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사이야기

우리는 왜 살사 댄스에 매혹되는가?

朱雀 2010. 9. 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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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은 적이 있었다. 맞다! 나 혼자만의 지독한 짝사랑이었다. 처음에 만난 그녀의 모습은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그녀는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등과 어깨는 여지없이 파이고, 몸의 라인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의상이었다. 허나 결코 천박하게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세상 그 어떤 여성보다 아름답고 섹시하게만 보였다. 그녀는 처음 살사를 접한 나에게 웃으면서 스텝을 가르쳐주고, 손을 잡고 천사의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나 여자 손도 변변히 잡아보지 못한 나는 오른손가락에 끝으로 느껴지는 브라끈과 그녀의 은은한 향수 냄새에 당황해서 쩔쩔맬 뿐이었다. 아마 내 얼굴을 보진 못했으나, 아마 빨갛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잘 익은 홍당무처럼.

 

드러내놓고 그녀를 좋아하진 못했지만, 속으로는 어떤 이들보다 열렬히 그녀를 사모했다. 허나 그녀는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나와 춤출 때는 그저 예의상 웃음을 지었지만 고수들과 손을 잡고 춤을 출 때 그녀는 가없는 미소를 지었다.

 

나보다 고수거나 인스트럭터와 춤을 추면서 그녀가 훨씬 예쁘고 멋지고 끝내줘 보이는 것은 인정할 수 있었다. 내가 아직 실력이 부족하니까. 그러나 그녀가 더 없이 환한 미소로, 행복한 미소로 상대방을 보며 춤출 때는 질투심이 활활 불타올랐다. 왜 돈 호세가 사랑하는 연인 카르멘을 죽였는지 이해가 될 지경이었다.

 

허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는 그녀의 애인이 아니었다. 따라서 다른 남자를 보며 미소짓지 말 것을 요구할 수 없었다. 나는 초심자였기에 다른 이들처럼 그녀를 행복하게도 빛나게도 만들어 줄 수 없었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베이직 스텝을 밟는 일이었다. 거울을 보며 속으로 박자를 세면서, 하루에 몇 시간씩 말이다. 내가 그런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안긴 그녀의 이름은 ‘살사’였다.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들이 그렇지만, 나 역시 살사를 처음 배우기 전까지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 3년 정도 시간이 걸렸다면 믿기는가? 춤이라곤 태어나서 나이트클럽에 가서 막춤을 춘 게 전부고, <더티 댄싱> <댄싱 히어로> 같은 영화로만 춤을 대한 입장에서 춤을 배우고 싶은 마음은 활활 일어났지만, 배우긴 쉽지 않았다. 당장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탓이었다.

 

여하튼 어렵게 살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살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살사는 남녀 비율이 1:3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1은 남자고, 3은 여자다! 여자가 왜 그렇게 많냐고? 모든 남녀 파트너 댄스는 그렇지만, 남자가 여자보가 처음에는 몇배 어렵다. 살사는 남자가 여자보다 세배 정도 어렵다고 보면 된다.

 

리더인 남자는 박자를 맞추고, 다음에 할 패턴을 생각하고, 여성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한번에 한가지만 하는 것이 익숙한 남자들에게 한꺼번에 세 가지 일을 멀티로 해결하라는 주문은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 같다! 나름 다른 분야에선 한 가닥 한다는 남자들도 살사를 배우고선 ‘내가 바본가?’라고 실의에 빠지는 일이 많다고 고백할 정도다! 그런데도 어느 정도 살사를 맛들이면 사람들은 헤어나올줄 모른다. 왜일까?

 

당시엔 살사 댄스에 정신없이 빠져 몰랐지만, 이젠 거기에서 꽤 헤어나오고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여자들의 경우엔 살사댄스에 말 그대로 중독되기 쉽다. 여자는 처음에는 팔로우의 입장이라 맘먹고 열심히 추면 빠르면 3개월 늦어도 6개월이면 재밌게 춤출 수 있는 실력에 올라간다.

 

살사 댄스는 상대방의 실력에 따라 다양한 패턴과 텐션을 느낄 수 있다. 흔히 ‘손맛’이라 불리는 살사 댄스의 텐션은 낚시와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한번 그 맛을 본 여성은 퇴근하면, 땡큐복으로 옷을 갈아입고는 춤추기 바쁘다. 회사에선 정숙하게 옷을 입지만, 살사바에선 최대한 섹시한 복장을 하는 것은 남자들의 홀딩신청이 늘어나고, 춤을 추는 자신의 모습이 예쁘기 때문이다!

 

국내 살사바에는 온통 거울로 벽이 도배되어 있기에, 자신이 춤추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남자는? 남자는 여자에 비해 정말 개미 눈꼽만큼 실력이 는다. 처음에는 정말 억울하기 이를 데 없다. 거울 앞에서 혼자 매일같이 몇 시간을 베이직을 연습해야 2-3개월 지나야 플로어에서 조금씩 티가 난다.

 

허나 여자와 달리 남자는 자신이 조금씩 발전하고 있고, 다양한 기술을 하나씩 습득하면서 행복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자신이 춤실력이 늘어나면, 함께 춤추는 상대방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낀다.

 


사진제공: 맥팬


춤을 추고 나서 여자가 ‘정말 춤 잘췄어요’라든가 ‘오늘 너무 느낌 좋다’라고 말해주면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기쁘기 한량없다. 남자란 여성의 칭찬 한마디로 천당과 지옥이 갈리는 존재니까.

 

어느땐가 마흔이 넘는 형님이 동호회 살세라들에게 이것저것 음료수와 먹을 것을 마구마구 사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옆에서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다.

 

"형. 그런 거 사주시는 거 기분 나쁘지 않으세요?“

 

“아니 전혀. 오히려 이 정도라니, 감사할 따름이야.”

 

“왜요?”

 

“내가 예전에 술 마시거나 놀기 위해 다른 곳들을 가봤지만, 살사바처럼 싸고 재밌는 곳은 처음이거든. 살사바 입장료라고 해봐야 얼마니? 고작 7천원이지?(지금은 인상되서 비싼 곳은 9천원정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살세라들에게 먹을 거 사줘봐야 만원도 안되잖아. 그런데 이렇게 사주고 나면, 다들 고맙게도 (마흔이 넘은) 나와 춤을 춰주잖아. 이 나이 먹으면 어디가서 젊은 아가씨들과 이야기 하는 것도 힘든데, 손 잡고 춤추면서 미소까지 지어주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어?”

 

듣고 보니 그랬다. 아마 우리가 살사 댄스에 매혹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이성과 손잡고 춤추기 때문일 것이다. 수 많은 이성과 춤을 춰볼 수 있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상대방과 별다른 말도 할 필요가 없다. 오직 춤만 추면 된다. 만약 당신이 춤만 잘 춘다면 그녀(혹은 그)는 당신에게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당신이 상대에게 이성적인 관심이 있다면, 얼마든지 애프터를 신청할 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춤에 매진하게 되면 더욱 높은 경지가 당신을 기다린다. 우리나라의 모든 문화가 그렇듯이 살사 댄스계에도 하수-중수-고수로 층이 나뉘어진다. 당신이 열심히 배우고 연습한다면, 차례차례 계단을 밟아 언젠가는 모두가 인정하는 고수가 될 수 있다. 마치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레벨을 쌓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 그런 재미등이 우리가 살사에 매혹되는 이유일 것이다.

 

끝으로, 우리가 살사 댄스에 가장 매혹되는 가장 큰 이유는 가끔 살사를 추면서 너무나 행복한 순간에 빠지기 때문이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마치 벼락이 치고 지나간 것처럼. 그 순간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춤추면서 오게 될지 아무도 누구도 알 수 없다. 허나 그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면, 당신은 다시 그 경험을 하기 위해 살사를 계속해서 추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벼랑위에서 끊임없이 바위를 굴리는 시지푸스처럼. 다른 점이 있다면, 시지푸스는 신의 고통스런 형벌이지만, 당신에게 살사는 너무나 행복하고 절실한 그 무엇이 될 것이란 사실이다. 적어도 그때의 당신에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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