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독서의 즐거움

이것은 문학이 아니다! ‘붉은 낙엽’

朱雀 2013. 4. 7. 06:00
728x90
반응형


처음 이 책을 접할 때는 그저 추리소설인 줄 알고 읽었다. 한적한 시골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주인공은 자신의 아들이 8살 여자아이의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면서 생애 최고의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단 몇 줄로 요약되는 <붉은 낙엽>의 이야기는 오래전에 많이 본 할리우드 영화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남자의 사투. 나날이 자신의 아들에게 불리한 증언과 증거들이 쏟아져 나오고, 주인공은 자신의 아들에 대한 스스로의 의심과 마을 사람들의 눈초리 속에서 버거워만 하고. ! 정말 기가 막히지 않은가? 딱 어떤 영화를 직접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그런 스토리가 연상되면서, 마지막엔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교훈(?)어린 엔딩을 보여줄 것만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붉은 낙엽>은 절대 그런 소설이 아니다! 물론 소설은 유괴라는 고전적이면서도 전형적인 모티브를 사용했다. 그러나 전개방식은 우리가 생각했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흔히 추리소설에서 볼 수 있는 경찰, FBI요원, 형사의 활약이 거의 없다. 소설은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주인공 에릭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그는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일상의 행복을 영위하는 인물이다.

 

그에겐 끔찍한 기억이 있다! 그의 첫 번째 가족은 끔찍한 파멸을 맞았기 때문이다. 사랑스런 여동생 제니는 뇌종양으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파산했으며, 어머니는 아버지의 냉대와 무시 속에서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서 애쓰다가 역시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산산이 깨져버린 가족에 대한 기억 때문에 주인공은 누구보다 현재 자신이 이룬 가정을 지키고 싶어한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에릭의 아들 키이스는 에이미네 집에 베이버시터로 나갔는데, 하필이면 그 아이가 다음날부터 행방불명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범인에게 전화나 별 다른 연락이 없는 탓에, 경찰은 마지막으로 에이미를 돌본 키이스를 유력한 용의자로 삼아 수사에 집중하고 만다. <붉은 낙엽>는 끔찍하기 짝이 없다!

 

한 가정이 끔찍한 사실 앞에서 얼마나 서서히 파멸하는지 그려내기 때문이다. 에릭은 처음에는 자신의 아들인 키이스를 믿고자 애쓴다. 그러나 아들이 에이미가 사라지던 날 밤, 차를 타고 돌아왔음에도 혼자서 걸어왔다고 말하면서 의심을 품게 된다.

 

그러면서 혹시라는 의심을 품게 된다. <붉은 낙엽>은 일반적인 추리소설과 달리 어떤 범죄트릭이 등장하거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손에 땀을 쥐게하는 숨 가쁜 전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루할 정도로 철저하게 서서히 의심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침몰해가는 주인공 에릭의 심리묘사에 초점을 맞추고, 주변 인물들의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에릭은 그저 착하고 사람과 못 사귀는 줄 알았던 아들 키이스가 사실은 담배도 피고, 욕도 거리낌 없이 한다는 사실을 충격과 더불어 무엇을 믿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이제는 양로원에서 퇴락한 아버지로부터 어머니에 대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되고, 어머니와 아버지, 형 그리고 결국엔 아내까지 모두를 의심하게 되고 만다. 그런 의심은 오해를 부르고 결국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주인공 에릭은 뛰어난 직감과 추리력을 가진 인물이 아니다. 따라서 그가 뜻밖의 단서를 앞에 두고 벌이는 상상은 소설을 읽는 평범한 독자라면 누구라도 머물 수 있는 수준에 머무른다.

 

따라서 <붉은 낙엽>은 의심이 한 사내를 어디까지 망가뜨리는지 보여줌과 동시에 독자들에게 당신 역시 이와 다를 수 있겠는가?’라는 작가의 물음과 맞닥뜨리게 된다. <붉은 낙엽>이란 제목은 아마도 에릭이 낙엽의 반점을 보고 느낀 것 때문에 지은 것 같다. 에릭은 낙엽의 반점을 보고 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의심이란 우리에게 암과 같은 것이 아닐까? 처음에는 작고 무시할 수 있지만, 이윽고 몸집을 키우고 터무니없이 커져서 모든 세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끔찍한 병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들이 모두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린 그를 과연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붉은 낙엽>을 읽는 것은 괴롭다.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번역가도 지적했지만 <붉은 낙엽>의 장르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 같다. 그냥 문학소설로 생각하고 읽어도 무방할 정도다. 처음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을 때, 별 다른 생각 없이 몇줄 읽다가 멈춰섰다. 왜냐하면 단 몇 줄로도 형언할 수 없는 포스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더 후에 좀 더 읽을 시간이 많이 났을 때, 정독을 하기 시작했고 곧 그 노력은 몇 배로 보상받았다. 책 뒷표지에 읽는 찬사를 읽으면 대다수가 과장되기 일쑤다. 그러나 <붉은 낙엽>의 경우에는 그 어떤 찬사도 부족하다. <붉은 낙엽>은 단 한줄도 버릴 문장이 없고, 책장을 덮는 순간 이건 명작이야!’라는 찬사만 나오게 만들 뿐이다. 읽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쉬이 추천은 하지 못하겠다. 당신이 고통을 참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붉은 낙엽>을 추천한다.

 

원래 책에서 구절을 인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워낙 인상 깊은 구절이라 여기 몇 줄 소개한다. 아마 <붉은 낙엽>을 읽는 독자라면 가장 뇌리에 깊숙하게 각인될 구절이 아닐까 싶다.


의심은 산이다. 그게 내가 아는 한 가지다. 산은 물건의 매끄럽게 반짝이는 표면을 먹어치우고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중략) 에어리언이 부식성이 강한 액체를 토하자, 그 액체는 순식간에 우주정거장의 한 층을 먹어 치웠고 차례로 다른 층까지 먹어 들어갔다. 내 생각에 그 액체는 의심과도 같았다. 의심은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고, 오랜 신뢰와 헌신의 수준을 차례차례 부식시키며 더 낮은 수준으로 내려간다. 의심은 언제나 바닥을 향한다.

 

한 줄평: 이 책은 읽는 것은 괴롭다! 그러나 그 만큼의 보상을 주는 명작이다! ★★★★★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