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뿌리깊은 나무’는 왜 실패했는가?

朱雀 2011. 12. 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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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글을 올리는 순간 많은 비판이 쏟아지리라 본다. 개인적으론 <뿌리깊은 나무>에 많은 실망을 하긴 했지만, 한석규의 명품연기를 볼 수 있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마지막회까지 시청할 것이다.

 

또한 썩어도 준치라고 <뿌리깊은 나무>는 평균 이상의 완성도는 보여주고 있긴 하다. 그러나 필자는 10회를 넘어가면서부터 가슴이 설레이지 않게 되었다. <뿌리깊은 나무>를 관성적으로 보고 있긴 하지만, 이전처럼 열렬하게 시청하지 않게 되었다.

 

왜 그런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처음 4화까지 <뿌리깊은 나무>의 완성도는 정말 미친 완성도 그 자체였다! 원작소설에 없는 내용을 만들어냈음에도 오히려 원작보다 밀도 깊고 너무나 몰입감이 뛰어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한짓골 똘복이가 아버지 석삼이 억울하게 죽음으로써 글자 창제에 대한 생각은 젊은 세종과 나인 소이 그리고 강채윤의 이유가 되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집현전 학자들의 의문의 죽음은 원작소설에서 차용했으나, 한글에 대한 미스터리함과 우리가 가진 세종대왕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서 한글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장치가 되었다.

 

강채윤이 세종대왕을 감히 암살하려하고, 소이가 말문이 트이고, 한글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고, 강채윤과 소이가 어렵사리 만나고, 원작에는 없는 무술의 고수등이 등장하며 극의 흥미와 몰입도는 나름 높아졌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뭔가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먼저 묻자! 집현전 학자들의 죽음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들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자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지금 <뿌리깊은 나무>는 표류중이다! 오직 한글을 반포하려는 세종과 그를 막으려 하는 정기준의 말도 안되는 싸움 만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어제 방송분에선 심지어 세종이 이신적을 만나 정기준을 넘기라라는 말까지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

 

! <뿌리깊은 나무>는 애초에 완벽한 고증을 하지 못했다! 유교사상이 지배하는 조선에서 천지계원이 몸에 문신을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한글이 중화사상과 성리학에 어느 정도 반기를 들 수 있으나, 글자가 만들어진다고 노비가 과거에 급제하거나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왜냐하면 결국 조선의 질서를 지배하는 글자는 한자이지 한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글자가 한글이 아니고 영어인 것처럼 말이다! 조선시대의 신분질서를 위해 한자가 긴요한 역할을 했듯이, 오늘날 대한민국은 영어를 통해 신분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 대학생들이 토익점수에 목을 메고, 해외어학연수를 떠나는 이유는 오로지 그것이 대한민국의 신분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이기 때문이다. 거기엔 학문적인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뿌리깊은 나무>의 문제점은 그 길이에 있다! 이 작품은 애초에 24부작으로 제작되었으면 안되는 내용이었다! 원작소설은 불과 며칠 사이에 일어나고 해결된다! 물론 드라마는 초반 4회 분량을 통해 좀 더 오랜 시간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긴 했지만, 미스테리극으로 추리극을 표방한 드라마는 비밀이 다 드러나는 순간 신선도와 재미는 급속도로 떨어지게 된다.

 

이제 밀본은 밀본이 아니다. 세종과 조말생은 이미 심정수와 이신적을 오래전부터 의심해왔다! 시청자들은 모든 사실을 알아도 등장인물끼리는 서로의 정체를모를 때 아슬아슬하고 재미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현재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정체와 목적을 다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아슬아슬함이 있고 숨막힘이 있단 말인가?

 

거지떼를 죽이는 윤평은 이제 미스테리한 살수에서 그저 칼을 함부로 휘두르는 망나니로 떨어졌고, 이제야 다시 모습을 드러난 명나라의 창위는 구색 맞추기라는 생각이 절로 들뿐이다.

 

게다가 밀본이란 조직을 붕당으로 인정하겠다는 세종의 말엔 헛웃음이 나온다. 광평대군을 죽인 조직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왕을 부정하는 조직을 어떻게 받아들인단 말인가? 그건 아무리 세종이 성군이라고 해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좋다! 그건 모두 넘어간다고 치자! 어쩌면 이렇게 무능력하고 힘이 없단 말인가? 세종이라면 밀본이란 조직을 아는 순간, 전국에 영을 내려 얼마든지 비밀본부를 찾아낼 수 있다!

 

지금 드라마처럼 밀본이라 조직이 어디 있는지 세종과 대신들이 모르는 상황은 도저히 말이 되질 않는다. 왜냐하면 비밀을 아는 이가 너무 많고, 그들이 입을 열지 않는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설혹 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움직이는 순간 들어날 수 밖에 없다. 지금처럼 밀본이 세종의 의중을 꿰뚫고 관군보다 먼저 움직이고 더욱 강력한 힘을 쓰는 상황은 누가 비밀조직이고, 누가 관군인지 헷갈릴 정도다!

 

현재 <뿌나>는 말도 안되는 상황연출로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24부작이란 길이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만약 일본이나 미국처럼 일주일에 한편만 방영되고, 12부정도로 깔끔하게 끝날 수 있었다면 <뿌리깊은 나무>의 미친 완성도는 유지될 수 있었고, 미스테리함과 신선도는 유지되었을 것이다.


-만약 12부작 정도였다면 필자는 지금처럼 많은 생각을 하지 정신없이 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길이는 작품의 허점과 다른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든다. 더이상 작위적인 연출로 시청자의 주의가 딴 곳으로 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밑천이 떨어졌기에-

 

그러나 일주일에 두 편씩 방영되어야 하는 여건상, 12부작이면 6주면 끝나는 현실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청률과 광고를 잡아야하는 현실에선 더더욱! 게다가 대본을 미리 써놓을 수 없는 현실과 시간에 쫓겨 거의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편집하는 현 상황에선 더더더욱 말이다. 오히려 지금 같은 완성도와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게 차라리 신기할 따름이다.

 

<뿌리깊은 나무>가 초반과 중반의 완성도와 재미를 주지 못하는 것은 이렇듯 제작진의 탓이라기보단, 우리네 방송시스템의 한계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계속해서 실패를 맛보고 있지만, 선제작시스템의 도입과 1주일에 한편씩 방영하는 방식을 취해보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현재 상황을 벗어나서 좀 더 제작진과 출연진 그리고 시청자가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뿌리깊은 나무>처럼 또 한편의 완성도 높았던 작품이 점점 사그라드는 꼴을 보면서 짚어보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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