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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이야기

'1917' 전쟁의 끔찍함을 고발하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에 개봉한 영화 ‘1917’1차대전을 소재로 한다. 1차 대전에선 참호와 철조망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치를 떨 참호를 무려 3선으로 깔았다. 그 사이에 사이에 철조망을 깔고, 적의 돌격이 막힐 때쯤 기관총으로 상대군을 무차별로 살상했다.

 

당시엔 참호와 철조망을 뚫고 나갈 방법이 없었다. 비행기를 이용한 공중 지원은 상상도 불가능했고, 탱크 역시 아직은 조악해서 전장에서 큰 활약을 하질 못했다. 무기는 발전했지만, 아직 발전된 무기를 제대로 활용한 전술 교리가 없었던 탓에 이전 시대의 방법으로 무식하게 싸웠다.

덕분에 수십 만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아무런 의미없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그건 독일, 영국, 프랑스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런 탓일까? ‘1917’은 독특한 광경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첫 장면에서 풀밭에 누워 자는 두 병사의 모습은 일견 평화로워 보인다. 그런데 이내 병장에게 붙들려 장군에게 가는 도중에, 참호를 지나갈수록 상황은 비참해진다.

 

진창이 되버린 참호에 아무렇게나 기대 자고 있는 병사들 사이를 지나가면, 이제 공포에 질려서 어쩔 줄 몰라하는 병사들이 보인다.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에린 무어 장군의 명령에 따라 공격 중지를 메켄지 중령에게 전달해야 한다.

 

두 병사가 참호를 벗어나자마자 보여지는 광경이 처참하다. 말들이 죽어서 썩어가고 있고, 그 사이사이엔 인간의 시체를 찾는 일도 어렵지 않다. 시체가 참호 밖에서 썩어 나가는 광경은 끔찍하고 불쾌하다.

 

‘1917’은 철저하게 한 사병의 시선을 쫓는다. 그는 영웅이다. 우린 이미 그가 이 어려운 임무를 완수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겠지만.

 

‘1917’은 우리가 알던 전쟁 영화와 조금 결을 달리한다. 우리가 여태까지 본 전쟁 영화는 영웅이 모두를 구하거나, 적과 전투에서 선봉에서 활약을 하거나, 탈출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1917’은 전령이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기 위한 하루의 여정이다. 따라서 그는 임무를 완수해도 평화로운돌아갈 곳이 없다. 아직 1차 대전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독일군은 영화 속에서 무서운 암살자로 종종 등장하지만, 그들 역시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이라기 보단, 소모품적인 느낌이 강하게 든다. ’1917’은 스펙터클한 영상미를 보여준다.

 

주인공이 참호 속을 탐험하고, 알 수 없는 적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돌진을 하거나, 강물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기는 장면 등은 오직 큰 화면의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웅장함을 보여준다.

 

동시에 ‘1917’은 압축적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준다. 참호 속에 누워 있는 전우의 시체와 언제라도 호각이 들리면 죽음의 돌격을 해야하는 병사들의 모습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저래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천신만고 끝에 명령을 전달하지만, 메켄지 중령이 자조적으로 이 전쟁은 최후의 일인까지 죽어야 끝난다라는 식의 시니컬한 대사를 할 땐 정말이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1917’은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동시에 가진 전쟁대작이다. 극장에서 볼만한 값어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이런 엄청난 작품과 경쟁해서 아카데미를 수상한 기생충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