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너희가 잉여를 아느냐? ‘잉여공주’

朱雀 2014. 9. 2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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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잉여공주를 보면서 그저 가벼운 판타지물로 생각했다. 인어공주가 한강에서 한 남자를 보고 사랑에 빠져서 마법으로 사람이 되어 100일동안 진정한 사랑을 얻는다니. 너무 유치하지 않은가?

 

 

물론 <잉여공주>는 유치하다. 잉여하우스에서 복작복작하게 살아가는 그들은 얼핏 보면 현실에서 두둥실 떠있는 것 같다. 말로는 취업을 노래 부르지만, JH푸드에 정말 갈 마음은 있는 건지.

 

 

매일 자소설을 쓰고, 툭탁툭탁 싸우는 그들을 보면 그러했다. 그러나 <잉여공주>는 시청할수록 단순히 안데르센의 동화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했다고 하기 어려워진다. 우리에겐 ‘SNL코리아에서 익숙한 김민교는 여기선 사법고시 준비생인 도지용으로 나온다.

 

 

 

 

 

 

그는 S대 법대 출신이다. 그러나 그럼 뭘하는가? 그는 10년째 고시만 준비하다가 나이만 먹었다. 그가 가장 잘 하는 것은 게임 뿐이다. 그가 5화 말미에서 울음을 터트리면서 스스로를 잉여라고 탓하는 장면은 정말 눈물겹다.

 

 

게다가 셰어하우스 잉여하우스에 사는 이들을 보자! 안혜영을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은 사실상 백수다! 그렇다고 그들이 백수가 되고 싶어서 백수가 된 게 아니다! 이현명, 도지용, 빅은 하루 종일 자소서를 쓰고 여기저기 회사에 입사원서를 보내고 결과를 기다린다.

 

 

그들의 하루일과는 인터넷에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지원서를 보내고 결과를 기다리다가 시간만 보내는 셈이다. 이런 모습이 어디 드라마의 일이겠는가? 그래서 <잉여공주>를 보는 내내 웃프다.

 

 

잉여공주 김하니를 보자! 그녀는 인어였을 때는 잘 나가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가 괜히 인간을 사랑해서 안마녀의 약을 먹는 바람에 ‘100일 동안 진정한 사랑에 빠지지 못하면 물거품이 되는 저주를 받게 되었다.

 

 

 

 

인어공주 김하니가 제일 잘하는 것은? 바로 '먹는 것'이다! 단순한 먹방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모습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인어공주였던 그녀가 인간이 되고 '가장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녀가 대장금 못지 않은 '절대미각'을 선보이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눈길이 간다.-게다가 망가지기를 서슴치 않는 조보아의 연기 역시 인상적이다. 오늘날 여배우가 망가지는 것이 대세가 되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선보이는 경우는 거의 못 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녀의 열정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그녀는 나름대로 인간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결과는 어떤가? 그녀는 취업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처음엔 <잉여공주>에서 왜 그렇게 주인공인 인어공주가 먹는 것을 탐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점차 드라마를 보면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그녀가 살아있다는 존재의 증명이었다. 5화에서 도지용은 스스로에 대해서 똥만 만드는 잉여라고 자신을 비하한다. 그러나 인간의 먹거리는 김하니에겐 인간이 되기 전까진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소중한 무언가였다.

 

 

인간이 되면 꼭 하고 싶은 걸로 다른 것도 아니고 음식 리스트를 만든 그녀의 모습은 순수하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우리 삶에 대해 되돌아보게끔 만든다. 되돌아보면 <잉여공주>에서 모든 것은 먹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현명(온주완)의 라이벌인 권시경 쉐프는 직업이 말해주듯이 쉐프다. 안혜영이 인터넷에서 먹방을 보여주는 VJ를 하고, 안마녀가 타코야키를 파는 모습에선 먹거리를 통해서 <잉여공주>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유추하게 된다.

 

 

극중에서 진희경이 연기하는 홍명의 사장은 우연히 안마녀가 하는 타코야키 트럭에서 장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오늘 들어온 밀가루가 마음에 안 든다면서 물건을 팔지 않고, 그걸 모두 폐기처분해 버리는 안마녀의 모습은 프로의 모습이 무엇인지 생각하게끔 만든다.

 

 

 

 

물론 JH푸드는 고급 음식을 지향하고, 타코야키는 길거리의 음식이다. 그러나 그걸 먹는 행위와 만드는 이의 정성은 별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인어공주가 음식을 먹는 행위는 생명연장을 위한 것이자, 유희인 점은 그래서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100일이란 한정된 시간에서 그녀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 자체를 즐긴다. 그런 탓에 어떤 의미에선 그녀의 먹방은 슬프기까지 하다. 어떤 의미에선 취준생에게 먹는 행위는 그런 의미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게다가 그냥 즐기는 데 권쉐프가 감탄할 정도로 정확하게 맛을 인지하는 장면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장점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우리가 남과 비교했을 때 나은, 탁월한 점은 오히려 그런 것이 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물론 상당수의 취준생들은 컵밥을 비롯한 간단한 음식으로 위장을 채우고, 알바를 뛰고 스펙을 채우기 위한 각종 활동을 펼치니.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잉여공주>에서 잉여공주와 주변인물들이 펼치는 먹방은 오히려 가벼워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잉여공주>는 드라마이지 리얼리티가 아니다. 잉여하우스라는 가상의 셰어하우스에서 서로가 서로를 챙기고 위로해주는 그들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눈물겨운게 아닐까? 김하니가 인어공주란 사실을 알고 오히려 도와주고자 애쓰는 안혜영(김슬기).

 

 

 

오늘날 인간이 되지 못한 잉여들을 누가 이해하고 위로해줄 수 있을까? 그런 탓에 가상의 셰어하우스인 '잉여하우스'가 등장한 것이 아닐까? 취준생의 아픔을 취준생외에 누가 알겠으며, 누가 이해하고 위로해주겠는가? 그래서 그들이 잉여하우스에서 벌이는 모든 행위는 웃음과 함께 어딘가 눈물을 동반하는 것 같다.

 

 

화가가 되는 꿈을 가졌지만 결국 화가의 꿈도 포기하고 취준생이 되었지만 사랑했던 윤진아를 떠나보내야 했던 이현명(온주완) 등등. 잉여하우스에서 같은 아픔을 지닌 젊음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분발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모든 가치가 대기업 취업이 되어버린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그래서 대기업에 취업하면 어떻게 되는데?’라는 질문을 하기 앞서 제발 입사만 했으면!’하는 간절함 때문에 답답하고 안쓰럽기만 하다.

 

 

사랑도 취업을 하기 전엔 당당하게 할 수 없는 오늘날의 젊음을 인어공주가 잉여공주가 될 수 밖에 없는 판타지 드라마로 승화시킨 <잉여공주>의 이야기는 오늘날 취준생의 우울함을 나름 경쾌한 터치로 그리고자 애써서 그런지 더욱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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