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21세기 초강대국?!

마침내 황제신화를 역사로 만들어낸 중국

朱雀 2011. 3. 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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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1996516일 중국은 하상주 단대공정이란 국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여기에 모인 인물도 화려하지만 단체는 더욱 화려하다. 중국 과학원, 중국 사회과학원, 국가 과학 위원회, 국가 교육 위원회, 국가 자연과학 기금회 등등. 이들은 역사-고고학-천문학-과학적 연대 측정의 네 가지 분야로 나눠 연구를 진행시켰다.

 

그렇다면 이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신화를 바로 현실로 되살려내는 것이었다! 물론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학자들이 신화는 그저 허구에 불과하다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다.

 

그러나 1990년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이후 매년 10%에 가까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국력이 신장하던 중국으로선 공자기년, 즉 기원전 841년부터 중국의 공식적인역사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그들이었기에-

 

그래서 그들은 황제로부터 중국이 시작되어, --주의 삼대왕조가 실존했었다는 것을 어떻게든 사실화시켜야했다. 그래서 역사 올리기란 미명하에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게다가 여건도 좋았다. 국가는 이전까지 없었던 경제적-사회적 원조를 아끼지 않았고, 마왕퇴와 삼성퇴에서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상주 단대공정2000915일 성공리에 끝나고, 11월에는 공식 발표가 이루어졌다. 거기서 중요한 사실은 아래와 같았다.

 

하대 B,C 2070

상대 B.C 1600

주대 B.C 1046

 

보는 순간 눈을 의심하게 되지 않는가?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이란 숫자는 보이지 않는다. 하나라-상나라-주나라는 그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사마천의 <사기>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만,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없어서 누구도 확정을 지을 수 없는 역사다. 그런데 하상주 단대공정를 진행한 학자들은 어떻게 겨우 ‘5이란 기간 안에 이렇게 각 왕조의 연도를 이다지도 완벽하게 확정지을 수 있었을까?

 

간단한다. 그들은 모든 증거를 꿰어맞췄다! 그들이 하의 도성으로 내세운 이리두엔 유적은 있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학자들은 그저 이리두의 도기와 마을터만 보고 하나라로 특정지어 버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도기 하나로 각 시대를 세밀하게 분류하기란 불가능하다.

 

도기의 모양 등은 그 시대의 큰 상관없이 얼마든지 쓰일 수 있다. 그리고 탄소 측정법 역시 문제가 많다. 서구의 학자들도 탄소 측정법을 사용하지만 오차는 인정한다. 가령, 일정한 범위 안에 두 물건이 유적에서 발견할 경우, 두 물건이 다른 시대의 것인지 차이를 밝혀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탄소 측정법은 측정한 학자마다 측정치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중국학자들은 그런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증거들을 내세워 연도를 확정하고, 마치 계획경제를 하듯이 ‘5이란 식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각종 프로젝트(동북공정, 서북공정 등)를 진행하고 있다. 왜일까?

 

-심지어 중화문명탐험공정2004년 산시성 양푼현 타오스향에서 발견된 터를 스톤헨지보다 5백이나 오래된 세계 최고의 천문대라 소개하고, 2002년 발견된 후난성 용초우시의 1만년전 고분의 주인은 순임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런 주장엔 뒷받침이 될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 ‘그저 터가 거기 있고, 유골이 누워있으니 천문대고 순임금이다!’라는 식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중국과 연구학자들이 밝히고자 하는 것은 진실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중국의 역사를 5천년, 아니 1만년까지 끌어올리는 것 뿐이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항상 모든 것의 중심이라 여겨왔던 중화사상의 부활을 위해서다. 중국인은 역사이래로 다스려왔지, 다스림을 당한 기억이 거의 없다. 오직 1842년 이후 약 1백년간만이 열강의 먹이가 되어 갈가리 찢기고 터지고 빼앗긴 치욕의 역사일 뿐이었다.

 

따라서 이제 슬슬 어느 정도 경제력으로 아시아를 호령하게 된 중국은 자존심 회복을 위해 중화문명의 찬란함을 다시 세워야 한다. 그들은 우선 황제를 중심으로 하여 찬란한 문명이 하상주를 거쳐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이어져왔음을 알리고자 한다.

 

이런 찬란한 역사는 중국인의 가슴을 울리게 해서 역사적 자부심을 갖게 하고, 장차 중국이 세계를 다스리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정통성을 내세우려 하는 것이다. 즉 이전까지 황제신화가 중원을 차지한 통일왕조가 자신의 정통성을 내세웠다면, 21세기 황제신화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할 정통성과 적법성을 부여할 역사적 사실이 되고 있다.

 

물론 중국 정부도 황제만 내세워서는 다민족 공동체인 중국에서 한계가 있다고 보고, 묘족이 자신의 시지로 떠받드는 치우까지 민족시조로 받아들였다. 덕분에 한쪽에선 무시무시한 귀신으로 형상화되어 황제의 발아래 깔린 치우가, 다른 사당에선 중앙에 황제가 있고, 좌우에 각각 염제와 치우가 함께 모셔져 있는 그야말로 도저히 다른 나라에선 있을 수 없는 위화감이 넘치는 풍경을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중국은 우리가 보았을 땐 말도 안 되는 이런 풍경이 웃으면서 중국에선 가능하다라고 말할 뿐이다-

 

<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신화>에서 밝히는 것처럼, 오늘날 황제의 각종 유적과 무덤이 넘쳐나는 중국에는 황제의 유골이 없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오래된 유골마저 없는 말 그대로 가짜무덤이다. 그러나 가짜로 만들어진 황제 무덤과 치우의 사당 은 대륙 곳곳과 해외에 퍼진 중국인과 화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민족적 자긍심의 고취는 물론이요 그들이 고국에 투자하는 계가를 올리고 있다. -한마디로 알 먹고 꿩 먹는 식의 효과가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치우까지 자국내 민족시조로 받듬으로서 중국은 북한과 한국 역시 우리의 일부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내세우기에 이르렀다. ‘조선족과 묘족의 시조를 모셨으니, 한민족도 우리의 일부라는 이들의 억지주장은 그들의 역사 프로젝트의 골인지점이 어디인지 선명하게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늘날 시대는 우리에게 매우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린 어떤 답을 내놓고 행동해야 할 것인가?

 


참고: <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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