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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5

1차 TV토론의 승자는 분명 이정희다! 그러나?

어젠 드디어 역사적인 18대 대통령 후보 합동 토론회가 공중파 3사를 통해 방송되었다. 이번처럼 토론이 실종된 대선이 없었던 만큼 필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첫 번째 합동 토론회에 쏠릴 수 밖에 없었다. 화제성면에서 보면 단연 이정희가 압도적인 언행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단일화 운운하며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라는 식으로 비꼰 박근혜 후보에게 “저는 반드시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릴 겁니다”라는 발언을 했다. 여태까지 국민의 속을 이토록 후련하게 해준 화끈한 돌직구성 발언이 있었던가? 아마도 많은 이들이 동의하리라고 본다. 이에 비해 문재인 후보는 매우 온건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상대적으로 기억에 남는 바가 적다. 예의 신사적인 면이 많이 보였다. 아마도 어제 1차 토론회를 보고 각 언론사에서는 여..

TV를 말하다 2012.12.05

문재인 의원의 블로거 간담회를 취재하다!

지난 10일 종로에 위치한 대왕빌딩 13층에선 문재인 의원의 블로거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여기 당시 오고 간 이야기를 정리해서 옮겨봅니다. 말의 뉘앙스 등은 정리하는 과정에서 약간 다를 수가 있으니 이점은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내용파악용으로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 문후보의 이미지는 노대통령과 겹친다.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가? 많은 분들이 제 외모를 보고는 신사 같다. 그렇게 이미지를 이야기 하는데 고맙게 생각한다. 저를 원칙주의자로 압니다. 고지식하다 융통성 없다라고도 말합니다. 전 그것도 좋은 이미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보면 노대통령과 함께 생각하는 것 역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뛰어넘어야 한다. 탈노무현을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그림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인물열전 2012.07.12

진구-한혜진-임슬옹의 영화 26년 출연확정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

오늘자 뉴스로 진구-한혜진-임슬옹이 강풀 원작의 영화 에 출연확정키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필자로선 그들이 출연확정키로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박수를 보내기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의 내용 때문이다! 강풀의 원작만화를 본 이들은 알겠지만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희생된 피해자 가족들이 뭉쳐서 전두환 대통령의 암살에 나서기 때문이다! 강풀 원작의 만화는 연재중일때도 뜨거운 논란을 낳았다. 왜냐하면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발포를 허가 혹은 수락한 것으로 여겨지는(여러가지 정황상 거의 확실하다) 전두환 대통령이 아직 생존하는 상황에서 연재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과거청산을 완벽하게 하지 못한 상황에서 은 우리에게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와 아직 끝나지 않은 그때의 상황과 기억들을 고..

바보 노무현보다 더 바보 문재인,‘힐링캠프’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정치권에 문재인 말고 누가 또 있을까? 가 방송된 이래, 처음으로 본방사수를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노무현보다 더 바보스럽다는 문재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고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은 노무현 대통령이 평상시 한 말이었다. 문재인은 에 나와서 노무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1983년 같이 사무실을 개설할 때, 5:5 수익금을 나눴다고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인 에선 다르게 진술되고 있다. 부산 말고도 울산, 마산, 창원 쪽에서 노동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그곳에는 인권변호가 없었다. 모두 내일이 되었다....문재인 변호사는 이 모든 일을 함께 했다. 나는 돈 버는 일을 전폐했지만 그는 사무실 운영을 도맡아 하면서 매월 내게 생활비를 주었다. 부..

TV를 말하다 2012.01.10

박정희의 망령이 지배하는 2009 대한민국

1979년 10월 26일. 종신대통령을 꿈꾸던 박정희는 가장 믿었던 측근에 의해 총을 맞고 사망했다. 그의 죽음과 더불어 박정희는 한국 현대사와 이별해야 했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을 보면 그의 망령이 곳곳에서 웃으며 활개치고 다는 것 같아 몸서리치게 무섭다.지난 역사를 되돌아보자! 박정희 대통령이 피격되자마자 12.12사태로 전두환 역시 총칼로 쿠테타를 일으켜 나라를 찬탈했다. 독재자 박정희가 한 행동을 보고 얻은 ‘학습효과’였다. 그리고 어렵고 힘든 시기를 거쳐 마침내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바야흐로 진정한 문민정부가 들어서기까지 우린 박정희의 망령 밑에서 신음해야 했다.전두환은 박정희보다 더한 무력으로 사회 전반을 압박하고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 하고자 했다. 마음 같아선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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