해 느꼈을 것이다. 정몽주와 정도전은 ‘개혁을 해야한다’는 점에선 일치한다. 그러나 정몽주는 끝까지 ‘고려라는 틀안에서’를 고집하고 있으며, 정도전은 기존 권력층인 권문세가들을 뿌리 뽑지 않고선 개혁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역성혁명’을 꿈꾸고 있다. 이는 두 사람이 다 유학을 배웠지만, 입장이 다르다는 데 있을 것이다.







정몽주는 극중에서 밝혔지만 ‘역성혁명’은 역사에 반역자로 이름을 올리는 끔찍한 일로 생각하고 있다. 이는 그가 백성보다 왕을 더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반해 정도전은 백성을 중심에 두고 ‘그 외엔 왕조차 바꿀 수 있다’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두 사람의 생각의 차이는 애초에 메꿀 수 없는 것이다. 극중 두 사람은 끝없이 토론하고 서로를 죽을 때까지 설득하려는 ‘아름다운 정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예고편에서 흑화된 이방원을 보면서, 우린 이방원이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암살하고 스승인 정도전 마저 제거하는 끔찍한 미래를 엿보게 된 듯 싶다.



왜냐하면 무명이란 조직에서 이방원을 ‘칼로 쓰자’라는 논의가 나오고 있고, 태조 왕건까지 올라가는 밀약이 있다지만 무명의 입장에선 굳이 고려를 고집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방원은 자신의 야심을 위해서 무명까지 이용하려 들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30화의 결말과 31화 예고편은 이후를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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