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독서의 즐거움

닥치고 읽어야할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

朱雀 2011. 11.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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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딴지일보의 김어준 총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객관적인 이유 따윈 없다. 그냥 주는 거 없이 밉고 싫었다. 예전에 <한겨레>를 읽다가 그가 말하는 폼을 보면 아는 거 없이 왠지 잘난척 하는 것 같고, 그래서 더더욱 싫었다.

 

그래서 처음에 <나꼼수>도 일부러 듣지 않았다. 근데 이젠 듣지 않으면 대화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서 어쩔 수 없이 반 강제적으로 듣게 되었다. 처음엔 2시간이 넘는 시간 때문에, ‘너무 길어’라고 했는데, 지금은 방송을 기다리는 열혈마니아가 되었다.

 

근데 방송 들어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닥치고 정치>를 비롯해서 4인방의 책선전이 얼마나 나오는가? 근데 내가 <닥치고 정치>를 사서 읽게 된 것은 전적으로 도올 김용옥 교수 때문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중용> 강의가 EBS에 의해 강제하차 통보를 당하자, 화가 나셔서 광화문 1인 시위도 하시고, <나꼼수>에 출연했다.

 

이분께서 말씀하시길 “<닥치고 정치>를 읽었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많더라. 나에겐 칸트 철학서를 읽는 게 더 쉽다”라는 식의 말씀을 하셨다. 처음에 그 방송 멘트를 들으면서 속으로 ‘선생님. 왜 그러세요? 당대 최고의 지식인지아 철학자인 선생님께서 겨우 김어준의 책을 이해하지 못하시다뇨? 겸손이 지나치십니다’라고 생각했다.

 

근데 막상 <닥치고 정치>를 펴들자, 도올 김용옥 교수의 이야기가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거 정말 만만히 볼 책이 아니다. 320페이지가 넘는 책은 크기도 크고 문장 사이가 넓게 퍼져 있어서 읽기에 편하다. 이런 식으로 구성된 책은 평균 2~3시간이면 다 읽는 편이다. 그러나 필자가 다 읽기까진 평소에 비해 3배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왜? 어려우니까.

 

그렇다고 이 책이 특별히 전문용어를 많이 쓰거나 일부러 어렵게 쓴 책은 아니다. 김어준의 말을 빌리자면 ‘폼 잡는 이론이나 용어 빌리지 않고, 일상의 언어로 정치를 이야기해보자’고 애썼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무학의 통찰’이란 말을 운운하는데, 이거 그냥 포장이거나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딴지일보>의 종신총수인 김어준은 그런 통찰력을 보여준다.

 

우선 그가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기준을 보자. 그가 좌우를 나누는 방법은, 우는 공포에 기초하고, 좌는 염치에 기초를 둔다고 본다. 하여 우는 자신이 보다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다른 이에게 나눠주는 것을 매우 아까워 한다. 자본주의가 승자독식주의가 되고,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가진 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무능하다’고 질책하는 이유가 여기서 비롯된다.

 

반면 좌는 염치를 안다. 그리고 공포를 인정한다. 대신 공포에 대항하기 위해 돈을 비롯한 권력과 재물을 혼자서 갖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개개인이 나눠서 서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이 얼마나 명쾌하고 멋진 설명인가?

 

<닥치고 정치>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애초에 선언한 대로 어려운 전문용어나 이론을 전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김어준의 말대로 자신의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한 부분은 적지 않다. 그러나 말그대로 이건 교양서가 아닌가?

 

게다가 <닥치고 정치>는 오늘날 한국의 보수와 진보를 평가하고,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손학규, 문재인, 조국, 유시민, 심상정, 노회찬, 이정희 등의 인물에 대한 평가론도 함께 한다.

 

<닥치고 정치>를 만약 90% 이상 이해하는 분이 있다면, 나는 그분께 무릎꿇고 가르침을 청하고 싶을 정도다. 그만큼 내용이 쉽지 않다. 물론 김어준 총수의 화법은 엽기발랄하다. 흔히 그가 쓰는 ‘졸라’ ‘씨발’ 등의 단어는 마치 요즘 노래가서의 의미없는 어조사나 감탄사처럼 운율을 맞춰 재밌게 읽게 해준다.

 

그리고 거침없는 직설적인 화법은 읽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이명박 대통령, 즉 가카의 BBK 사건이나 내곡동 땅 문제 등은, 가카의 넘치는 땅사랑과 돈사랑에 기인하는 점에 감탄하게 된다.

 

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 관해서는 철학이 없는 정치인이라 단언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서민이 겪는 고통을 거의 겪지 않은 점을 든다. 그녀는 권력자의 딸로 태어나서 권력의 정중앙에 살았다. 취업문제나 결혼문제-이혼-육아 등등 일반적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삶의 문제를 겪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 박정희를 이어 대통령이 되고자 하나, 이는 ‘효도’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식이다.

 

조국 교수가 너무 고색창연한 단어를 쓰지만 진보엔 이만한 인물이 없다거나, 문재인을 대권후보를 적극 밀겠지만, 그는 보통의 인간의 셈법이 달라, 자기자신마저 옳은 일을 위해 도구화 시킨다는 식의 어법은 그의 통찰력에 대해 많은 인상을 준다.

 

그럼 그의 그런 통찰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정치를 이해하려면 결국 인간을 이해해야하고 인간을 이해하려면 단일 학문으로는 안 된다. 인간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팩트와 가치와 논리와 감성과 무의식과 맥락과 그가 속한 상황과 그 상황을 지배하는 프레임과 그로 인한 이해득실과 그 이해득실에 따른 공포와 욕망, 그 모두를 동시에 같은 크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섭해야 한다. 나는 통섭한다” P.292

 

분명 잘난 척을 제대로 하고 있지만, 그는 통찰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른바 지식이나 진보쪽 인사들은 흔히들 어려운 용어를 줄줄 꿰고 라캉이니 마르크스니 해서 지식을 앞세운다. 그러나 사실 인간은 따지고보면 세끼 밥 먹고 밤이면 자야하는 동물이다. 사실 고상하거나 엄청난 이유보다 돈이나 권력 그리고 공포 같은 단순한 이유 때문에 권력의지를 불태우는 경우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닥치고 정치>는 김어준 총수의 화법의 정점을 보여준다고 여겨진다. 이 한권의 책은 단순히 책으로 끝낼 수 없는 것이 우리 시대의 정치에 대한 높은 수준의 집결체이기 때문이다. ‘정치입문서’라거나 ‘전국민 필수교양도서’라는 말은 그저 책을 많이 팔거나, 괜히 하는 수준의 말이 아니다! 정말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읽어야할 정도로 중요한 팩트와 가치가 담겨져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닥치고 정치>의 미덕은 ‘쫄지 마! 떠들어도 돼. 씨바’에 있다. 현 정권 집권이후, 인터넷에도 자가검열이 판치게 되었다.  왜? 공포에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의 방식은 밥줄을 끊는 거야. 정치 보복의 금전화, 정치탄압의 생계화, 긴급조치의 민사화가 바로 이명박식이라고. 국민이 직원이고 자기가 CEO니까. 까불어, 그럼 벌금 먹이고 정직시키고 파면시키고 소송 걸고. 이게 본질은 다 돈이고 생활이거든. 한마디로 밥줄공안의 시대가 개막된거지.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이명박의 이념은 돈이니까.  - P.59


그런 시대에 김어준은 <나꼼수>를 통해 신랄하게 정치를 비판하고 풍자하며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화법으로 말하고 있다. <닥치고 정치>는 그것의 연장으로, 그의 화법으로 정치를 쉽지만 중요한 대목은 모두 짚어내는 통찰력과 직관력과 정보력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깨어있고자 한다면 <닥치고 정치>는 제목 그대로 일단 닥치고 읽어야할 서적이다.

 

이 책을 읽지 않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말하거나, 정치를 말한다는 것은 구구단을 못외우고 간단한 사칙연산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미적분을 하겠다는 말처럼 어리석게만 느껴진다. 그만큼의 무게와 가치를 지닌 서적이라 감히 단언한다! 이말에 내 전 재산에 플러스 500원을 더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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