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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차대신 2

중국 근대화의 시조, 임칙서

한인관료 최초의 흠차대신 임칙서 -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임칙서’라고 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가? 아마 역사에 대해 조금 아는 이라면 ‘아편전쟁’을 떠올릴 것이고, 좀 더 아는 이라면 그가 편찬에 일조해서 훗날 한중일의 개화사상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까지 알 것이다. 그럼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자! 임칙서는 시골 훈장의 아들로 태어나 군사를 이끌 수 있는 흠차대신에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청나라에선 임칙서 이전까지, 한인 관료가 문관이 되어도 군사를 이끌 수 있는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다. ‘멸만흥한’의 기치를 남몰래 항상 지니고 있는 한족을 청조정에서 못미더워한 까닭이다. 이는 거꾸로 이야기하면, 청조정이 한인관료를 우대할 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임칙서는 4세때부터 공..

굴욕과 치욕을 견뎌낸 동양의 비스마르크, 이홍장

이홍장 -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개인적으로 중국 근대사를 보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 한명 있다. 바로 이홍장이다. 스승 증국번과 함께 홍수전의 태평천국운동을 진압하고 화려하게 청조정에 등장한 그는 말 그대로 중국근대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가 일본과 맞서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키운 북양군은 훗날 원세개에게 이어져, 그가 손문을 밀어내고 초대총통이 되는 정치적 밑거름이 된다. 젊은 손문은 북양대신인 이홍장에게 편지를 보냈고, 변법자강운동을 일으킨 강유위와 양계초는 그와 어느 정도 의견대립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호장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서태후를 비롯한 청조정의 뒷수습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서구열강들과 늘 굴욕적인 조약을 맺었다. 거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조약을 체결한 것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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