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히틀러를 만들었다?

朱雀 2011. 3.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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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사 산책> 5권을 읽다가 흥미로운 대목을 접하게 되었다. 우드로 윌슨의 고집 때문에 독일의 경제가 휘청거렸고, 이는 히틀러가 훗날 총통이 되어 정국을 휘어잡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사실 이었다!

 

이야기는 세계 1차 대전이 끝난 1918121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드로 윌슨은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재위기간 중 미국을 벗어난 최초의 대통령이 된다. 그가 향한 곳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전승국 대표 70여명과 함께 전후대책을 논의하게 된다.

 

그는 1년 전 발표한 14개 평화조약이 이루어지길 바랬지만, 현실은 그의 이상을 철저하게 배신했다. 1919628일 맺어진 베르사유 조약은 열강들의 잔치판으로 끝났다. 독일은 해외 식민지를 모두 잃고, 거기에 더해 1320억 마르크를 10년 안에 지불해야 했다. 한마디로 전후 잿더미에 앉은 독일은 수입원을 잃고 거기에 더해 배상금 명목의 일종의 빚까지 짊어진 셈이 되었다.

 

열강들의 독일 뜯어먹기에 환멸감만 가지고 돌아온 윌슨 대통령은 베르사유 조약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의 처세 부족으로 거부당하고 말았다. 그는 철저하게 공화당 의원을 무시했고, 그들이 내놓은 수정안마저 스스로 부결시키고 말았다.

 

<미국사 산책>에 나오는 표현처럼 자신이 낳은 맏아들을 스스로 죽인 셈이 되었다. 수정안에선 그가 애초에 생각한 14조 중에서 유일하게 국제연맹을 만드는 안이 살아있었다. 그러나 옹고집쟁이인 윌슨은 그러한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는 스스로의 건강을 악화시키고, 2차 세계대전의 불씨를 남겨놓는 꼴이 되고 말았다.

 

훗날 세계대공황이 도래한 미국에 처방을 내놓은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 때문에 파산했으며,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거머쥔 주요원인도 베르사유 조약이다라고 주장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시 베르사유 조약은 전적으로 너무 독일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었다. 만약 수정안이지만,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국제연맹에 미국이 가입할 수 있게 받아들였다면, 최소한 독일은 불만을 이야기해서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케인즈는 생각한 것이다.

 

물론 몇 번의 조정을 통해 과중한 전쟁보상금은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되지만, 그 기간 동안 프랑스는 알자스-로렌 지방을 빼앗고, 심지어 벨기에와 공모해 1923년엔 루르 지방을 빼앗기에 이른다.

 

1차 대전 이후 서구에 의해 식민지는 물론, 상업적 이득권까지 빼앗기고, 내정까지 간섭당하는 상황은 당연히 독일국민들에게 적개심을 불타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더해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은 당장 먹고 사는 것마저 걱정에 이른다. 비록 독재를 했지만 독일인에게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말하며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먹고 사는 문제를 빠른 시간안에 해결한 히틀러에게 독일인은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히틀러라는 희대의 독재자를 탄생시킨 것은 전승국들이었다. 특히 우드로 윌슨에게 많은 공격을 가할 수 밖에 없다. 그는 민족 자결주의로 대표되는 14개 조항을 발표했지만, 이를 지원할 구체적인 방안을 전혀 내놓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는 이상은 높지만 실천력은 전혀 없는 인물이었다.

 

민족 자결주의에 가장 많이 자극받아 3.1운동을 펼친 우리 역시 일제의 철저한 탄압아래 더욱 심한 식민지 지배에 들어갔으니, 우드로 윌슨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당시 미국의 이상과 현실이 얼마나 극명하게 대조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참고: <미국사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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