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천지호를 죽인 무책임한 ‘추노’

朱雀 2010. 3. 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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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추노>에서 천지호가 죽었다. 극중 천지호는 홀홀단신으로 이대길을 사형장에서 빼내기 위해 노력하다가, 운좋게도 용골대가 송태하를 구하기 위해 부하들을 보낸 탓에 상당히 손쉽게 이대길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천지호는 화살에 맞아 죽게된다. 필자는 ‘미친 존재감’으로 불리던 천지호의 허망한 최후를 보면서 분노와 배신감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추노> 제작진이 천지호를 죽인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성동일의 엄청난 연기 때문에 천지호는 주연을 넘어서는 미친 존재감을 가진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이대길-송태하-이다해가 이끌어나가야 하는 <추노>에서 주연보다 돋보이는 조연진의 활약은 이래저래 불편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선덕여왕>에서 절대고수 문노에 필적하던 칠숙 안길강이 짝귀로 <추노>에 합류했다. <추노> 제작진은 아마 안길강이 연기하는 짝귀를 앞으로 활약하게 해야 되는데, 천지호가 이래저래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아마 위와 같은 이유로 천지호는 화살 한방에 어이없게 가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이는 정말 비겁한 방법이다. <추노>에서 이런 식으로 출연 배우들을 사라지게 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선택'이다!

 

생각해 보자! 데니안이 분해 기대를 모았던 백호는 최장군의 창에 너무나 어이없게 <추노>에서 퇴장했다. 명나라 내시부 소속이었다가 패망과 함께 조선에 들어온 윤지 역시 송태하의 기분을 건드린 탓에 칼침을 맞고 어이없이 퇴장했다.

윤지민이 열연해 앞으로 활약이 기대되었던 윤지 캐릭터는 그렇게 황당하게 퇴장하고 말았다. <추노>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무게감이 있어보이고 중요한 인물이라 여겨졌던 인물들은 죽음과 함께 퇴장시켰다. 덕분에 왜 그전에 그 캐릭터들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왜 등장했는지 이유조차 설명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소설에서 등장 인물을 가장 손쉽게 퇴장시키는 방법은 ‘죽음’이다. 죽음은 등장인물의 ‘끝’을 의미한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등장인물을 끝까지 안고 가는 것은 인물들간의 균형을 맞춰야 하고, 스토리의 여러 분기점들을 맞춰 나가야 하는 치열한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 물론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작가라면 그런 ‘지난한 고행길’을 지나서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개성을 살리고 이야기가 설득력을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추노>는 뭔가? 인조 시대 어지러운 세상을 그려낸다는 명목 하에 정말 여러 등장인물을 죽여서 너무나 손쉽게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김혜원역의 이다해가 욕을 먹는 것은 연기자의 잘못이 아니다. 그녀의 캐릭터에 ‘타당성’을 부여하지 못하는 작가진의 문제다. <추노>의 배경 시대는 권력을 가진 몇몇 양반을 빼놓고는 모두가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다. 그런 세상에서 민초들이 억세게 목숨을 연장해나가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처럼, 작가들도 <추노>의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을 단순히 죽여서 퇴장시킬 게 아니라, 하나하나 살려서 당위성을 가져야 했다.

지금처럼 이야기 진행이 막힌 다 싶으면, 죽여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로 몰아고, 살려야 할 주인공들은 별다른 이유도 대지 못하고 그냥 살려서 가는 방식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기가 어렵다.

 

<추노>가 엄청난 인기에도 불구하고 <선덕여왕>처럼 범대중적인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끝까지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등장인물을 책임지지 못하는 작가진과 제작진의 능력 한계와 책임 방기가 크다고 여겨진다.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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