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놀라운 연기, 위대한 연출! ‘아메리칸 허슬’

朱雀 2014. 2. 2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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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라고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아마도 많은 이들이 블럭버스터란 말을 제일 먼저 하지 않을까 싶다. 이름 그대로 엄청난 물량을 동원해서 관람객을 매혹시키는 블럭버스터는 할리우드의 장기 중 하나다! 그러나 너무나 단순한 선악구도와 이분법 그리고 유치한 스토리라인에 종종 콧웃음을 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메리칸 허슬> 같은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역시 꿈의 영화공장 할리우드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배트맨 3부작'으로 익숙한 크리스찬 베일, <맨 오브 스틸>에서 로이스 레인으로 나왔던 에이미 아담스, 이름만으로도 익숙한 할리우드의 핫한 여배우 제니퍼 로렌스 그리고 <어벤져스>에서 호크아이로 열연했던 제이미 러너까지.

 

배우들의 면면만 봐도 화려하기 그지 없는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데이빗 O. 러셀 감독이 메가폰을 쥐었다는 사실까지 이르면 그 기대감은 극도에 이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나 기대감을 낮추는 게 좋다. 만약 요즘 한국영화식 재미(?)에 익숙하다면 더더욱 말이다.

 

<아메리칸 허슬>1970년대 미국에서 일어났던 앱스캠 스캔들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왔다. 그러나 영화는 그 사건에 대해서 몰라도 이해가 매우 쉽다. 영화가 시작되면 우선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다크나이트>에서 근육질의 몸매를 보여줬던 크리스찬 베일이 올챙이배에 속알머리가 없는 대머리로 나오는 장면이다.

 

영화촬영내내 도넛을 입에 물고 지냈다는 크리스찬 베일은 영락없는 사기꾼 어빙으로 관객에 뇌리에 깊숙하게 박힌다. 그의 파트너인 시드니역의 에이미 아담스의 변신도 놀랍긴 마찬가지다. 그녀는 <맨 오브 스틸>때와는 달리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자주 입고 나오며, 관능적이면서 희대의 한 사람의 여자이고 싶어하는 시드니로 완벽하게 분한다.

 

영화는 두 사람이 파티장에서 우연히 만나서 서로 한눈에 반하고 사기꾼 커플로 거듭나서 사기행각을 벌이는 부분을 매우 경쾌한 리듬으로 보여준다. 그러다가 FBI요원 리치가 등장하면서 모든 일은 꼬이기 시작한다. 만약 리치가 어빙과 시드니를 잡아서 감옥으로 보냈다면 매우 간단한 교훈을 남겼을 것이다. 바로 착하게 살자.

 

그런데 리치가 두 사람에게 감옥행 대신 수사에 참여하면 죄를 없애주겠다라고 약속하면서 꼬이기 시작한다. 4명만 잡으면 놔주겠단 리치는 그들의 표적인 시장인 카마인을 통해서 정치인과 마피아까지 가지가 뻗어가자 모두를 잡아들이려고 하면서 어빙은 매우 난감한 처지에 빠지게 된다.

 

<아메리칸 허슬>의 첫번째 특징은 모든 등장인물이 평범하게 그려진다는 부분이다. FBI수사원인 리치는 그저 열정이 넘치는 사원일 뿐이다. 어빙은 삶의 시작 자체가 잘못돼서 사기꾼이 되었고, 작은 사기(?)를 치면서 만족하던 인물이다. 오히려 시장인 카마인이 훨씬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카마인은 시장으로 침체된 시에 일자리를 만들고 시민과 가족들을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인물이다. 그가 검은 돈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개인적인 이익이나 공명심 때문이 아니라 모든 시민을 돕기 위해 공공사업을 위한 자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일이라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그는 자신을 잡기 위해 FBI에 협조하고 있는 어빙을 생전 처음으로 양심의 가책에 느끼게 만드는 인물로 그려진다.

 

물론 카마인은 받아서는 안될 돈을 받으면서 부패한 정치인으로 그려지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역시 그를 단순히 악인으로 단정지을 수 없기 때문에 어빙처럼 불편하게 된다. 이것이 영화의 두번째 특징이다. 어빙의 극중 대사처럼 세상은 회색 투성이다’.

 

일반적이라면 FBI수사원인 리치가 정의의 사도로 그려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공명심에 불타오르는 수사관일 뿐이다. 그는 일을 계획대로 추진하려는 어빙을 몰아부쳐서 일을 자꾸만 키우는 트러블메이커 일뿐이다.

 

그러나 그를 미워할 수 없는 것은 그는 동시에 부패한 정치인을 잡고 싶어하는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이자, 어렵고 힘든 가정에서 자라난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허슬>에서 모든 등장인물은 나름대로 불행하다. 어빙은 사기꾼으로 나름 승승장구했지만 난생 처음 사랑하는 시드니를 만나고도 함께 가정을 꾸릴 수가 없다. 바로 로잘린(제니퍼 로렌스)와 이미 결혼하고 그녀의 아이까지 입양했기 때문이다
 

TV와 잡지의 말을 매우 신봉하고 밖에선 희대의 사기꾼이지만 자신의 맘대로 좌지우지하는 노련한 로잘린의 모습은 미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정부의 모습과 흡사한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제니퍼 로렌스가 어빙에게 이것이 내 죄과인가?’라고 느끼게 만들만큼 트러블을 일으키는 장면에서 관객까지 학을 떼게 만듬으로써 새삼 그녀가 연기파 배우란 사실을 깨닫게 한다.

 

특히 에이미와 로잘린이 화장실에 서로 육두문자를 날리면서 싸우는 장면은 노련한 두 여배우의 화학적 앙상블에 그저 감탄사만이 나올 뿐이다. <아메리칸 허슬>은 보는 내내 다른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긴장감을 선사한다.

 

분명히 스릴러 영화처럼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데도 자꾸만 커져가는 사기판에 이러다 잘못되는 거 아냐?’라는 질문을 관객 스스로 던져서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어빙의 계획이 리치도 부족해서 아내인 로잘린까지 끼어들면서 어그러지고, 정치인도 부족해서 마피아까지 끼어들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더욱 그러하다.

 

<아메리칸 허슬>에서 탐복스러운 부분은 또한 그 지점에 있다. 얼키고 설킨 인간관계를 나름의 방식대로 풀어내는 감독의 연출력은 박수가 절로 나온다. 물론 기존의 할리우드 영화처럼 단순한 해피엔딩이나 권선징악으로 끝내지 않기에 더욱 그러하다.

 

<아메리칸 허슬>은 미국 역사의 치부를 드러냄과 동시에 어느 나라나 자유로울 수 없는 부패를 다룬다. 동시에 사기를 통해 인간 내면을 그려내는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처음에 어빙과 시드니는 왜 사기꾼이 되었는가? 바로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또한 자꾸만 거절할수록 안달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그들의 사기술은 단순히 영화속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러하기에 나는 어떠한가?’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애초에 선한 인간은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가 일생일대의 순간에서 한번의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우린 걷잡을 수 없는 나락에 떨어질 때, 그는 모든 이들에게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것일까?

 

인간관계에 믿음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등등. 영화는 우리 삶의 문제부터 자본주의 병폐와 현재 사회의 부조리까지 모조리 그려낸다. 다만 <아메리칸 허슬>의 단점은 워낙에 미국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인인 우리 관객이 이해하는덴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우리와 다른 그들의 정서에 때론 생경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점이 또한 문화를 보면서 즐거운 점 중에 하나가 아니겠는가? 바로 우리와 다른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게 된다는 점 말이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케 하는 엔딩신에 이르면 왜 이 작품이 2014년 아카데미상에 무려 10개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140분 동안 명배우들의 훌륭한 열연과 귀에 익숙한 팝송과 예측할 수 없는 캐릭터 만큼이나 럭비공처럼 튀는 스토리 전개는 <아메리칸 허슬>의 매력이자 장점이다.

 

다만 관객 스스로 고민하면서 봐야되야 하는 <아메리칸 허슬>의 특징은 아무 생각없이 즐기기 위해 만약 극장을 찾았던 관객에겐 난감함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영화를 좀 보는 당신이라면 <아메리칸 허슬>은 놓쳐서는 안될 작품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그만큼의 할리우드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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