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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4

중국은 과연 존재하는가? ‘차이나는 도올'

조금 도발적인 제목을 달아보았다. 어제 ‘차이나는 도올’에서 도올은 ‘중국은 있나?’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도올의 말처럼 19세기만 해도 중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청나라가 있을 뿐이다. 두번째 질문은 더 난감하다. ‘공자가 중국 사람인가?’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공자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노나라 사람이었다. 노나라는 춘추전국시대 작은 도시국가 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따라서 공자는 오늘날의 개념인 중국이란 틀로 대입하면 중국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오늘날의 개념으로 역사를 논한다는 것은 상당한 오류의 가능성을 안을 수 밖에 없다. 도올이..

TV를 말하다 2016.04.25

손문과 신해혁명이 근대중국을 망쳤다?

대만과 중국에서 모두 국부로 추앙받는 손문 -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최근 읽고 있는 에 재밌는 주장이 있어서 여기에 소개해볼까 한다. 1839-1842년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이후로 중국은 100년이 넘도록 암흑기를 지나왔다. 따라서 이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이 ‘양이의 기술만 들여오자’는 양이파와 ‘기술뿐만 아니라 제도까지 들여오자’는 변법파, 그리고 ‘서양식으로 모든 것을 갈아엎자’라는 혁명파로 나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흔히 우리는 당시 청나라가 부정부패했고, 과학기술이 서구에 비해 너무 뒤떨어져서 서구열강의 먹이감이 되고, 끝내는 일본에게 절반 이상 먹히는 수모를 겪었다가, 1949년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선언하고 나서야 혼란기를 멈추게 되었다고 알고 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장학량은 왜 장개석 총통을 감금했는가?

청년 시절의 장학량 -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역사는 때때로 한 사람에 의해 큰 흐름이 바뀔 때가 있다. 중국의 근대사는 여러 인물들로 인해 그 흐름이 크게 바뀌었지만, 그 중에서도 장개석과 모택동의 명운을 크게 바꾼 사건을 들라면 아마도 1936년 12월 12일 벌어진 ‘서안사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공산군 토벌을 격려차 온 장개석을 장학량이 섬서성에서 체포하여 감금한 사건으로 중국 전체를 들었다 논 일이었다. 이는 당시 장학량이 남경정부의 부사령관이며, 장개석의 부하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하극상’이란 초유의 사태다. 게다가 당시 장개석이 국민당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사정을 고려했을 때, 그야말로 ‘목숨을 건 도박’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야기는 장학량의 아버지 장작림이 폭사를 당..

당신이 생각하는 중국문화란 없다!

유학의 시조인 공자의 초상 출처: 위키백과 풍경 1: 현재 중국 전역에서는 설날 아침에 차례나 제사를 일체 지내지 않는다. 1949년 모택동이 중국인민공화국을 세우고 제사 등을 미신으로 규정하며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에선 제사 지내는 것이 불법이다. 출처 : 교회신문 풍경 2 : 2004년 중국 산동성 곡부에선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 의식이 치러졌다. 중국공산당이 직접 주관하고, CCTV를 통해 국내외에 무려 4시간에 걸쳐 방송되었다. 참고 : 해럴드 경제 오늘은 간단한 문제로 시작하겠다. ‘풍경 1’을 보면 알겠지만, 중국에선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은 물론, 제사지내는 방법 자체가 사라졌다. 그런데 ‘풍경 2’를 보면 중국 공산당이 직접 주도하에 공자에게 제사를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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