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열전

박준형의 식상한 코미디 '아롱이다롱이'가 서글픈 이유

朱雀 2009. 7. 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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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개그야>에서 현재 박준형이 두 개그맨과 함께 선보이고 있는 ‘아롱이다롱이’ 다소 무표정한 세사람이 허무개그를 펼치며 “지금이야!”를 외치며 율동을 하는 모습은, 그가 예전에 <개그콘서트>에서 선보인 ‘우비소녀’를 떠올린다. 왜 한 시대를 풍미한 개그맨이 자신의 작품을 다시 들고 나와야 했을까? 지나간 개그는 히트를 못 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텐데...


-이미지 출처: 다음 검색
상기 이미지는 인용목적으로 쓰였으며, 모든 권리는 MBC 방송사에 있습니다.



2008년 MBC <개그야>로 갈갈이 박준형이 옮겼을 때, 주변의 우려는 많았다. 과연 그와 패밀리(정종철, 오지헌)가 <개그야>를 <개그콘서트> 못지 않은 개그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을지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은 실패했다. 현재의 대한민국 개그 프로그램은 단순히 파워 개그맨 몇몇이서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들은 반면교사로 증명하고 말았다.

갈갈이 박준형이 누군가? 박준형은 <개콘>에서 ‘청년백서’를 통해 군문화에 찌들은 우리 남성들의 모습을 적절하게 찔려 표현했다. '우비소녀'에선 시대의 흐름을 읽어 허무개그를 도입했다. 우비를 둘러 입은 세 사람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은 극히 짧았으나, 그 촌철살인의 웃음은 실로 비수와 같았고 매우 신선했다. 아직도 그 코너의 진행자들이 ‘우와~’하는 특유의 소리를 냈던 건 기억한다.

정종철은 어떤가? 그는 얼굴만으로 사람을 웃기는 희대의 천재 개그맨이다. 입으론 너구리와 갤로그와 지하철의 이동 순간을 그려내는 그야말로 만능 개그맨이다. 그들이 함께 모여 펼친 개그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토마스를 찾으며 “무를 주세요!”를 외치고, 교련복을 입고 “하나!둘!”을 외치며, 무표정한 얼굴로 시청자의 뒷통수를 냅다 후려치던 그들의 개그는 가히 그 시대 개그의 절정이었다. 그 덕분에 그들은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엄청난 돈을 벌었고 엄청나게 유명해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개그는 철저한 소비위주의다. 개그맨들이 온갖 고생을 해내 짜내어 만든 코너는 금방 폭발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지만, 시청자들은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계속해서 “더! 더!”를 외친다.

특정 코너는 케이블과 인터넷 등으로 퍼져 재탕과 삼탕을 넘어 백탕이상이 되어버린다. 덕분에 개그맨의 에너지는 고갈되고, 신선함이 식상함으로 바뀌는 덴 이젠 채 한 달도 걸리지 않는다.

그런 세상에서 몇몇 사람의 힘으로 한 방송사의 대표 개그 프로그램을 <개그콘서트>와 맞먹는 혹은 그에 비견할 만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져 버렸다. <개콘>은 어떤 대스타가 떠나도 스스로 자가증식하는 수준에 올랐다. 시스템이 그렇고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은 서로 서로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오늘날의 <개콘>을 유지시키고 있다.

만약 지금 엄청난 인기를 끄는 박지선이 <개그야>등의 상대 프로그램으로 옮긴대도 결과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젠 개그도 혼자가 아니라 집단이 좌지우지 하는 시대에 와버린 것이다.

갈갈이 박준형의 새 코너인 <아롱이다롱이>를 얼마전 TV에서 보게 되었다. 두 소녀와 함께 무표정하게 서 있다가 이내 허무개그를 하고, “지금이야!”를 외치며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는 그들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그가 예전에 만들었던 <우비소녀>를 떠올리게 했다.

박준형을 뺀 두 여성 캐릭터가 조금 바뀌고 의상이 바뀌고 방송사가 바뀌었을 뿐. 이건 예전에 그가 만든 그 코너였다. 결국 하다하다 안되니 박준형은 스스로 자신의 개그코너중 최고라고 생각했던 <우비소녀>를 MBC에서 변주해 내놓은 모양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아롱이다롱이>는 재밌다. 볼만한다. <개그야>도 볼만한다. 그러나 <개콘>처럼 시청자들을 끌어당기고 열광하게 만들기엔 부족하다. 그게 뭔지는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아마 박준형이나 <개그야> 제작진이 알았다면 벌써 시도했으리라. 앞에서도 밝혔지만 개그도 이젠 집단창작이 아니면 어려울 만큼 지극히 정보집약적 산업이 되고 말았다.

항상 시대를 앞서가며 시청자에게 신선한 웃음을 안겨줬던 박준형이 <아롱이다롱이> 코너로 다시 찾아온 건 충격이었다. 소비위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선 결국 그도 바닥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니까.

안타깝다. 한 시대를 풍미했고 이끌었던 개그맨이 스스로의 인기코너를 다시 복제해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이.

개인적으로 사업적으로 박준형은 아마 성공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아롱이다롱이>란 코너를 들고 나온 순간부터 그는 실패한 개그맨이다. 아무리 그 코너가 재밌고 웃긴다고 해도 파급력은 거의 없을 것이다. MBC에서 방송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시청자들은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인 <우비소녀>를 몇 년 전에 보았기 때문이다. 요새 개그의 트랜드는 무엇보다 신성함이 생명력이다. 관객석의 즉각적인 반응이 시청율로 연결된 그 순간부터, 어쩌면 특정 개그 코너와 개그맨의 한계효용은  이미 엄청나게 짧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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