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왠지 유치해 보였고, 실제로 영화평도 그런 것들이 눈에 띄어서 애초에 포기했다. 그러다가 ‘생각 외로 괜찮다’라는 평들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늦게나마 극장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나 잘못된 선입견을 가졌는지 깨닫게 되었다.
‘탐정 홍길동 : 사라진 마을(이하 ‘탐정 홍길동’)’은 한국형 다크히어로물을 표방한 작품이다. ‘씬 시티’처럼 CG를 덧칠해 마치 그래픽노블을 보는 듯한 착시를 주는 영상만큼이나 독특하다. 우선 주인공 홍길동은 선한 인물이 아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는 악당에겐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가 하수도에서 인간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세 명에게 가위를 던져주고 손가락을 서로 자르게 하는 장면이 그 대표적인 장면이다. 그가 악당을 대할 때 모습은 흡사 괴물과도 같다.
그러나 그가 20년 전에 눈앞에서 어머니가 죽는 것을 보고 뇌에 이상이 생겨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관객은 그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그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는데, 유일하게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인물의 얼굴과 이름은 기억한다.
바로 김병덕. 그는 20여 년의 추적 끝에 마침내 명월리란 곳에 그가 있음을 알게 되고 찾아가게 된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이미 누군가가 김병덕을 납치해갔고, 그의 두 손녀 동이와 말순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고민 끝에 두 여자아이와 동행하고 복수를 위해 다시 김병덕을 찾지만, 곧 엄청난 음모에 직면하게 된다.
‘탐정 홍길동’은 이전까지 나왔던 한국영화와는 완전히 궤를 달리한다. 하는 짓만 보면 악당인지 주인공인지 구분이 안가는 홍길동이란 캐릭터가 일단 그렇다! 전형적인 다크히어로인 그는 그러나 동이와 말순과 함께 지내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동이와 말순은 아무런 죄가 없는 아이들이지만, ‘원수의 자식’이기 때문에 그들을 보면 홍길동은 주체하기 힘든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처음에는 거짓말을 일삼는 그를 의심하던 말순이와 동이가 그를 의지하게 되면서 그는 혼란을 느낀다.
왜? 처음으로 그들에게서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불법 흥신소 활빈당의 수장인 홍길동은 친구가 없다. 물론 친구에 가까운 황회장이 있긴 하지만, 그녀는 좀 예외적인 케이스다. 황회장의 아버지가 기억을 잃은 홍길동을 키웠으니까. 그리고 작품 내에서 황회장과 통화하는 홍길동의 표정은 뭔가 귀찮아 보인다. 물론 그게 친밀함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처음엔 말순이란 캐릭터가 ‘민폐캐릭터’로만 보였다. 사건해결을 위해 거짓말을 해서 동네 주민들로부터 정보를 모으는 홍길동을 말순이가 자꾸만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말순이의 매력에 관객은 빠져들 수 밖에 없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는 말순이다. 어린이다운 천진난만함을 지닌 말순은 진지한 나머지 지루해질 수 있는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런 탓에 후반부에 그녀가 등장하지 않는 부분은 지루함이 느껴질 정도다.
순도 100% 말순이의 쾌활 발랄함은 그녀가 활약할 수 없는 후반부에 들어가면 더욱 높아진다. 왜? 그녀의 부재로 인해 극이 너무나 어둡고 뭔가 공허하다는 느낌마저 받기 때문이다. 조성희 감독은 말순이란 엄청난 캐릭터를 만들어냈지만, 역설적으로 매력이 너무 강한 나머지 그녀의 부재를 메울 방법이 보이질 않는다.
아마도 2탄(영화를 보고 있으면 시리지를 염두에 두었다고 밖에 보이질 않는다)에서 말순은 나오지 못할 것 같은데, 그녀에 필적할 만한 다른 캐릭터를 만드는 것도 감독에겐 엄청난 숙제가 될 것 같다. 말순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캐릭터는 역시 강성일이다.
오프닝부터 세 명의 악당을 찜 쪄먹을 정도로 강한 홍길동이 단 한방에 나가떨어질 정도로 강력하며, 표정만 봐도 왠지 오금이 저려오는 포스의 악당. ‘탐정 홍길동’에서 강성일은 홍길동과 대척에 설만큼, 아니 홍길동을 넘어설 만큼 엄청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김성균이 연기하는 강성일은 너무나 무시무시하고 강력해서 홍길동이 반드시 무찔러야 할 적으로 인식되게끔 만든다. 악당이 악당스러울 때 주인공도 더불어 빛나는 법. 그런 면에서 보자면 김성균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강성일역의 김성균은 ‘응답하라 1988’의 모습이 더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김성균은 그 전에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과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에서 인상적인 악역을 선보인바 있다. 김성균의 무시무시한 점은 그다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는데도 보는 관객의 입장에선 왠지 모르게 소름이 끼친다는 점이다.
김성균의 악당 연기는 ‘탐정 홍길동’에서도 빛을 발한다. 홍길동마저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의 과거를 기억하고, 무시무시한 괴력과 더불어서 홍길동을 궁지로 몰아넣는 그의 활약은 영화의 긴장감을 200%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탐정 홍길동’에서 돋보이는 점 중에 하나는 명월리라는 가상의 마을에서 벌어지는 음모다. 홍길동은 우연히 마을에서 강성일과 그의 부하들이 마을 사람들을 몰살하려는 끔찍한 계획을 알게 된다. 바로 홍길동의 과거와도 연관이 된 비밀종교집단인 광은회의 음모였다. 광은회는 이 사건을 통해 전쟁의 공포를 확산시키고, 자신들이 밀고 있는 정당에 힘을 몰아주기 위함이었다.
1970~80년대 우리 사회를 무대로 한 영화는 단순히 배경으로 삼고 추억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었던 아니 잊고 싶었던 그 시대의 모습을 오롯이 그려내고자 한다. 따라서 분명히 ‘탐정 홍길동’은 오락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단순한 오락영화로만 볼 수가 없게 된다.
‘탐정 홍길동’의 홍길동은 수다스럽다. 그리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그러나 그는 주민등록증이 없고,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오직 어둠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그는 역설적으로 악의 조직과 제대로 맞서 싸울 수가 있다.
결말부의 사이다같은 전개를 위해서 영화는 여기저기 공을 들여서 단서를 뿌리고 준비를 해놓는다. 덕분에 관객은 그 결말을 충분히 만족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다.
‘탐정 홍길동’은 여기저기에 단서를 뿌려놓는다. 그리하여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뒤에 펼쳐질 반전에 대해 어느 정도 눈치를 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판에 벌어지는 대반전은 분명히 사이다처럼 관객의 답답했던 마음을 뽕~하고 뚫어준다.
답답한 현실을 그나마 영화에선 허구로나마 풀어준다고 할까? 결국 악당을 물리칠 거란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탐정 홍길동’은 분명히 악당을 물리치는 쾌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광은회의 실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에 그 후속편을 기대할 수 밖에 끔 한다.
또한 단순히 원수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게 아니라, 그들 역시 자신과 같은 사람이었음(원수였던 김병덕과 그의 손녀인 동이와 말순)을 이해하고 인간적으로 한 단계 성숙해가는 홍길동의 모습은 분명히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게 한다. ‘탐정 홍길동’은 몇 가지 아쉬움은 있다. 코믹과 느와르의 줄타기가 완벽하지 못했다. 그런 탓에 초반엔 코믹하고, 후반부엔 심각함이 가득하다. 특히 어쩔 수 없이 ‘탐정 홍길동’을 하드캐리하던 말숙이가 활약할 수 없었던 후반부는 지루할 정도였다.
이 부분에 대해선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의 많은 고민이 필요할 듯 싶다. 그러나 떡밥을 잘 뿌려놓고, 이들을 마지막에 잘 회수하며, 국내에선 드물게 다크 히어로물을 내세웠음에도 의외로 깔끔하게 완성도를 꽤 준수하게 뽑아낸 점은 매우 높이 평가할 만한 부분이다. 개인적으론 다음 편이 나온다면 무조건 극장에 찾아가서 볼 작정이다. 부디 이번 작품이 성공해서 꼭 후속편이 나오길 바란다. 그만큼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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