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애니메이션 기행

미야자키 하야오를 이을 명감독의 탄생, ‘별을 쫓는 아이’

朱雀 2011. 9. 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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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그 단 한줄로도 나의 가슴은 방망이질쳤다! 물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모르는 이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는 원래 잘 나가는 게임회사의 디자이너였다. 그러다가 돌연 그런 직장을 때려치고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겠다고 나섰다. 우리로 비유하자면 삼성 같은 대기업에 잘 다니던 인물이 중소기업을 창업하겠다고 나선 것이나 다름없다!


  -스포일러를 일정 부분 함유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일본에서 게임회사는 나날이 잘 나가고 있지만
, 반대로 애니메이션 산업은 데즈카 오사무가 50년 전에 만든 시스템에서 한발자국도 못 나가고 있다. 극장판 애니메이션 역시 몇몇 작품을 빼놓고는 적자를 못 면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유능한 인재가 모이질 않고, 애니메이션을 이끌 감독이 탄생하지 못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아직까지 현업에서 은퇴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은퇴하면 당장 지브리 스튜디오는 누구의 작품을 내놓는단 말인가? 일본 애니메이션 전체로 넘어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안노 감독 이후 아직까지 그의 명성을 뛰어넘기는커녕 비슷한 갈채조차 받은 감독이 탄생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겨우 5분 남짓한 상영시간이지만, 섬세한 묘사는 관객을 열광시키에
충분했다! 참고로 흑백작품이다. ^^


물론 신카이 마코토는 유능한 감독이긴 했다. 그의 1999년 작품인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도 그렇고 2002년작인 <별의 목소리>를 일본에서 직접 공수한 DVD를 사서 감상하고는 놀라운 충격에 빠졌다.

 



<별의 목소리> 이 단 한편으로 신카이 마코토는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2002년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그는 거의 혼자의 힘(1인 제작 시스템)으로 <별의 목소리>를 완성시켰다. 불과 30분에도 못 미치는 이 작품은 어찌보면 촌스러운 요소로 가득 차 있었다. 메카닉과 알 수 없는 외계인의 침략 등등. 근데 여기에 새로운 요소가 첨가된다. 바로 여주인공 미카코가 국제연합군에 뽑혀서 우주로 나가고, 남주인공인 노보루는 지구에서 그녀의 전자메일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남자주인공이 전장에 나가고, 여자가 기다리던 관성을 조금 어긋난 것으로도 작품은 묘한 울림을 갖게 된다. 겨우 25분에 이르는 런닝타임이지만, 점점 멀어져가는 두 연인의 물리적 거리만큼 서로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사이는 묘한 슬픔을 안겨준다.

 

<별의 목소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재능을 일본을 넘어 전 세계에 알리게 한다. DVD는 단숨에 몇 만장이 팔리며 그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주었다. 신카이 마코토는 사양길에 접어든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단연 화제의 인물로 우뚝 섰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 역시 첫사랑과 SF를 소재로 하는 그의 장기가
고스란히 묻어난 작품




개인적으론 조금 실망했던 <초속 5센티미터>

덕분에 그는 비교적 수월하게 후속작인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2004), <초속 5센티미터>(2007)을 완성시켰다. 확실히 자본이 더 들어가고 3년 정도의 제작기간은 작품의 높은 퀄리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신카이 마코토는 <초속 5센티미터>까지 거장의 느낌을 주진 못했다. 그저 애니메이션에 재능을 보이는 인물이랄까? 그런데 <별을 쫓는 아이>에선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단조롭고 외롭던 아스나의 삶은 신비로운 소년 슌을 만나고는 완전히 바뀐다. 그러나...


재능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제 미야자키 하야오와 필적할 만한 내공을 보여주었다. 사실 <별을 쫓는 아이>의 내러티브는 진부하기 짝이 없고, 만듬새 역시 허술한 구석이 꽤 있다. 이야기전개를 중요시여기는 내 눈에 보면 거의 2시간에 이르는 상영분 가운데 절반 정도를 잘라내면 훨씬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게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그런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별을 쫓는 아이>은 볼만한 작품, 아니 반드시 감상해야될 작품이다. 많은 이들은 <별을 쫓는 아이>을 단순히 신화의 현대적인 재해석정도로 치부한다.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이 작품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만의 '신화 재창조'라고 주장한다. 먼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떠올려 보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서 신화를 차용한 흔적은 여기저기 보인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등등. 그렇지만 이런 작품은 단순히 신화의 재해석 운운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전까지 존재했던 신화적 요소를 차용해서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우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나왔단 나우시카를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으며, <천공의 성 라퓨타>가 조나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영향을 받은 사실을 잘 알지만, 그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만의 작품이라 여긴다.

 

마찬가지다! 물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아직까지 신인이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만큼 자신의 이름값을 키우지 못했다. 따라서 부당하다고 여겨지지만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될 몫이기도 할 것이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서, <별을 쫓는 아이>는 그가 초기작부터 꾸준히 이어온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 정확히는 두 연인의 관계라고 해야할 것이다. <별의 목소리>에선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두 남녀가 애절한 사랑이야기였다면,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첫 사랑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두 남자의 이야기였고, <초속 5센티미터>는 현실의 사랑을 그려냈다.

 

근데 <별을 쫓는 아이>는 그가 꾸준히 이어온 소재이자 주제이면서, 동시에 변화를 가져온다. 바로 죽은 자를 사랑한 산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주인공 아스나는 어린시절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슌'이란 신비한 소년에게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10년전에 죽은 아내 리사를 살리기 위해, 아가르타에 잡입하는 사내. 그의 여행은 애초에
비극적인 결말을 예고하고 있었다. 인간에겐 결코 허락되지 않는 금단의 영역이기에.




반면, 그녀를 돌보는 역할 중에 한명인 모리사키는 10년 전에 죽은 아내를 살리기 위해 지하세계인 아가르타에 들어가 생사의 문에서 부활시키고자 한다. <별을 쫓는 아이>는 조금만 키웠다면 얼마던지 대작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신의 지혜가 아직 남아있는 지하세계의 비밀을 아는 아크엔젤이란 조직이 등장했다면, 그 스케일은 무척 커졌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철저하게 소품으로만 취급한다. 아크엔젤은 군대와 정보를 통제할 정도의 조직이지만, 모리사키의 배신조차 예상하지 못하고, 끝내 배신당하고 마는 조직으로만 묘사될 뿐이다.

 



슌의 쌍동이 동생인 신. 아가르타의 수호자 중에 한명인 그는 아스나와 함께 끝까지 여행하게
되는 인물이다.



아가르타의 수호자(?)인 신은 죽은 형에 대한 그리움과 아스나에 대한 사랑을 동시에 지닌 소년으로 그려진다. 이 세 사람이 그려내는 드라마는 뭔가 어설픈 느낌을 자주 받는다.

 

그건 모리사키는 10년 동안 이용한 아크엔젤의 일원이면서도 아스나를 비롯한 인물들에게 따뜻한 정을 보내며 거의 함께 여행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은 뭔가 한 칼있으마를 할 것 같았지만 의외의 연약함(?) 때문에 그 매력은 완벽칠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을 쫓는 아이>는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코드와 매력이 여실하다. 첫 등장부터 아스나는 철도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의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실록으로 뒤덮인 시골 마을의 풍경과 헤아릴 수 없는 별밤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튀어나온 듯한 생물과 지하세계의 모습은 우릴 판타지의 세계로 몰입하게 만든다.

 



지상인을 혐오하며 없애려 하는 이족. 아가르타에 사는 이족은 분명 혐오스러운 종족이지만
기나긴 황혼에 접어든 아가르타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동안 단순히 연애에만 머물렀던 감독의 이야기는 이제 신화를 향해 있다. 게다가 죽은 자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다시금 부활시킨다는 이야기는 현실성이 전혀 없음에도 등장인물들이 가지는 사무치는 그리움이 현실의 우리들과 공명을 일으키며 묘한 슬픔과 공감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필자가 <별을 쫓는 아이>를 보면서 가장 마음에 든 점 중에 하나는 일본 애니 특유의 포장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본 애니메이션은 괜시리 어깨에 힘을 주고 인상을 팍 쓰며 있지도 않는 철학을 묘사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저 멋있게’ ‘폼나게하려고 차용했을 뿐이다.

 

반면 <별을 쫓는 아이>에서 등장하는 신화는 비록 형이상학적인 영역에 존재하지만, 죽은 아버지와 연인을 영원히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심정에서는 이해가 가면서, 또한 비극적인 종말이 그 끝에 기다림에도 계속해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여정인 것이다.

 

즉 등장인물의 이야기처럼 누구나 바라는 구원을 위해 시작한 여행이므로 그 어리석음을 누구도 탓할 수 없게끔 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별을 쫓는 아이>의 엔딩은 결코 완벽한 해피엔딩일 수 없다.

 



아가르타의 신. 결말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끝은 공감할 수 밖에 없으며, <별을 쫓는 아이>의 작품성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든다. <별을 쫓는 아이>에 등장하는 아가르타의 풍경은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처럼 농촌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그들의 복색과 기호 등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컴퓨터 그래픽이란 최신식 기법으로 제작되었음에도 <별을 쫓는 아이>는 그 이야기적 특징 때문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심하게 느끼게 한다. 초반에 언급했지만 <별을 쫓는 아이>는 만듬새에 문제도 있고,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분명히 한계가 보인다.

 

단편에서 재능을 보이고, 한동안 한시간 정도의 시간내에서 이야기를 풀어낸 탓인지 상영시간이 두 시간이 되어버리자 뭔가 숭숭 구멍이 난 자루처럼, 엉성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을 쫓는 아이>는 분명히 매력적이며, 꼭 봐야될 작품이라고 감히 추천한다. 왜냐하면 이제 일본 애니메이션계는 진정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후계자라고 할만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기념비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신화를 논할 정도로 형이상학적인 접근에 접어들었지만, 공허한 말장난이 아니라 우리가 평상시 그리고 평생 느껴야할 고독과 슬픔 그리고 그리움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적 향수와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영상과 메시지는 이야기전개를 비롯한
몇가지 치명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깊은 울림을 남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 보인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면, 그는 다음작품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못지 않은 명감독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또한 그 속에 녹아든 도시인이 느끼는 뼈에 사뭇치는 고독과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이기심 등은 충분히 커다란 공명을 느끼게 할 것이다. 한마디로 이건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만듬새 역시 어설프긴 하나 이미 거장에 들어선 감독의 풍취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이제 즐겁게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련다.

 

그가 만약 여기서 조금만 더 발전한다면, 미야자키 하야오를 대신할 만한 거목이 될 것이며,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의 고집과 장인정신을 봤을 때는 최소한 지금만큼의 완성도는 유지할 것이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지금정도만 유지해준데도 적어도 필자는 불만족이 없다.

 

한땐 DVD로나 감상하며 만족해야 되었던 그의 작품은 편안하게 근처 극장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묘한 기쁨이 샘솟쳐 난다. 필자에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그런 인물이 되어버렸다. 이름 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추신: 판타지를 강조하고 싶은 탓인지 아니면 흥행성 탓인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뒤를 잇는다고 카피를 적었던데 비교의 대상이 틀렸다고 본다. 이 작품의 정당한 평가를 위해서는 <원령공주>와 비교해야만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펄떡펄떡 뛰는 생명력이 넘치는 그야말로 에너지가 넘쳤던 <원령공주>만이- <별을 쫓는 아이>에 대해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본다. ‘살아라라고 요구하는 등장인물들의 대사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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