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이동욱의 미친 존재감, ‘여인의 향기’

朱雀 2011. 8. 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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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여인의 향기>를 보면서, ‘이동욱이란 인물에 대해 별다른 기대가 없었다. 군제대 이후 첫 작품이란 탓도 있었지만, <여인의 향기>에서 그가 맡은 캐릭터가 인간냄새를 잘 풍기지 못한 탓이었다.

 

물론 여기엔 상당 부분 제작진의 책임도 있다. 이전까진 삶에 대해 별다른 애정도 관심도 없던 사람이 우연히 오끼나와에 갔다가 30대 노처녀 이연재(김선아)를 보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느낀다니...너무 작위적이고, 게다가 당시 오끼나와 에피소드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여인의 향기>의 이끌어가는 8할의 힘은 김선아로부터 나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별 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극이 점점 진행되면서, 이동욱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동욱이 연기하는 강지욱이란 인물은 라인투어의 본부장으로 삶에 대해 재미도 열정도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회장인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을 봤을 때는, 뭔가 삶에 곡절이 분명히 있는 인물이었다.

 

처음에 무신경한 그의 태도는 왠지 성의 없는 연기처럼 보였다. 노처녀 이연재를 만나 조금씩 가슴 뛰는 삶을 살기 시작하는 그의 모습은 서서히 설득력을 갖다가 9-10화에서 폭발했다.

 

예를 들어보겠다! 9화에서 강지욱의 아버지는 그만 이연재와 헤어지고, 파혼한 임세경(서효림)-서진그룹의 막내딸-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라고 주문했다. 서진그룹 회장이 라인투어를 일부러 궁지에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그때 강지욱이 그토록 아버지를 원망하던 이유가 밝혀졌다.

 

 

 

강철만: 대체 왜 그러는 거야?

강지욱: 아버지 뜻대로 사는 것 더 이상 못하겠어요. 아니 안할 겁니다.

강철만: 아니 그래서, 이 애비가 20년동안 피땀흘려 이룩해 놓은 회사 너 말아먹겠다는 거야? 이 애비가 그 회사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너 알아?

강지욱: 그걸 왜 모르겠어요? 그러느라 엄마랑 저 버려두셨잖아요. 회사일에 미쳐서 엄마가 돌아가신 것도 모르셨잖아요. . 그때 고작 12살이었어요. 혼자 장례식장 지키면서 얼마나 무서웠는줄 아세요. 그렇게 가족들 다 내팽겨치고 이룩한 회사라는 거 어떻게 모를 수 있겠어요?

강철만: 너 그래서 이 애비가 원망스러워서 회사 망하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거냐?

강지욱: 왜 이렇게 변하셨어요? 서진그룹하고 상관없이 아버지. 회사 잘 이끌어 오셨잖아요?

강철만 그때랑 지금이랑 상황이 다르잖아. 너 임회장이 어떤 사람인 지 몰라서 그래?

강지욱: 임회장님이 어떤 사람인줄 몰라도 아버지는 어떤 사람인 줄 알아요. 한평짜리 사무실에서 여직원하나 놓고 대한민국 최고로 키워놨다 늘 자랑하셨어요. 그랬던 아버지가 왜 임회장 아니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생각하시는데요? 임회장님 때문에 회사 망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제발 저 좀 내버려두세요.


 

 

조금 길지만 대사를 그대로 옮긴 것은 이 장면이 강지욱이란 인물을 설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배우는 대본을 보기 전까지는 그 인물에 대해 아는 바가 적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극중 인물의 삶을 겪었을 리가 없다. 그것은 온전히 배우의 상상력으로 머릿속에 그려지고 몸으로 채화된다.

 

시청자가 배우의 연기를 보고 마음이 움직이려면, 배우 자신이 철저하게 그 캐릭터에 몰입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그런 면에서 이동욱은 9화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 왜 그가 그토록 아버지를 미워하고, 재벌 2세로서의 삶에 냉소적이었는지 이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다. 우린 그의 대사를 통해 그가 아버지에게 느끼는 배신감과 분노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회환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10화에서 이연재가 수소문 끝에 어머니와 함께 10살때쯤 묻어놓은 편지와 보물을 발견하면서 울부짖는 그의 모습은 온전히 죽은 어머니를 뼈에 사무치게 그리워 하는 상처투성이 남자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많은 여성 시청자들은 극중 이연재처럼 울부짖는 그를 끌어앉고 토닥이며 위로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은 단순히 불쌍한 남자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여인의 향기> 같은 드라마가 히트를 치기 위해서는 '백마탄 왕자'인 강지욱 본부장이 인간미와 더불어 로맨틱한 부분과 경제적인 능력까지 함께 나와줘야 한다. 한마디로 재력과 능력과 인간미를 두루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선물이 있다면서 '나요!'라고 애교 떠는 사랑스러운 이 남자를 과연 어떤 여자가 거부할 수 있을까?


강지욱은 자신이 임세경과 파혼한 일로 임회장이 압박을 주어 라인투어 사원들이 밤새 예약 취소 전화에 시달리게 되자, 자신의 카드를 내놓으며 직원들의 식사를 챙길 정도로 자상한 인물이자, 본부장 신분으로 기꺼이 허드렛일을 맡을 정도로 성실했다.

 

그뿐인가? 이연재와의 로맨틱한 데이트를 위해 일부러 그녀의 옷에 아이스크림을 묻혀 멋진 드레스를 사주고, 일부러 꽃바구니를 떨어뜨려 백송이도 넘는 장미를 사주고, 한강변에서 오직 그녀만을 위한 불꽃놀이를 벌일 정도로 멋지기 그지 없는 남자였다.

 

따라서 잘생긴 외모에 상처 입은 과거와 재력 그리고 여자를 배려할 줄 아는 로맨틱한 면까지 두루 두루 갖춘 강지욱을 여성 시청자들이 외면하기란 불가능한 일일 것 같다. 특히 현실성 없는 캐릭터인 강지욱이란 인물을 마치 현실에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내는 이동욱의 진정성 있는 연기는 여성의 심금을 울리는 매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연재의 시한부 인생을 알게 된 강지욱은 어머니에 이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인을 또다시 떠나보게 될 가혹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과연 이동욱이 그런 강지욱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낼지 너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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