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찬란한 유산'은 새로운 모계중심사회를 그리고 있다?

朱雀 2009. 7. 13.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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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한 23화를 보면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찬란한 유산>을 보면 드라마의 중심 인물은 온통 여성들이다. 일단 고은성은 장숙자 회장에게 유산을 물려받기로 되어 있다. 그녀는 장회장과 피한방울 섞이지 않았는데, 일주일간 함께 생활한 장회장은 유언장을 바꿔 자신의 전 재산을 그녀에게 물려주기로 했다.

이건 드라마니까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드라마상으론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게 가족이라 믿었던 이들이 모두 그녀가 죽길 바라고, 믿었던 손자는 자신이 죽으면 설렁탕 회사를 팔아치우고 골프장이나 할 궁리나 하고 있다.

따라서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잠시 지내본 고은성의 착한 마음씨와 바른 자세를 보고 장회장은 뜻과 의지를 물려주려 한다.

그리고 은성을 괴롭히고 장사장의 재산을 노리는 희대의 악녀 백성희(김미숙)이 있다. 그녀의 딸 유승미(문채원)은 돈에는 별 관심 없지만 선우환(이승기)를 원하기 때문에 엄마의 악행에 동참한다.

<찬란한 유산>을 보면 철저히 여성중심적으로 모든 사건이 진행된다. 진성식품을 일으켜 세운 것은 장회장이고, 그런 장회장의 유지를 물려받을 사람은 손자인 선우환이 아니라 고은성으로 선택된다. 그런 두 사람의 관계를 끊어놓기 위해 백성희와 유승미 모녀는 고군분투하고 있다.

물론 <찬란한 유산>에는 빼놓을 수 없는 나쁜 남자 선우환과 백마탄 왕자 박준세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공을 돕거나 조력하는 입장이지, 극을 이끌어가는 중심역할에선 조금 비껴나 있다.

<찬란한 유산>에서 여성이 지니는 의미는 매우 크다. 일단 다른 드라마와 달리 여성이 극을 이끌어 나가고 그들이 부딪치며 격렬한 불꽃이 일어난다. ‘여자의 적은 여자’란 말이 있지만, 여기서 고은성과 백성희가 대립하는 것은 서로 다른 가치관의 충돌이 더 옳다고 여겨진다. 단순히 선과 악의 대립이라고 보기엔 우리 사회 도처에 깔린 가치관이 적나라하게 들어나기 때문이다.

23화에서 보면 백성희와 박태수가 몰래 만나는 장면을 보자. 치매로 장회장의 상태가 드러나자, 백성희는 깨어나면 이를 핑계로 경영권을 빼앗고 죽으면 무효화 소송을 걸자고 한다. 그러자 박태수는 매우 놀라며 “경영자의 마인드를 갖고 있네요.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 같네요”라고 말한다.

흔히 말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철저한 경영 마인드가 반영된 문구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비록 피가 섞이지 않았더라도 올바른 자세와 마음을 가졌다면, 뜻과 전 재산을 물려준 장회장의 마인드는 우리 사회가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경영 마인드라 할 것이다.

<찬란한 유산>이 지니는 또 다른 의미는 모계중심사회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확실치는 않지만 농경사회가 시작된 이래 여성은 가정에서 부차적인 역할을 떠맡았다. 그녀들은 중요한 가정 행사에 의결권을 박탈당했고 그저 남편의 말에 절대 순종하고 자식을 키우는 게 전부인양 강요받았고, 그렇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사실 인류는 처음 발생한 이래 꽤 오랜 세월 동안 모계 중심 사회였던 걸로 추측되고 있다. 남성 중심의 부계 사회가 폭력과 암투로 처절한 대결의 장으로 치닫는 것과 달리 여성 중심의 모계 사회는 조화롭고 따뜻한 곳으로 추측되고 있다.

물론 이는 단순히 여성과 남성의 대결이나 페미니즘을 조장하고자 하는 발언이 아니다. 또한 무조건 모계 중심 사회를 찬양하기 위함도 아니다. 지난 수천년간 부계사회로 지내왔으며 우리 사회는 그동안 부계 사회의 부패와 고름이 처참하게 터져 나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비롯한 각종 전쟁사다.

물론 여성 중심의 사회가 된다고 하더라도 전쟁이 사라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그런 사회가 도래한다면, 여성의 감성이 주류로 통용되는 사회가 된다면 좀 더 사회는 넉넉해지지 않을까?

다시 <찬란한 유산>으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장숙자 회장은 원래 처음에 자신의 진성식품을 아들에게 물려주고자 했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후 손자 선우환에게 물려주고자 한다. 여기까진 그녀 역시 기존의 부계 사회의 법칙을 따라가는 듯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날이 망나니 짓만 하는 손자에게 마음을 끊고 우연히 만난 고은성을 대신 자신의 후계자로 삼는다.

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전에 장회자의 행동이 모계사회 즉 여성의 감성과 이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사상이 전향되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아울러 고은성에게 자신의 기업을 물려주는 것은 어찌보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의미하는 대목일 지도 모른다.

장회장의 가족은 우리가 흔히 일반적인 가정이라 생각하는 모습과 거리가 멀다. 그녀는 일단 남편과 사별후에 안타깝게 아들과도 그렇게 되었다. 그녀에겐 역시 과부인 며느리와 철없는 손자와 손녀가 있을 뿐이다. 가장의 역할과 사장의 역할을 동시에 하던 그녀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고은성을 받아들여 (현재로선) 모든 것을 물려줄 작정이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가족에게 뭔가를 주고자 애쓴다. 이건 유전학적으로 자신의 DNA를 가진 이들에 대한 본능적인 마음의 발로이자 지극히 당연한 마음이다. 그러나 장회장은 이전까진 일면식도 없었던 고은성을 (거의 양녀로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집에 들어와 살게 하고 사업을 가르친다.

이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가족상이자 여성상을 드러낸 사례라 할 것이다. <찬란한 유산>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던 대목이 여기에 있다.

우린 우리도 모르게 부지불식간에 사업을 하거나 가정을 이끄는 등의 역할은 남성이 해야된다고 여긴다. 그러나 <찬란한 유산>은 여기에 철저히 반기를 들고 있다!

진성식품을 애초에 지금의 위치에 올린 것은 장회장이며, 장회장에게 기반을 마련해준 국밥집사장역시 여성이다! 그녀가 후계자로 점찍은 고은성은 고작 두 달만에 2호점의 매출을 20%나 올려놨다.

물론 선우환의 도움을 어느 정도 받긴 했지만 그녀는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자주적으로 능동적으로 해결해 오늘의 결과를 얻었다. 고은성과 반대편에 있는 백성희 모녀도 마찬가지다.

백성희는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철저히 남성을 농락해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취했다. 유승미는 처음에 그런 어머니에게 환멸을 느끼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소극적으로 따라가고 있다.

아마 기존의 드라마였던 백성희 모녀의 역할은 아마 부자가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찬란한 유산>은 악역도 여성이 하며 그들이 주체이자, 새로운 형태의 악의 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21세기를 10년 가까인 맞은 한국에 <찬란한 유산>과 같은 드라마가 등장한 것은 단순히 재미만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변화한 한국 사회의 모습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모계 중심 사회와 새로운 가족상 들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너무 앞서간 주장일까? 선택은 이 글을 읽는 네티즌들께 맡기겠다.


이미지출처: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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