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朱雀 2010. 12. 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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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홍대에 위치한 에뚜와에서 장하준 교수와의 소박한 만남이 있었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출판사인 부키에서 주최한 모임은 장하준 교수와 블로거와의 만남의 장을 마련했다.

 

얼마 전 한겨레에서 주최한 모임을 아깝지 놓친 입장에서 장하준 교수와의 만남은 정말 천금이 아깝지 않은 기회였다. 부푼 기대를 안고 찾아간 곳엔 나를 포함해 약 2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8시 정도에 장하준 교수가 도착했고, 우린 그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받으며 다시 한번 경제와 세상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드라마 <트리플>의 무대였던 '본드 팩토리'가 바로 이곳 '에뚜와'였다!

당시 질문과 답에 대해선 다른 분들께서 이미 올려주신 관계로 나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장하준 교수는 당시 참석한 이들이 최소한 한번 이상은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돌아가기 위해 배려했다. 개인적으로 질문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지만, 이미 앞에서 상당 부분 해소된 관계로 하고 싶은 질문들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장하준 교수는 배려했고, 결국 마지막까지 하지 않았던 나는 요새 나를 괴롭히던 질문을 하고야 말았다.

 

“오늘날 부모들은 자식들이 괴롭다는 사실을 알면서, 심지어 ‘현재의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의 자식에겐 과외를 더 시키지 못해 안달입니다. 누구나 땅투기는 잘못 되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지난번 국회의원 선거에선 허황된 뉴타운 공약만을 믿고 많은 이들이 특정 정당에 표를 몰아주었습니다. 이런 무한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요?”

 

솔직히 답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도 이런 질문은 경제학자보단 철학자에게 더욱 어울리는 질문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지난 몇주간 나를 괴롭혀온 질문이기에 던지고 말았다.

 

장하준 교수는 나름대로 성실하게 답변해주었다. 정확하게 기억은 못하지만 요지를 정리하면 ‘계속 노력해서 그런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좀 더 올바른 길로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가자’정도가 될 것 같다. 다른 답변에선 장하준 교수의 이야기에 공감했지만, 그 부분에 관해선 그다지 공감이 되질 않았다.

 

그리고 지난 며칠간 장하준 교수의 말을 곰씹으면서, 내 생각이 짧았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장하준 교수는 스스로를 ‘낙관론자’라고 했다. 내가 알기로 낙관론자라고 밝힌 경제학자는 장하준 교수가 처음인 듯 싶다. 굳이 최근에 읽은 <촌놈들의 제국주의> <괴물의 탄생>의 저자이자, ‘공포경제학’의 대가인 우석훈 교수를 들지 않더라도, 경제학자들은 흔히 무시무시한 말들을 하는 이들이지 않던가?

 

‘인플레이션과 고물가가 동시에 올 것이다’ ‘한국의 환율은 곤두박질 칠 것이다’ ‘세계대공황이 다시 도래할 것이다’ 등등 내가 요새 읽은 잡지와 뉴스에선 말세론 못잖은 흉흉한 예측들이 ‘경제학’의 이름아래 난무하고 있다. 장하준 교수가 말한 것처럼 신자유주의 경제학에선 인간을 ‘이기적인 본성’만을 가졌다고 최악의 상태로만 가정하고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인간은 ‘이타적 본성’역시 갖추고 있다. 찻길로 뛰어가는 어린아이를 자신이 다치는 것과 상관없이 잡아주며, 굶주리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적금통장을 깰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반지의 제왕>이 새삼 위대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선한 이라도 ‘절대반지’를 끼는 순간, 악인이 된다는 메타포는 권력을 가지면 아무리 시민운동을 하던 이라도 순식간에 바뀌어 버린다. 이건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진리'다. 절대반지를 파괴한 것이 위대한 마법사 갠달프나 고귀한 엘프, 위대한 군주가 아니라 보잘 것 없는 호빗족의 프로도란 사실은 많은 부분에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엄청난 암흑기를 보내왔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일제 강점기 36년과 5.16 쿠테타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군사정부가 다스렸다.

 

그런 긴 시간은 충분히 우리를 비관론에 빠지게 할 만했다. ‘일본은 너무 강해서 차라리 독립을 포기하고, 일본의 시민으로서 살자’며 변절한 지식인들은 넘쳐났고, 군사정부의 횡포에 맞서다 포기하고 투신한 이들 역시 많았다. 그러나 그런 모진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의 불씨를 잊지 않고 싸운 이들의 피값으로 우린 오늘날 이만큼의 부와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물론 우린 지금에 만족해서도 안 되고, 지금 상황에서 포기해서도 안 된다!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악의 군주 사우론이 지배하는 모르도르. 그것도 한복판인 운명의 산에 절대반지를 버려야하는 임무를 떠맡은 프로도가 자신의 충직한 친구인 샘과 반지를 호시탐탐 노리는 골룸만을 데리고 나선 절망적인 모험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담대한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담대한 희망’을 제시한 오바마에게 선거운동원들은 기꺼이 자신의 동네 주민들을 수시로 방문해서 ‘한명’이라도 더 그를 지지할 수 있도록 일대일 설득작업을 벌인 것처럼, 우리도 올바른 사실을 한명에게라도 더 알리고, 그런 것들이 퍼져서 옳은 세상으로 갈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사람의 힘은 분명히 약하다. 정의는 항상 약한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옳은 것’을 안다.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한다면, 언젠가 우리의 선배들이 그런 것처럼 우리도 우리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한 사람의 열걸음보다 열사람의 한걸음은 더디고 답답하고 어렵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기에 우리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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