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문명의 이기가 우리의 몸을 망치고 있다!

朱雀 2010. 12. 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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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의 창시자인 노자. 그의 유일한 저서인 <도덕경>은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는
경전이다. 이미지출처 : 위키백과



며칠 전의 일이다. 지하철을 탔는데, 한 대학생이 선배의 아이폰 4를 보면서 몹시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현대문명의 총아인 MP3 플레이어 등이 우리 몸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 문득 떠올랐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주위에 안경을 낀 이들은 몹시 드물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안경잡이’들이 대다수 포진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많은 이들이 눈이 나빠진 이유가, 흔히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TV를 가까운 곳에서 봤다’고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학자들은 심리적-환경적 요인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오늘날 우리의 생활을 생각해보자! 우린 집에서 TV를 보는 정도가 아니라,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업무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는 게 일상사가 되어버렸다. 그것도 부족해서 심지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도 DMB나 MP3 플레이어나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기들을 손에 잡고 무언가를 한다. 덕분에 우리의 눈은 쉴 틈이 없어졌다. ‘50분 정도 보고, 10분은 눈을 쉬게 해주라’는 말은 상식처럼 널리 퍼져있지만, 대다수는 그런 말을 귓등으로 넘기고 있다.

 

그리고 눈이 일정수준 이상 나빠지면, 라식 수술 등을 이용해 손쉽게 시력을 높이는 방법을 찾고 있다. 좋다! 눈은 그렇게 해서 시력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다고 하자! 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청력이 나빠지면 인공내이라도 장착할 셈인가? -만약 이런 식으로 우리의 신체적 기능이 떨어지고 이를 대체하기 위해 의학이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면, <공각기동대>의 전뇌와 의체화도 멀지 않은 시일 내에 가능하게 될 것 같다. 우리가 사이보그가 되는 ‘그 날’이 말이다-


 

MP3, 이어폰 들으면 가장 청력 위협

MP3를 사용해 음악을 들어서 생긴 일시적 청력감퇴는 장기적으로 청력손실을 일으킬 수 있으며 음악 파일을 압축해 듣는 MP3는 CD나 레코드판에 비해 음의 고저의 폭이 커 청력에 더 좋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출처: Kormedi

 

위의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이어폰으로 1시간 정도 음악을 들으면 청력의 민감도가 떨어졌다. 가뜩이나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청력은, ‘MP3는 난청을 가속화한다’는 무시무시한 말이 이어진다.

 

사실 굳이 이런 뉴스를 들지 않아도, 우린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 얼마나 귀에 해로운지 잘 알고 있다. 필자의 경우, 예전에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다가, 주변의 소음 때문에 자꾸만 볼륨을 높였고 결국 가는 귀가 먹게 되었다. ‘안되겠다’싶은 마음에 처분한 이후, 일체의 휴대용 기기는 갖고 다니지 않고 있다.

 

시력과 청력은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적당한 휴식과 운동 그리고 치료 등을 병행해주면 회복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MP3 플레이어, 스마트폰, 태블릿 PC, 3DTV등의 신제품들은 우리의 눈과 귀를 너무나 혹사시키고 쉴틈을 주지 않는다.  한편으론 쉬지 싶지만, 업무 때문에 혹은 재미 때문에(라고 쓰고 '핑계'로 읽는다) 열중하게 되고 이는 우리 몸의 건강을 해치는 결과로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열두째 가름

 

갖가지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하고,

갖가지 음은 사람의 귀를 멀게하고,

갖가지 맛은 사람의 입을 버리게 한다.

말달리며 들사냥질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만든다.

얻기 어려운 재화는 사람의 행동을 어지럽게 만든다


출처 :도올 김용옥이 말하는 <노자와 21세기>


 

어디서 내 생각과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도덕경>의 해당 문구를 찾기 위해 도올 김용욕 교수의 <노자와 21세기>를 펴보았더니, 귀에 이어폰을 꼽는 젊은 세대를 향해 날선 비판이 이어지고 있었다-<노자와 21세기> 하권에 열두째 가름편이다-. 옛 경전을 읽으면서, 액면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2천년 전과 오늘날의 상황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구만큼은 오늘날 우리에게 통렬한 비판으로 다가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우린 눈과 귀를 즐겁기 하기위해 MP3 플레이어, 태블릿 PC, 3D영상 등을 보며 제 몸이 상하고 있는 줄 모르고 있다. 굳이 다음 줄을 해석하기 위해, 재물과 명예를 탐해 현대인들이 어떤 일까지 하고 있는지,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날은 그 어떤 시대보다 빠르게 변화하면서, 각종 신기술이 선보이고 있다. 3차원 입체 안경을 비롯한 기기들은 우리들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끝내준다. 그러나 그것들은 위에서 지적했지만 우리의 오감을 망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오감을 망치는 것도 부족해서, 이런 조류에 떠밀려 의지를 잃어버리고 흐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이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2천년전 인물인 노자의 통렬한 비판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유에 대해 우린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만물의 영장’은 우리에게 과분하기 이를데 없는 수식어로 폐기처분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린 우리 삶의 주인인가? 진정 우리는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가? 여러분과 내가 대답해야 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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