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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영화들이 있다. 정말 유명한 영화인데 아직까지 보지 못한. 내게 ‘바그다드 카페’는 그런 영화였다. 물론 대강의 스토리도 알고 있고, 주제곡인 'Calling You’는 너무나 많이 들어서 너무나 익숙한 곡이었다. 그러나 정작 영화를 보지 못한 탓에 뭔가 찜찜한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시사회에 당첨되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영화의 시작은 두 독일인 부부가 말다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뭣 때문에 싸우게 되었는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저 화난 여자가 차에서 짐을 꺼내 사막 한복판에서 어딘가를 향해 정처없이 걷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쪽, 그러니까 ‘바그다드 카페’에선 브렌다가 오늘도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착한 것 같지만 무능하고, 아들은 하루 종일 피아노만 치고, 딸은 치장하고 놀러 다니기에 바쁘다. 게다가 바드다드 카페의 커피머신은 고장나서 카페에 커피가 없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만다.





그렇다! 브렌다는 총체적인 난관에 빠져 있었다. 더 이상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를 그런 나락. 사막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녀 앞에 육중한 몸매에 큰 짐가방을 든 야스민이 등장한다. 이윽고 두 사람은 각각 손수건을 꺼내 야스민은 땀을, 브렌다는 눈물을 닦는다.



아마도 이 장면은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리라는 은유가 아닐까 싶다. ‘바그다드 카페’는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생각보다 대사도 별로 없고, 어떻게 보면 영화는 매우 엉성하다. 컷도 컷사이가 뭔가 꽉 짜맞춰 있지 않아서 그렇고, 등장인물에 대해서 별로 설명 해주지 않는다.



어쩌면 영화에서 ‘바그다드 카페’의 배경인 황량한 사막은 우리의 인생을 비유한 것인지 모르겠다. 청소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더러운 모텔은 ‘이래서 장사가 제대로 되겠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한다. 따라서 ‘바그다드 카페’가 망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그저 신기하게 생각된다.





동시에 ‘바그다드 카페’는 인생에 마법처럼 근사한 순간이 다가오면 어떻게 될지 관객이 상상하게끔 만든다. 남편에게서 도망친 한 독일인 여성이 아무런 연고없는 바그다드 카페에 와서 청소를 해주고, 아들과 딸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일을 도와주면서 점차 가족처럼 되어가는 과정은 무척 흥미롭다.



영화에서 브렌다의 아들은 하루 종일 피아노만 치고 있다. 그러나 브렌다는 아들에게 그저 ‘시끄럽다’고 하면서 그만 치기를 강요한다. 아들은 예술혼을 불태우지만 주변에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야스민이 다가와서 그의 연주를 듣고 칭찬하면서 갑자기 이전까지 소음에 불과했던 아들의 연주는 무척이나 아름답게 변화한다.



예술이란 그런 게 아닐까? 알아주는 이가 나타나기 전까진 그저 음악은 소음이고 그림은 낙서에 불과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걸 즐기로 알아봐주는 이가 나타날때 비로소 가치를 지니게 되는. 딸의 변화 역시 그렇다. 영화상에서 딸은 늘 귀에 헤드폰을 꽂고 놀러다니기에 바쁘다.



그녀는 엄마와 별다른 대화가 없다. 그러나 야스민의 방을 청소하러 왔다가 그녀와 친구가 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장난치게 되면서, 그녀 역시 극적으로 변화한다. 그녀는 더이상 헤드폰을 끼지 않고, 엄마의 일을 돕기에 이른다.





그러나 가장 극적으로 변화한 인물은 역시 브렌다다. 그녀는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짜증이 나서 ‘버럭’하기에 바쁘다. 그녀의 신경질적인 목소리는 관객마저 짜증이 날 지경이다. 그녀의 사정은 이해하지만, 그런 그녀의 태도는 누구의 호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처음에 브렌다는 야스민을 경계한다. 차도 없이 갑자기 사막 한가운데 나타나서 자신의 ‘바그다드 카페’에 찾아왔으니 이상할 것이다. 게다가 짐가방엔 온통 남자옷 뿐이니(사실은 남편의 짐가방을 잘못 들고 온 것이지만). 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바그다드 카페를 청소해놓은 탓에 브렌다는 화가 나서 총을 들고, 야스민에게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으라고 윽박지른다. 



그런 그녀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된다. 자신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자신의 공간을 누군가가 마음대로 치웠다면 무시당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야스민은 남편의 짐가방에 있던 마술 키트를 이용해서 간단한 마술을 익히고, 그걸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사막 한가운데서 별다른 유흥거리가 없던 이들은 그런 야스민의 마술에 열광하고, 급기야 바그다드 카페는 트럭 운전사들과 인근 사람들이 몰려올 정도로 성황을 이른다. 처음엔 그저 경계했던 이방인인 야스민은 이제 브렌다의 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람으로 변화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하고, 야스민의 여권기간이 완료되어서 보안관이 이를 문제삼아서, 어쩔 수 없이 야스민은 바그다드 카페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바그다드 카페’는 예전의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 그 이후 늘 밖을 지켜보던 브렌다는 어느 날 다시 찾아온 야스민을 반기고, 둘은 다시 마술쇼를 재개하고, 다시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한다.





‘바그다드 카페’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등장인물도 많지 않다. 또한 흐름도 느릿느릿하다. 1987년작인 영화는 분명히 요즘 영화와 비교하면 호흡이 정말 느리다. 그러나 ‘느림의 미학’이 존재한다. 늘 빠르고 엄청난 물량동원의 영화와 비교하면 영화는 말할 수 없이 소박하다.



그러한 소박함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바그다드 카페’는 보는 내내 관객의 얼굴에 미소를 떠나지 않게 만든다. 분명히 사막은 황량하고 사람이 살아가기에 척박한 곳임에도 이상하게 ‘바그다드 카페’는 온기가 따스하게 흐른다. 그리고 ‘그곳에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자꾸만 가지게 한다.



‘바그다드 카페’에서 조금만 더 가면 라스베가스이기 때문에 야스민이 펼치는 마술쇼는 그저 소박할 뿐이다. 그러나 트럭운전사와 인근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거기서 손님은 단순히 손님이 아니라 ‘또 하나의 가족’으로 예우받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혼을 불태우는 아들이 유명한 음악가가 되거나, 브렌다가 엄청난 프렌차이즈를 키우거나, 야스민이 라스베가스의 무대에 설 일은 없다. 그러나 그저 소박한 ‘바그다드 카페’에서 자신들의 재능을 선보이고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그런 작고 소박한 삶 역시 중요한 것이 아닐까?



‘바그다드 카페’는 우리가 흔히 잊고 지내는 작고 소중한 것들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또한 아름다운 영화 OST와 사랑스런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마치 마법처럼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리라. 오는 14일에 재개봉하는 ‘바그다드 카페’는 마법과 같은 매력이 철철 넘치는 작품이다. 극장에서 감상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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