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제대로 알고 비판하자!

1994년 삼성전자엔 제대로 된 설계도가 없었다?

朱雀 2011. 7. 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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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퀀텀점프(Quantum Jump)’는 물리학 용어로, 원자에 에너지를 가하면 핵주위를 도는 전자가 낮은 궤도서 높은 궤도로 에너지 준위가 계단을 오르듯 불연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경제학에선 단시간에 비약적으로 성장했다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개인적으론 왜 비약적 발전 같은 쉽고 좋은 말을 놔두고, 퀀텀점프라는 말을 쓰는지는 모르겠다. 좀 더 있어보여서 그러나? 아님 비약적 발전을 다른 개념으로 보기 위해서? 필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듣기만 머리가 아픈 퀀텀점프란 전문용어를 쓰는 이유는 1997년 이후 삼성전자가 많은 학자와 경제서에서 퀀텀점프를 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요시카와 료죠는 프로세스 이노베이션을 꼽는다. 그가 1994년 삼성전자에 왔을 때만 해도, 삼성전자에는 제대로 된 제품 설계서가 없었다. 아마 대다수 이들은 이 대목에서 ?’이라고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을 것이다.

 

지금 들으면 믿기지 않는 일이고, 당장 이런 질문부터 나올 것이다. ‘그럼 제품 생산은 어떻게 가능했는데?’라고. 요시카와 료죠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는다. ‘일본 제품을 보고 그냥 모방했거든’. 당시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국내 많은 기업들은 제대로 된 설계도 없이도 제품 생산이 가능했다. 일본 제품을 눈앞에 놓고 베끼기만 하면 됐으니 말이다.

 

요시카와 료죠는 그런 개발-생산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CAD/CAM 시스템을 도입하고, 96PDM(Product Data Management)을 도입했다. 삼성에선 S를 덧붙여서 SPDM이라고 하는데, 이전까지 작업장에서 주먹구구식으로 했던 모든 공정을 전산화-일원화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편리한 것이 디자인팀-생산팀-마케팅팀 들이 각각 제품의 생산과정이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개인 컴퓨터를 이용해서 접속해서 상황을 체크하면 되기 때문에, 효율성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또한 각 단계마다 리뷰가 가능하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면 바로 포기하고 다른 사업을 전개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당시만 해도 획기적이었다. 일본은 당시 오랫동안 호황기를 구가하다가 잃어버린 10에 들어간 시기였다. 반면 삼성전자는 일본 따라하기를 그만두고 독자적인 길을 모색했고, 마침내 일본을 뛰어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요시카와 료죠는 일본과 삼성의 방식에 대해 각각 꼬치구이 방식사시미 방식이란 재밌는 비유를 써서 설명한다. 먼저 꼬치구이 방식인 일본의 아날로그 제조방식을 보자.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은 종이도면에 2차원으로 그리고, 기획부터 생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전 단계가 끝나기 전까지는 후속 단계가 진행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상품기획 -> 디자인 -> 기능설계 ->구조설계 -> 생산준비

 [제조방식]

 

반면 사시미 방식인 디지털 방식은 도면을 비롯한 모든 정보가 디지털화 되어 있기 때문에, 필요하면 누구나 볼 수 있다. 각 공정 역시 앞 단계가 다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고, 기획이 중간에 바뀌어도 그 즉시 디자인을 비롯한 공정을 순식간에 바꿀 수 있다.

 

디지털 방식은 아날로그 방식과 비교해서 엄청난 발전이다! 앞서 포스팅에서도 지적했지만 3차원 설계도가 생산현장에 도입되면, ‘원시인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제품 생산이 가능해진다.

 

아날로그 시절에는 일본 기술자들의 강점이 여지없이 발휘된다. 현장의 노하우와 그들의 꼼꼼함을 국내 기술자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지털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꼼꼼함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약점으로 작용하고, 자부심은 기존의 방식을 고집하는 완고함이 되기 쉽다.

 

반면 삼성전자는 일본의 방식을 고집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런 수혜를 모두 입게 된다. 3차원 설계도로 인해 공정의 일원화와 불량률이 현저히 감소한다. 디자인팀을 비롯한 각 부서는 PDM에 접속해서, 현재 진행상황을 체크하고 자신들이 해야할 일을 알아서 수행하게 된다.

 

디지털 제조방식은 오늘날처럼 본사와 해외공장이 나누어져 있어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돌아갈 수 있다-하드웨어 제조 경험이 별로 없는 애플이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부품을 수급해서 중국 폭스콘 공장에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조립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삼성이 디지털 제조방식을 정착시키기까진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다. 요시카와 료죠가 지적했듯이 사무실의 근로자들은 현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아직 일원화되기 전의 현장에선 각 공정에 대해 각기 편한 용어로 불렀다. 따라서 사무실 근로자들이 용어를 수집하고 파악하고 그걸 표준화된 공정으로 바꾸는 일은 상당한 시일과 노력을 요구했다.

 

2년 정도 시일이 지나 98년 디지털 제조방식이 뿌리를 내린 것은 어찌보면 상당히 빠른 시간 내에 자리 잡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다음엔 3PI의 마지막인 제품 이노베이션에 대해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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