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사람은 온전히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朱雀 2011. 5. 6.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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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처: 드라마 <49일>


최근 재밌게 보는 드라마 <49>에서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바로 극중 한강과 신인정의 고백부분이었다. 한강은 고등학교 시절 신지현을 엄청나게 괴롭힌 인물이었다. 그래서 신지현은 여태까지 한강이 자신을 싫어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한강 나름대로의 말 못한 속사연이 있었다. 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를 오해하면서 자라왔다. 왜 돈이 별로 필요없는 어머니가 와인을 팔면서 살았는지, 갑자기 진안으로 이사왔는지, 췌장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도 아들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미국으로 보냈는지 등등 원망과 미움과 그리움 등이 범벅이 되어서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가 진안에서 알게 된 신지현은 역시 부잣집 딸로 앞장서서 남을 도와주기 좋아하는 인물로 계산없고 구김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신지현은 갑작스럽게 전학온 한강을 위해 이런저런 일을 벌인다. 장기인 마술로 내기를 걸어,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싸온 미역국을 먹게 만들고, 같이 타롯점을 보는 일을 하면서 티격태격 다투기도 한다.

 

한강은 자신의 마음 표현에 서투른 인간이었다. 그래서 신지현을 좋아하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표현했으니 '몸은 어른이되 마음은 아직 소년'이라고 해도 좋을 듯 싶다. 그런 한강은 신지현에게 많은 마음의 빚을 지었다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백기사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반면 신지현의 둘도 없는 친구인 신인정은 자신의 애인인 강민호를 (신지현에게 보내) 약혼까지 하게 만든다음, 현재 집안과 회사를 망하게 하려는 계획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신지현에게 이토록 처절할 정도로 복수를 하면서도 그 이유가 예상보다 별로 세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15회에서 그녀의 대답은 상당히 의외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설득력 있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신인정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해 빚쟁이에게 쫓겨다니고, 대학에 갈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정의감이 넘치는 신지현 덕분에 그녀의 집에서 숙식을 거하면서 급기야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고, 현재는 신지현 아버지의 비서로 일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녀는 누구보다 신지현에게 가장 많은 것을 받은 장본인이며, 이쯤되면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근데 그녀의 입장에선 나름대로 타당성있는 이유가 있다. 그녀는 친구로서 신지현에게 그저 고민을 말한 것인데, 이 말릴 수 없는 부잣집 아가씨는 그날 저녁에 부모님을 졸라서 신인정을 자신의 집에서 살게 만들었다. 그것도 부족해서 대학까지 보내게 만들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할 시기인 신인정으로선 고마우면서도 자존심이 많은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귀한 외동딸의 부탁을 들어주면서도 부모들은 신인정을 곱게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악한 녀석이 우리 딸을 꼬드겼다'고 보았을지도-  신인정 역시 친구집에 얹혀 사는 처지에서 거기다가 이런저런 눈치를 봐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남의 속을 모르는 신지현은 남친과 데이트중인 신인정에게 심심하다며 함께 하고, 그 과정에서 부잣집 딸인 신지현에게 남자친구가 관심을 기울여도 모르는 무신경함을 자랑한다. 아픈 자신을 위해 일부러 대신 알바를 뛰는 바람에 신지현의 어머니에게 나무람을 듣고, 아낌없이 옷과 장신구를 내주는 그녀 때문에 신인정은 자신이 거지같다는 생각을 들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하루둘씩 모여 오냐! 네가 나처럼 모든 것을 잃은 상태에서도 그렇게 웃고 남에게 자신의 것을 줄 수 있는지, 베풀 수 있는 지 두고보자라며 이런 사건을 애인인 강민호와 공모하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아직 드라마가 끝나지 않은 관계로 더한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대목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신지현의 행동은 일관적이었다. 그녀는 한강에게도 신인정에게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호의를 베풀었다그러나 받아들이는 사람은 전혀 달랐다. 한 사람은 그것을 고맙게 생각했고, 다른 한 사람은 고깝게 생각하고 집안을 망하게 하려 하고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그건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저마다 생각이나 행동이 전부 다 다르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게 된다. 때론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인연이지만, 때론 더할나위 없는 악연이 되기도 한다.

 

-이 부분에선 새삼 드라마 <49>의 소현경 작가를 새삼 다시 보게 된다. 그의 뛰어난 인간에 대한 관찰력과 묘사력에 새삼 감탄사가 튀어 나온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치자. 대다수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좋은 점들이 보인다. 남을 잘 배려한다든지, 돈을 잘 쓴다던지, 꼼꼼하게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써준다던지 등등. 그러한 면들을 보면서 우린 정말 이 사람이랑 알게 되어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점점 그 사람의 단점들이 보인다. 대다수는 사소한 것들이다. 너무 꼼꼼한 나머지 큰 것을 보지 못하거나, 호탕한 인물인줄 알았더니 남을 이용하려 한다던지, 약속시간에 아무런 말없이 늦게 나오거나 등등.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가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면 어느샌가 고민하게 된다. ‘계속 이 사람을 만나야 하는가?’하고 말이다.

 

만약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면 적당히 핑계를 대고 멀리하면 그만이지만, 그 사람의 나의 직장상사나 거래처 혹은 애인이나 친구 등이라면 참으로 난감해진다. 딱히 자연스럽게 멀어질 방법도 마땅치 않고 그 사람이 필요하거나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마주 대해야 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동안 그 사람의 장점만을 보고 싶어하는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어제까진 듣기 좋았던 애인의 전화통화가 어느 순간부턴 귀찮은 전화가 된처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도입부에 언급했지만 우린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행동도 다르다. 가치관 역시 다르다. 예를 들어 나는 시간약속을 칼 같이 지키지만, 그 사람은 적당한 선에서 늦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나와 남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제일 간단하다. 근데 이게 말이 쉽지, 정말 어렵다. 왜냐하면 우린 지극히 자신 밖에 모르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자신만의 시각과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온 것처럼 ' 내눈의 들보는 못보면서 남의 티끌은 너무나 잘 보인다'-

 

그 사람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시간약속이 나에겐 나의 시간은 소중하다. 남의 시간 역시 소중하다. 따라서 약속시간엔 늦으면 안된다라는 삼단논법으로 정의되어 그것이  말그대로 정의라고 믿기 때문이다. 첫 번째 방법이 어렵다면 서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하는 데는 대화만큼 좋은 것이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화'역시 완벽한 방법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화로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다. 잘 표현하는 이라도 해도 기껏해야 80%를 넘기기 어렵다. 게다가 내가 한 이야기를 상대방이 이해하는 것 역시 잘해봐야 80% 정도다. 평균은 그보다 훨씬 떨어진다. 우린 분명 같은 국어사전의 낱말을 말하고 있는데, 서로 다른 식으로 이해하는 일이 숱하게 발생한다.  따라서 나와 상대방의 거리는 아무리 가까워도 '안드로메다' 만큼의 거리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포기해선 안된다! 우린 그렇기에 더더욱 남을 이해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남녀관계도 마찬가지지만, 친한 사이일수록 허심탄회하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간의 거리를 줄이는 노력이 무척 중요하다. 나는 사소하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남에겐 정말 중요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다른 이에게 상처주는 일은 하고 있지 않은지, 오해받을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우리중 누구도 완벽하진 못하니까-

 

그러나 이렇게 터놓고 대화를 하면서도 안되겠다라고 생각이 들면, 나는 차라리 그 관계를 청산하기를 권하는 편이다. 자신이 용납하지 못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상대방이 거듭 반복하면, 대인배가 아니라면 참는 데 한도가 있다. -아니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도 그건 불가능하다- 언젠가는 성난 활화산처럼 폭발해서 더욱 그 사람과 안 좋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참으로 어렵다. 좋은 뜻으로 만났다가 악연으로 변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골짜기에 초막을 짓고 혼자 살지 않는 이상, 우린 남과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어떻게 하면 다른 이와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갈지는 우리의 영원한 숙제가 되어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도 인연이고, 가장 끔찍한 것도 인연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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