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낙서장

사라진 던킨도너츠 매장

朱雀 2019. 12. 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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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도너츠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필자는 도너츠를 사랑한다. 정확히는 빵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가능하다면 삼시세끼 빵으로 때우고 싶을 정도로.

 

그러나 감당할 수 없게 늘어나는 뱃살과 소리 없는 내장 비만에 바로 항복을 선언했다. 지금은? 되도록 적게 먹도록 애쓴다. 예전엔 식사 후에 디저트로 먹었다. 물론 지금도 맘만 먹으면 도너츠 6개 정도는 순삭이다.

'DD'라는 테이크아웃 잔에 적혀 있는 이니셜만이 이곳이 예전에 '던킨도너츠' 매장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동생이 빵귀신인 나를 위해 사둔 것이었는데, 설마 앉은 자리에서 바로 먹어치울지는 몰랐다. 내 안의 흑염룡에 새삼 놀란 순간이었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더니. 너무 부드럽지도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초코렛을 입히고, 안엔 크림으로 가득 채운 도너츠들은 아메리카노와 함께라면? 몇개라도 먹을 수 있다.

 

스스로를 잘 아는 탓에 이젠 평일에는 최대한 먹지 않으려 한다. 도너츠를 좋아하는 탓에 서론이 길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던킨도너츠 매장이 있었다. 한땐 매일 아침 대신 모닝세트를 사먹었다.

 

치즈와 햄이 들어있는 치아바타를 따끈하게 데워서 아메리카노와 함께 하면 더할 나위 없었다. 혈관 가득 지방이 둥둥 떠다니는 아침을 그렇게 보냈었다. 또한 노트북을 들고 가서 몇 시간이고 집필을 하고, 근처 CGV에서 영화를 보기 전에 잠깐 대기하기도 했다.

 

근처에서 지인들을 볼 일이 있으면, 그곳에서 가볍게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최근엔 입맛이 고급(?)이 되어 갈 일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늘 그곳에 있었기에 모르는 사이에 그곳은 늘 거기 있었다.

 

10년 넘게 그곳에 있던 매장이 어느 날 철거했다. 처음엔 그러려니했다. 모든 것엔 끝이 있는 법이다. 매출이 떨어져서, 손님이 줄어서 등등 뭔가 이유가 있어서 매장이 철수했을 것이다.

 

내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정은 알 수 없다. 점장과 따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예전처럼 자주 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알바하는 분과 당연히 일면식도 없다. 그런데 묘하게도 뭔가 허전하다.

 

내가 나이기 위해선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를 구성하는 건 역시 기억을 빼놓을 수 없다. 앞서 말한 것들에 던킨도너츠 매장은 중요한 장소였다. 난 그곳을 보며 소소한 기억들을 떠올렸다.

 

부모세대가 말하는 실용성과는 백만 광년쯤 멀리 떨어진, 쓸데 없는 소소한 기억들. 그러나 때론 대입시험과 취업 같은 생의 변곡점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 더욱 나를 규정한다.

 

내가 보내는 1초들이 모여, 오늘날의 나를 규정하게 되니까. 지난 세월의 총합이 바로 나인 것을. 행복한 일, 화나는 일, 실수한 일, 짜증나는, 포기하고 싶은 일들이 모여서.

 

모든 것은 사라진다. 나도 그렇다. 누군가에게 부디 조금이라도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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