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열전

이 시대의 진정한 딴따라, 박진영

朱雀 2009. 12. 2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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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연예가중계>의 ‘스타줌인’코너에 출연한 박진영



1972년생인 박진영을 볼때면 ‘참으로 대단하다’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1994년 앨범 <Blue city>로 데뷔한 이래 그는 <날 떠나지마> <허니> <엘리베이터>등의 히트곡을 내놓았다. 그뿐인가?

“좀 더 힘들게 노력해서 인정받고 싶었다”라고 고백한 박진영은 프로듀서로 전향해 god, 박지윤, 비, 원더걸스, 2AM, 2PM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을 거친 모든 가수들은 당대 최고의 가수에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욕심쟁이인 그는 이에 멈추지 않고 2003년 미국으로 홀홀단신으로 건너가 윌 스미스의 <I Wish I Made That>등을 작곡해서 모두 빌보드 차트 10위권에 드는 대한민국 가요계 사상 초유의 일을 해냈다. 게다가 국내 최고인기 걸그룹인 원더걸스를 데리고 미국으로 진출해 미국 핫 100에 76위로 올리는 대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 아시아인으론 30년만에 쾌거를 이뤄내 박진영은 그 자체로 국내 가요계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장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곡가로 프로듀서로 JYP대표로 남부러울 것 없는 성공을 거둔 그는 거기서 만족을 못하고, 지난 1일 <No love No more>을 대표곡으로 내세운 앨범을 내며, 예전 못지 않은 춤솜씨와 노래를 선보였다. 가수로서의 자신을 놓지 않고, 현역으로 나서는 그를 볼때면 ‘그저 대단하다’말 외엔 할 말을 잊게 한다.

2004년 가요대상에서 비가 자신을 향해 감사인사를 하는 것을 보며 마냥 좋아하며 박수를 치는 모습은 그의 순수함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었다. 예전에 공연연습 때, 생일으 못차리고 지나가는데, 비가 자신의 생일을 챙겨준 일화를 말하며 촉촉한 눈가를 적시는 그의 모습은 인간적인 면을 되돌아보게 했다.

지난주에 원더걸스가 지난주 전세계 검색어에서 2시간동안 1위를 한 사실을 말하면서 뿌듯해하고, 동시에 미국 사람들이 단순히 자신을 원더걸스를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알고 ‘가수’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에 대해 서운해하는 모습은 그의 끝없는 욕심을 보여주는 좋은 대목이었다.

“<Heart Beat>는 2PM을 위해 만들었지만, <Again&Again>은 너무 부르고 싶었다”는 고백은 역시 그런 고백의 연장이었다. 물론 박진영이라고 모든 걸 잘한 것은 아니다. <연예가중계>에서 스스로 밝혔지만, 사랑하는 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이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부분이나. 얼마전 있었던 2PM의 재범사태는 그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다.

그리고 너무 바쁜 나머지 가족과 친구들에게 ‘나쁜 놈’이었다고 고백한다. 개인적으로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태자면, 박진영은 탁월한 프로듀서로서 소속가수를 분명히 성공시키지만, ‘박진영 스타일’에서 자유롭게 하진 못한다. 이는 YG소속사 가수들이 개성이 뚜렷한 것과는 대비되는 점으로, 그의 뚜렷한 한계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수로서의 성공을 뒤로하고 후배가술들을 키워내 확실히 성공시키고, 국내에서 보장된 성공을 뒤로하고 훌훌 떠나 미국에서 프로듀서로 인정받고, 국내 최정상 걸그룹인 원더걸스를 미국으로 데려가 (전혀 성공을 보장받지 못한 상태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빌보드 차트에 입성시킨 그의 능력과 기업가 정신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아울러, 그런 모든 성공속에서 안주하고 않고 현역가수로서 후배 가수들과 나한히 같은 무대에 설 수 있는 그의 자신감과 도전정신 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여겨진다. 개인적으로 박진영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사업가로서 가수로서 작곡가로서 그의 존재와 국내 가요계에 끼친 영향은 향후 반드시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된다고 보는 바이다. 그만큼 박진영이 국내 가요계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항상 가요계의 역사를 써왔기에 박진영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한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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