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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국번 5

역사에 빛날 그 이름, 좌종당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당시 태평천국운동을 진압하지 못한 청조정은 ‘내분을 먼저 수습해야한다’는 생각으로 러시아의 중재를 받아들여 북경조약을 체결한다. 함풍 11년(1861) 8월21일 함풍제가 서태후의 아들 재순을 황태자에 봉한다. 함풍제가 바로 다음날 숨을 거두자, 열하에서 상경한 서태후는 공친왕과 공모하여 11월에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움켜쥐게 된다. 이때 증국번은 흠차대신으로 임명하고, 좌종당을 태상사경에 봉해 태평천국 진압을 명하게 된다. 좌종당은 증국번과 오랜 시간 태평천국군을 진압하면서 자주 말다툼을 벌이게 된다. 돌다리도 두드리면서 전략을 신중히 짜는 증국번과 상황에 따라 긴박하게 움직이는 좌종당의 확연한 스타일 때문이었다. 여기에 한 살 터울의 나이차는 더욱 의견 차이를 강하게 했다. -게..

오성홍기에 영향을 끼친 양계초

현대 중국인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양계초 -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우리 역사를 보면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들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일이 있다. 중국 근대사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다. 바로 ‘무술변법’이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 광서제가 적극 후원하고 강유위를 비롯하여 양계초를 비롯한 변법파가 참여했다는 것이다. 광서제는 말이 좋아 청나라의 황제였지, 서태후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 28세의 성인이 된 황제는 제 나름의 방식으로 제국을 경영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서구열강들의 위력을 직접 확인하고 굴욕적인 조약을 계속해서 맺고 있는 황제는 부국강병책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양계초의 스승인 강유위는 좋게 말해 대사상가지만, 부풀려진 경향이 크다. 이에 반해 제자인 양계초는 강유위보..

장개석과 모택동이 모두 존경하는 증국번

태평천국운동과 염군의 난을 진압한 증국번 -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후진타오를 비롯한 중국의 최고위층이 존경하는 인물로는 흔히 강희제를 꼽는다. 그렇다면 현 중국 공산당의 영원한 주석이라 할 만한 모택동이 가장 존경했던 인물은 누구일까? 바로 태평천국운동을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청나라 정계의 거목이 된 증국번이다. 근데 재밌는 점은 국민당을 이끌면서 그와 대결을 펼친 장개석 총통 역시 증국번을 존경한다는 사실이다. 무엇 때문에 가치관도 다르고 첨예하게 이해가 대립되는 두 사람이 근대격변기의 인물인 증국번을 존경하는 것일까? 태평천국운동은 한동안 중국 공산당에선 위대한 농민운동으로 설명했다. 따라서 이를 진압하고 청나라 조정을 대표한 증국번과 이홍장등은 반대급부로 비판을 받는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굴욕과 치욕을 견뎌낸 동양의 비스마르크, 이홍장

이홍장 -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개인적으로 중국 근대사를 보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 한명 있다. 바로 이홍장이다. 스승 증국번과 함께 홍수전의 태평천국운동을 진압하고 화려하게 청조정에 등장한 그는 말 그대로 중국근대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가 일본과 맞서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키운 북양군은 훗날 원세개에게 이어져, 그가 손문을 밀어내고 초대총통이 되는 정치적 밑거름이 된다. 젊은 손문은 북양대신인 이홍장에게 편지를 보냈고, 변법자강운동을 일으킨 강유위와 양계초는 그와 어느 정도 의견대립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호장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서태후를 비롯한 청조정의 뒷수습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서구열강들과 늘 굴욕적인 조약을 맺었다. 거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조약을 체결한 것이기..

손문과 신해혁명이 근대중국을 망쳤다?

대만과 중국에서 모두 국부로 추앙받는 손문 -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최근 읽고 있는 에 재밌는 주장이 있어서 여기에 소개해볼까 한다. 1839-1842년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이후로 중국은 100년이 넘도록 암흑기를 지나왔다. 따라서 이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이 ‘양이의 기술만 들여오자’는 양이파와 ‘기술뿐만 아니라 제도까지 들여오자’는 변법파, 그리고 ‘서양식으로 모든 것을 갈아엎자’라는 혁명파로 나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흔히 우리는 당시 청나라가 부정부패했고, 과학기술이 서구에 비해 너무 뒤떨어져서 서구열강의 먹이감이 되고, 끝내는 일본에게 절반 이상 먹히는 수모를 겪었다가, 1949년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선언하고 나서야 혼란기를 멈추게 되었다고 알고 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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