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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이야기

놀란 감독의 인문학적 소양이 탄생시킨 ‘다크나이트 라이즈




지상과 지하를 왜 나누었을까?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눈여겨 볼 수 밖에 없는 설정이 있다. 바로 지하세계다! 누구보다 정의감이 넘치는 블레이크는 하수도에서 한 아이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 아이는 봉사활동을 하는 고아원에서 지내던 원생이었다. 그는 16살을 넘겼고, 고아원에서 돌보기에는 이미 나이가 꽉 차버렸다. 즉 그는 이제 고아원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블레이크가 고아원에서 죽은 아이의 동생을 만나서 듣는 이야기는 끔찍하기 짝이 없다. 돈이 필요했던 그 아이는 지하로 내려가서 일을 했고,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으나 그곳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영화에 나오는 지하는 그저 시민들이 살아가는 ‘지상’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를 보자! 블레이크는 운이 좋은 케이스였지만, 고아출신은 사회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기가 어렵다.

 

고아뿐만 인가? 사회적인 약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을 당할 수 밖에 없고, 지상 즉 밝은 세계에서 그들을 외면하면 그들은 선택권을 박탈당한 채 살아가기 위해 지하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밖에 없다.

 

혹자는 그들을 보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범죄에 가담해선 안된다’고. 그러나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다.

 

사흘만 굶으면 사람은 먹기 위해 그 전엔 상상도 하지 못하던 일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상을 대표하는 공권력인 3천명이 경찰들이 어둠의 지하를 소탕하기 위해 내려가는 장면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 지상의 힘이 지하를 능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경찰들은 함정에 빠져 무려 5개월이나 갇혀 지내게 된다. 지상을 대표하는 공권력이 처지가 바뀌어서 지하에 갇혀버리게 된 것이다.

 

오늘날 전세계 지하경제는 전체 경제의 약 2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여기엔 각종 범죄와 비리로 인해 얼룩진 돈들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이 돈들이 만약 양성화되어서 인류를 위해 쓰인다면 아프리카엔 굶는 아이들이 없고, 불황 역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건 미국의 군비가 모두 사라져서 전세계 굶는 아이들을 위해 쓰여진다는 이야기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판타지에 불과하다.





 

베인은 왜 은행이 아니라 증권사를 공격했는가?

 

작품에선 꽤 신선한 장면이 하나 나온다. 히어로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들은 하나같이 은행을 털었다. 이건 거의 ‘불문율에 가깝자, 전통이다! 그런데 베인은 그런 전통을 과감히 깨버렸다.

 

심지어 증권사에 나타난 베인을 보고 한 증권사 직원이 ‘여긴 돈이 없소’라고 말하자, ‘그럼 넌 어떻게 지난번에 내 돈을 날린 거지?’라고 뼈 있는 말을 던진다.

 

이건 누가 봐도 2008년 금융대위기를 비꼰 대목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미국의 금융위기의 원인은 월가의 탐욕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월가는 파생 금융상품을 만들어서 전문가조차 이해할 수 없는 금융제품(?)을 만들어서 모든 이들을 현혹시켜서 고객의 돈을 탕진했다. 그들은 고객의 돈을 가지고 천문학대의 연봉과 보너스로 흥청망청 썼다.

 

따라서 오늘날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 영화에서 베인이 증권사를 공격한 이유는 캣우먼에게서 입수한 브루스 웨인의 엄지손가락 지문을 이용해서, 그의 전 재산을 증권에 쏟아부어 탕진하게 만든 것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서 산출한 바에 따르면 배트맨의 재산은 약 70억 불로 영화 캐릭터 중 8위다. 브루스 웨인의 재산은 단순히 곱하기 1천원을 해도, 7조가 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이 돈으로 짜장면을 먹는다면, 17억5천 그릇을 사먹을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 어마어마한 돈이 몇 시간도 안되어서 사라져버렸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브루스 웨인은 알거지가 되어서 웨인 기업의 이사회에서 쫓겨나고 타고 온 차는 끌려가는 신세에 처한다. 저택이 문이 잠겨서 그렇지, 만약 잠기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에서 그렇듯이 빨간딱지가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 오늘날의 금융이란 주식은 이렇게 무시무시한 것이다! 작품에서 증권사는 은행보다 증권이 얼마나 더 무서운지, 직접적으로 잘 보여주는 장치라 할 것이다.

 

증권사가 악당에게 점령당했는데도, 경찰들이 비아냥거리고, 심지어 ‘내 돈은 침대 밑에 있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2008년 이후 미국인들이 월가를 얼마나 증오하고 있는 지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베인이 말한 혁명과 크레인이 주재하는 말도 안 되는 재판

 

베인은 브루스 웨인이 인류를 위해 자신의 재산의 절반이상을 털어 만든 핵융합 원자로를 시한폭탄으로 만들고, 미국 정부마저 협박하기에 이른다. 배트맨이 사라지고, 대다수의 경찰이 지하에 갇혀버린 고담시는 베인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그러나 다른 악당들과 달리 베인은 자신이 지배자로 군림하지 않고, 모든 시민에게 권한을 위임해 버린다. 그러면서 ‘혁명’을 운운한다. 그 이후 고담시에서 벌어진 상황은 무정부 상태에 가깝다.

 

블랙게이트에서 나온 천여명의 죄수들이 부자들을 공격해서 그들을 대저택에서 쫓아내고, 그들의 것을 자신들의 것으로 삼으며, 부자들을 공개재판에 회부해서 사형과 다름없는 선고를 내린다.

 

스케어크로우이자 크레인은 판사로서 변호사와 검사도 없이 부자들에게 선고를 내린다. 거기엔 추방과 사형 밖에 없다. 그러나 고든 경찰청장이 잡혔을 때 드러나지만, 사실상 추방과 사형은 똑같은 것이었다! 바로 얼어붙은 강위를 걸어가는 것으로, 살얼음판인 그곳에서 모든 이들은 차가운 강물에 빠져 최후를 마칠 수 밖에 없었다.

 

전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부자들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처럼 부자들을 무조건 공격하고 처단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우린 지난 역사를 통해서 분노에 휩싸여서 무조건적으로 부자들을 공격하고 이른바 혁명을 이룩한 경우가 있었다. 구소련과 동유럽, 중국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난 그 때, 수많은 자본가들은 그저 자본가라는 이름으로 ‘인민의 적’이 되어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그러나 모두가 공평한 세상은 모두가 ‘가난한 사회’가 되버렸다.

 

그마저도 고위급 인사들에게 부가 몰리면서, 사회주의 사회에선 자본주의 사회와는 다른 형태로 계급이 형성되고 말았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를 떠올려보자. 당시 역시 귀족과 특권 계층들이 그저 ‘귀족’이란 이유로 길로틴에 올라가는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

 

귀족과 자본가들이 그때그때 정권을 잡을 때마다 그런 참혹한 일은 상대만 바뀌어서 반복되어 일어났다. 프랑스가 안정화된 것은 그런 참혹한 일을 몇 번이나 겪고 나서 ‘사회적인 대타협’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혁명’을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단순히 현 체제에 불만을 가지고 무력에 의존해서 기존 사회를 전복시킨다면 이는 단순한 테러에 불과할 뿐이다.



 

 

무조건 상부의 명령에 따라 다리를 폭파시킨 군인

 

영화의 거의 결말부에 가면 상당히 인상 깊은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블레이크가 배트맨의 부탁에 따라 시민들을 이끌고 하나밖에 남지 않은 다리로 왔는데, 그곳을 지키고 있던 군인이 어찌할바를 모르다가 결국 다리를 끊어버린 장면이다.

 

이 장면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선 블레이크의 답답함이다! 바뀐 상황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필요했는데, 그는 무조건 ‘봉쇄된 다리를 열라’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무모할 정도로 앞으로 나섰다.

 

군인의 처지도 이해된다. 그는 상부의 명령을 받았고, 고담시에서 단 한 명이라도 다리를 통해 밖으로 나가면 핵폭탄을 터트리겠다는 협박을 받은 상황이었다. 따라서 고담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그로선 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리가 끊어지고 블레이크는 외친다. ‘명령도 상황을 보고 따르라’고! 군대는 철저한 상명하복의 체계다. 그러나 그 명령이 불합리한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까? 예를 들어 히틀러 치하의 독일처럼 ‘유태인은 무조건 가스실로 보내라’같은 끔찍한 명령을 내렸을 경우엔?

 

쉽게 답변하기 어려운 문제다. 물론 해답은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재판에선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서 유태인을 학살한 군인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왜? 그들은 정당하지 못한 명령에 복종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명령이 중요한 군대조직이라도 개개인이 자신이 받은 명령이 올바른 것인지 판단하고 따라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민불복종’이란 위대한 단어로 대표할 수 있다! 키케로, 토마스 아퀴나스, 존 로크, 토머스 제퍼슨, 헨리 데이비드 소로 등이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시민불복종은 개인이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잘못된 법률과 사회체계에는 따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악법도 법이다’면서 따른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들면서, 법을 무조건적으로 준수할 것을 운운할지도 모르겠다. 소크라테스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며 그가 죽은 이유는 법을 애초에 준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만약 그 군인이 침착하게 블레이크에게 ‘왜 다리로 시민들을 이끌고 왔는지’ 이유를 묻고, 어차피 몇 십분내로 폭탄이 터지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왔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다리를 열어서 안전하게 피신을 시켰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선 다행히 배트맨이 ‘더 배트’를 이용해서 핵폭탄을 바다위로 가져감으로서 사태를 해결했지만,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단 한명도 고담시로 나가지 못하고 핵폭탄의 재물이 되는 끔찍한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물론 상명하복이 철저한 군대에서 그런 개인의 행복은, 그에겐 불명예제대나 인사적인 불이익이 주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군인이기 앞서서, 시민이다! 시민은 옳고 정당한 일을 하기 위해 그 정도 개인 희생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은 시(市)에 살기 때문에 시민이 아니다! 주체적인 한명의 인간으로서 참정권을 지닌 인간을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상황과 총체적인 상황을 감안해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책임을 질 줄 아는 능동적인 인간이다.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없다면 그는 ‘시민’의 자격이 없다고 할 것이다!

 

이상 간단하게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상징과 비유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10페이지 가까이 써내려 가고도 작품에서 등장한 상징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한 것들이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블록버스터의 외피를 씌운 철학적-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만들어냈다. 이는 그가 평상시 인문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어떻게 영화로 구현할 것인지 치열한 고민 끝에 얻어낸 결과물이라 할 것이다.

 

만약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보고 답답함을 느낀 이들이 있다면, 이 글로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에 낮은 식견을 가진 필자가 몇 자 적어보았다.

 

단순히 물량 공세를 앞세우는 영화들이 난무하는 할리우드에서 이런 작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절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