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한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다.

朱雀 2010. 12. 10.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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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통 쓰는 종이는 몇 십년이 채 가질 않는다. 몇 년만 되도 누렇게 변색이 되는 책을 자주 볼 수 있다. 특수한 처리를 거친 종이도 채 백년을 가질 못한다. 우리 한지는? 무려 천년이상을 약속한다. 대표적인 예가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되시겠다. 196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을 해체할 당시 발견된 것으로, 무려 1200년이 넘었다.

 

이런 한지의 효용 탓에 미국 국가기록원에서도 자국의 기록을 오래 남기기 위해 한지를 연구한 것은 매우 유명한 일화이기도 하다. 지난 안동 여행 당시, 안동전통한지공장을 찾아가게 되었다.

 

한지의 시작은 닥나무를 채취하는 것으로 시작된단다. 닥나무 채취는 경북 예천, 의성, 주문진 등에서 이루어지는데, 재밌는 것은 닥나무 이름의 유래였다. 닥나무는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있는 탓에, 구부리거 하면 딱 소리가 난단다. 이 소리 때문에 딱나무 혹은 닥나무로 불리우게 되었단다. 창고 한켠엔 닥나무 껍질인 저피가 가득 쌓여있었지만, 촬영상의 실수로 제대로 찍지 못했다.

 

그 다음 찾아간 곳엔 저피를 증기로 오랫동안 쪄서 말린 후, 불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선 아주머니 두 분께서 잡티를 고르고 계셨다. 하루 종일 같은 작업을 반복 하신다니, 갑자기 마음한켠이 아릿해졌다.

 

그 다음 과정에선 우리가 TV등에서 익숙하게 본 것으로 ‘한지뜨기’였다. 곱게 간 종이죽을 물에 푼 다음, 커다란 발에 일정량을 담아 양쪽으로 골고루 퍼지게 만들어주는 작업이었다. 그냥 보기에도 쉽지 않아 보이는 이 작업 역시 숙련공께서 하루 종일 반복한다고.

 

다른 한편에선 프레스기로 물기를 뺀 한지를 커다란 철판에 붙여 말리는 작업 중이셨다. 끊임없이 붙이고 떼고 하는 아주머님의 손길에서 다시 한번 정성이랄까? 장인정신 같은 게 느껴졌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우리의 전통공예는 사람의 손길을 많이 요구한다. 거기에는 정성과 세심한 손길이 계속해서 필요하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나는 그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좀 더 편한 방법은 없을까?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은? 우리는 보통 그런 것을 기계화-자동화에서 찾는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종이는 채 백년을 가지 못한다. 비록 어떤 면에선 답답할 정도로 느리지만, 때론 ‘왜 저렇게 힘들게 만들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지만, 무려 11가지 과정을 거친 한지는 1천년이 넘는 수명을 자랑한다.

 

단순히 수명만이 아니다. 이제부터 펼쳐질 한지의 아름다움을 보라! 이제부터 보이는 모든 것은 한지로 만든 것들이다. 보는 순간 경탄하게 되겠지만 한지는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다. 옷이 될 수도 있고, 인형도 될 수 있으며, 작품이 될 수도 있다.

 

한지는 무려 10가지 효용이 있단다. 먼지나 남새를 빨아들이고, 공기를 맑고 깨끗하게 한다. 인체에 유해한 자외선을 차단하고 피부를 보호한다. 한지를 통해 들어온 빛은 눈에 부드럽고, 빼어난 흡수성과 발산성을 지니며, 자연환경 정화에도 도움을 준다,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으며, 강하고 끈기 있는 성질은 온화하게 만든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느낌을 주며, 천연재료에 염료의 배합에 따라 부드럽고 차분함을 준다.

 

10가지 효용을 듣고 나니, 문득 어린 시절 문풍지가 떠오른다. 비록 예전에 살던 집은 우풍이 세긴 했지만, 지금처럼 집안이 건조하진 않았다. 건조하다고 생각되면 문풍지에 물을 조금 뿌려주는 걸로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사는 집은 건조하기 때문에 가습기를 두고, 온통 편리함을 위해 기계화나 자동화를 거친 제품들이 대다수다. 거기에는 화학처리가 되어있어, 아토피를 비롯한 피부염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편리하게-값싸게-보다 빠르게’라는 목표를 내건 우리의 현대문명은 부메랑이 되어 일상생활에서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안동한지공장에 가서 고집스러울 정도로 옛 방식을 고수하는 이들을 만났다. 이들은 예전방식으로 한지를 만드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이 내한했을 때 찾았다는 사실을 증거로 대기도 했다. 천년이 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말은 내가 봤을 때 의미 없었다. 아니, 필요 없었다. 전시되어 있는 한지들과 공예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남았다. 다양한 색깔의 한지를 이용해 만든 작품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물론 요새 종이처럼 세련되거나 날카로운 맛은 없었지만, 은은하고 멋스러우며 끝없이 변화하는 다양한 매력에는 도저히 반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천연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옷을 만들어 입거나 집안에 온통 장신구를 늘여놓아도 아토피염을 비롯한 피부질환등을 걱정할 일이 없다. 아니 모든 걸 떠나서, 정말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까지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한지를 그동안 거의 잊고 살아왔다니, 조상님께 죄스러울 정도였다. 비록 불편하고 단점이 많다 해도, 우리의 얼을 지키기 위해 이어가야 할텐데. 이토록 많은 장점을 지다니. 더더욱 아끼고 소중하게 간직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나는 내가 느낀 것을 알리고자 사진과 글을 올린다. 내가 느낀 것들을 조금이나마 여러분께 전달할 수 있다면 기쁘기 한량없는 일이겠다.

참고: 안동한지(http://www.andonghanj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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