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홍대에서 윤성호 감독을 만난 사연

朱雀 2010. 12. 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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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밤 10시 홍대입구 삿뽀로라이온에서 ‘독립영화인의 밤’이 개최되었다. 올해로 36번째 맞는 서울독립영화제 2010의 행사중 하나였다. ‘창작자 뿐만 아니라 관객과의 만남을 소중히 하겠다’라는 취지아래 열린 부대행사였다.

 

평상시 영화에 관심 많은 한 친구가 행사를 알고 같이 가자고 꼬드겼다. 나는 처음에 두 손을 절레절레 지었다. 잘 모르는 이들과 합석하는 것도 부담이었지만, 무엇보다 작품을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영화인들과 마주한다는 사실이 죄스러웠다. 그러나 절친한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고, 결국 끌려가고 말았다.

 

열혈 영화마니아인 친구는 행사장에 도착해서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자! 봐라! 여기 명소지?” 그 말을 듣고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요즘 서울 시내에 영화나 드라마 촬영안 한 곳 있냐?‘라고. 그러나 속으론 ’뭐야! 왜 이렇게 많이 촬영한 거야?‘라고 놀라고 있었다.

 

행사장인 삿뽀로라이온에 들어가니 온통 연예인들의 사인이 도배되어 있었다. 거기엔 손예진, 김승수는 물론이요. <미남이시네요> 출연 당시의 장근석, <파스타>의 출연진들, <세남자>의 정웅인 -윤다훈, 엄정화, 지진희, 윤소이, <나는 전설이다>의 김정은까지.

 

의기양양해하는 친구의 표정을 보며, 순순히 패배를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곤 들고 있던 오두막으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평상시 준비성이 너무 철저한 친구 덕분에 우린 행사 시작보다 1시간 빠른 9시쯤에 도착했다. 거기선 다른 팀(?)이 송년회를 하는 분위기였고, 나는 이런 저런 사진찍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친구는 모금함에 2만원을 넣고 왔다. “저 분이 김동현 국장이란 분이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맹활약중이시지.” 그 말을 듣는 사이, 그분(?)께선 먼저 온 영화인들에게 모급함을 내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짧은 지식에도 상업영화현장도 엄청 힘들다고 하던데, 특히 자본이 부족한 독립영화판에서 많은 고생을 하셨을 텐데, 표정이 너무나 좋아서 조금 놀랐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탓일까? 옆에서 조금 지켜보니, 행사를 진행하는데 짜증나는 일이 있는 것 같은데도, 쿨하게 넘어가는 모습이 가히 여장부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차자, 사람들이 제법 찼고 나는 친구와 앉아있었다. 주변엔 온통 모르는 이들 뿐이라, 쭈삣쭈삣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 나를 보다 못한 친구는 여기저기 끌고 다녔고, 나는 그 와중에서 최근 재밌게 본 인디시트콤 <구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이하 ‘<구하라>’)의 윤성호 감독을 만나게 되었다. 윤성호 감독은 명함을 건네자마자, ‘파워블로거는 환영한다’라고 해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용기백배해서 갑자기 이런저런 말을 묻게 되었다.

 

<구하라>를 제작하게 된 이유를 묻자, “당시 장편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막히고 있었어요. 스토리적으로 막힌 것도 있었지만, 극장에서 관객들은 스펙터클한 게 아니면 잘 안보려는 경향이 있어요. 근데 제가 당시 쓰던 이야기는 소소한 것들 이었죠. 그래서 소소한 이야기를 유통할 방법을 찾다가, 인터넷을 생각하게 되었죠. 또한 유로다운보다는 무료다운로드를 통해 데이터를 축적한다는 마음으로 다가갔죠.”

 

바로 그 이야기를 듣자, 제작비 문제가 떠올랐다. 윤성호 감독은 “내 주의가 민폐를 덜 끼치자는 주의입니다. 그래서 ‘견적은 따내보자’는 생각으로 인디스토리를 찾아갔고, 이제는 ‘온라인으로 유통하는 데이터를 쌓아보자’는 식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인디플러그에서도 조금 받고 해서 1,500만원 정도가 확보되었죠. 수익모델은 없지만, 의미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워낭소리>의 고영재 대표가 어느 정도 할애해 준거죠. 그걸 가지고 나흘 동안 찍게 된거랍니다.”

 


 -<구하라>의 에피소드를 보고 싶다면, '인디시트콤'을 클릭!(포복절도하게 될 것이라 자신한다.^^) 이곳에 가면 윤성호 감독은 물론, 주연배우들과 트위터등을 통해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



그리고 시즌 1이라 붙인 것은 약간 장난스럽게 붙인 것이며, 시즌 2는 내년 초쯤 찍을 계획이란 사실. 중간에 출연한 김정화씨는 전혀 계획이 없다가 우연한 기회에 하게 되어 예정에 없던 시나리오를 쓰고, 황제성씨의 경운 평소 TV에서 눈여겨 보다가, 이번에 캐스팅해서 작업하게 되었다는 사실등을 알게 되었다.

 


 영화 <도약선생>의 한장면. 내년초 극장개봉예정

윤성호 감독께선 (내가) 무식한 발언을 하는데도 참아주며 답변해주어서 너무나 고마웠다. 솔직히 윤성호 감독의 작품은 <구하라> 밖에 본 것이 없고, 이번 독립영화제 개막작인 <도약선생>은 보지 못해, 바로 옆에 주연배우중 한명인 박희본 씨가 앉아 있는데도 별다른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 죄송할 지경이었다(당시엔 몰랐는데 집에 돌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벌개졌다).

 

2002년 걸그룹 밀크에서 활동한 박희본씨는 올해 <그랑프리> <구하라> <도약선생>에 출연한 연기자다.

‘이래서 준비없는 인터뷰는 하면 안되는 것인데...’라고 얼마나 자조섞인 말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만난 윤성호 감독은 유머감각이 풍부했고, 자신에 대해 ‘안경쓰고 소심한 사람’이라고 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내가 윤성호 감독의 전작을 본 것도 아니고, 잠시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한 수준인지라 뭐라고 평가하긴 어렵지만 말이다.

 

시간은 11시를 넘어갔고, 집행위원장이 일어서서 이번 서울 독립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한 영화감독들을 소개했다. 그중 내 눈길을 끈 이는 단연 개막식 사회를 맡았던 권해효씨였다. 정중하게 촬영을 요청했고, 다행히 환한 미소로 승낙해서 몇장 찍을 수 있었다. 폐막식 사회를 맡은 정찬씨는 갑작스럽게 몸이 안 좋아져 참석치 못했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제 300여석 규모라는 삿뽀로라이온엔 영화인들이 진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탁자위로 빨강-노랑-파랑색의 담배각이 보였다. 살펴보니 ‘엔츠’라고 적혀있었다. 컴팩트한 느낌의 담배는 이 축제현장과 왠지 잘 어울려 보였다. 피는 분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니 ‘독립영화인의 밤에 즐거움을 더해주네’라는 말이 들려왔다. 영화를 하는 이들인 탓일까? 표현도 무척 영화처럼 멋스러웠다.

 

어느새 시계를 보니, 막차시간이 가까워져서 서둘러 허둥지둥 나갔다. 친구는 집도 가까운데다, 워낙 열혈마니아인지라 영화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돌아오는 전철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냥 ‘영화인의 밤’이었다면, 나는 오늘과 같은 실수를 안했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그건 말도 안되는 핑계였다. 내가 조금만 관심만 있고, 찾아봤다면 윤성호 감독의 전작은 충분히 찾아볼 수 있었다. 개막작인 <도약선생>의 경우도 내가 조금만 부지런하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주변머리 때문에 윤성호 감독밖에 대화를 (그것도 짧은 시간밖에) 나누지 못했지만, 1만원 이상만 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독립영화인의 밤’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었다.

 

그곳에 가면 영화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이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어렵고 힘든 영화작업을 하면서도 그들의 표정은 매우 밝았고 활기가 넘쳐 흘러보였다. 물론 나름대로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말이다. 그분들의 활기찬 모습과 이야기를 들으며 새삼 반성하게 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참고로 ‘서울독립영화제 2010’는 17일까지 계속되며, 상암CGV에서 출품작들을 볼 수 있다. (참고: 서울독립영화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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