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편견과 차별의 사회를 말하다! ‘주토피아’

朱雀 2016. 2. 2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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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애니메이션을 극장에 보러 갔다가 이렇게 충격을 받은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별 다른 정보없이 보러 간 ‘주토피아’는 포스터만 보고 할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버디무비를 생각했다. 토끼 경찰이 사기꾼 여우의 도움을 받아서 사건을 해결하는.


그러나 막상 극장에서 본 ‘주토피아’는 필자의 예상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영화는 초반부터 차별과 편견을 이야기한다. 주디 홉스는 어린 시절부터 경찰의 꿈을 안고 커왔고, 최초의 토끼 경찰에 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 과정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눈물겨웠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그의 부모님조차 ‘토끼는 안돼’라는 식으로 포기를 종용했고, ‘같이 당근농사 짓자’라고 한다. 그러나 주디는 주토피아에 가고 싶어했고, 자신의 꿈인 경찰이 되어 사회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비록 빠르게 지나가지만 그가 경찰학교 훈련에서 매번 실패를 겪으면서도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은 비록 애니였지만 감동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막상 경찰학교를 수석졸업하고 주토피아의 경찰서에 들어가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결국 주차위반딱지나 끊는 임무나 주어진다. ‘주토피아’는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 세계조차 여전히 서로에 대한 불신과 편견이 가득하다.



육식동물 가운덴 자신의 선조가 육식동물이었기에 자신의 힘만 믿고 초식동물을 괴롭히는 이도 존재하고, 각자의 생김새에 따라서 별다른 스스럼 없이 편견을 쉽게 말하고 다닌다. 가령 사기꾼으로 등장하는 닉 와일드의 경우 단지 여우라는 이유만으로 ‘늘 누군가를 속일 것이다’라는 편견에 시달리다가 ‘좋아! 그런 그 편견대로 살아주겠어’라고 결심한 이라 할 수 있겠다.






비록 엄청난 편견과 차별을 깨고 경찰학교를 수석졸업했지만 주디와 닉은 서로 그런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하겠다. ‘주토피아’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물들의 생김새만큼이나 우리가 가지는 고정관념을 이용해서 우리가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편견과 차별을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적용되기에 보는 내내 씁쓸해진다. 세계의 수 많은 이들이 모인 미국은 부색과 경제력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사회구성원간의 갈등이 있었던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소위 단일 민족이란 우리 역시 경제력과 출신지 등을 이유로 차별에 익숙해져 있지 않던가?



게다가 이젠 공공연히 ‘개천에서 용나는 건 불가능하다’고 모두들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씁쓸할 수 밖에 없었다. ‘주토피아’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암울하다. 초식동물이 가진 육식동물에 대한 공포, 육식동물 역시 초식동물들이 자신을 편견과 의심의 눈초리에 보는 것에 서로가 익숙해져 있고 이는 ‘소리없는 폭력’으로 자신과 모두에게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토피아’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단순히 한쪽이나 한 캐릭터에게 일방적으로 소위 말하는 ‘선함’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디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보이던 물소 서장은 ‘사실은 나름 친절하고 배려깊은 캐릭터’라는 식의 반전을 준다.







물론 ‘주토피아’의 반전은 너무 뜬금없어서 조금 아쉽지만, ‘애니’라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 수준이다. ‘주토피아’에서 가장 큰 사건은 무려 14마리의 동물들이 연쇄실종사건이다. 당연히 주인공인 주디와 닉은 함께 이 사건을 파헤쳐 나가고, 그 과정에서 거대한 음모와 마주하게 된다.



작품에선 14마리의 동물들은 모두 육식동물이며, 이들은 원래 온순했는데,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매우 폭력적으로 변해버렸다. 주디와 닉은 갖은 고생끝에 그 14마리를 모두 가두고 있던 라이온 하트 시장을 잡아내지만 이는 오히려 더 주토피아를 큰 혼란의 상황으로 빠뜨리고, 두 캐릭터 역시 서로에 대한 엄청난 갈등에 빠지는 계기만 되어버린다.



‘주토피아’는 서두에 밝혔지만 몹시 어둡다.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사냥하던 시절을 말하는 주디의 이야기는 나름 귀엽게 묘사되지만, 아무리 케찹으로 표현해내도 선명한 붉은 색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우린 알기 때문이다. ‘주토피아’에서 가장 밝은 장면을 묘사하자면 아무래도 주디가 경찰로 처음 주토피아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라 하겠다.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주토피아에 마침내 도착한 그녀가 구역들을 하나하나 거쳐서 마침내 중심부에 도달하는 광경은 ‘꿈꾸는 자’의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내 사회의 냉혹함을 경험하는 그의 모습은 다소 뻔하면서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밖에 없는 모습이라 더더욱 인간적(?)이다.


‘주토피아’는 다행히도 유머와 위트가 넘친다. 사기꾼인 닉 와일드는 시종일관 농담을 던지고, 비록 늘 심각하지만 나름 맞받아칠줄 아는 주디 덕에 두 캐릭터의 만담은 나름 재미를 준다. 그렇지 않았다면? ‘주토피아’는 너무 심각하고 무서운 탓에 관객들이 아마 편하게 보기 어려운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주토피아’에선 완벽한 이는 아무도 없다. 사회초년생은 주디는 의욕이 앞서는 탓에 나름 최선을 다해 주차관리를 하지만, 그의 자비없는 딱지엔 시민들의 원성이 높아질 뿐이다. 게다가 자신의 일을 처음엔 어쩔 수 없었지만 이내 열심 도와준 닉 와일드에게 조차 일말의 공포심을 가지고 있는 주디의 모습은 관객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동시에 주디는 매우 훌륭한 캐릭터다. 그는 비록 절망에 빠져 낙향한 가운데서도 해결책을 찾아내고, 자신의 잘못을 닉 앞에서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줄 안다. 다 큰 성인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잘못을 모두 말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사실 말이 쉽지 엄청난 각오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따라서 주디의 그런 모습은 비록 애니지만 관객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주토피아’에선 10%가 육식동물이고, 나머지 90%가 초식동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만약 90%가 원한다면 그것인 옳은 것일까? 우린 민주주의 사회에 살다보니 저도 모르게 ‘다수가 원하는 게 옳다’라는 생각을 어느 정도 하는 편이다.



그러나 다수가 원하는 걸 하면 불만이 있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 뿐이지, 안타깝게도 그것은 옳고 그름과 별 관계가 없다. ‘주토피아’에선 결말부에 이르러선 다수가 원하는 것이 엄청난 잘못되고 그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다시 한번 생각을 확장할 기회를 준다.



‘주토피아’의 반전은 앞서 지적한 대로 억지스러운 부분은 있지만, 관객에게 주려는 메시지가 뚜렷하고 그 울림이 작지 않기에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비록 동물들이 출연하지만 ‘주토피아’의 이야기는 사실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서로의 생김새만큼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 속에서도 서로가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보여주는 ‘주토피아’는 관객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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