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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21세기 초강대국?! 71

중국 고속성장의 비밀은 무엇인가?

오늘날 중국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변화시킨 비결은 무엇일까? 그건 나에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뭔가 ‘미지의 것’ 같았다. 왜냐고? 생각해보라! 불과 1980년대만 해도 중국은 그저 ‘인구만 많은 못 사는 나라’에 불과했다. 1989년 중국을 찾은 이들에게 가로등도 별로 찾아볼 수 없으며, 배추와 전기톱을 함께 파는. 그야말로 라는 TV프로에 나올 법한, 우리는 상상조차 힘든 모순되고 이상한 나라였다. 당시의 중국을 두고 “20년내로 중국은 미국을 위협할 세계 초강대국이 될 것이라”라고 누군가 말했다면 “쯧쯧쯧”이란 소리를 듣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이 20년 만에 이렇게 엄청난 성장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 지도층이 엄청난 능력자들이어서? 중국 국민이 부자가 되고 싶어서? 중국은..

인터넷은 과연 중국을 구원할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2010년 10월 8일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선정되었다. 그러나 그는 물론이요, 그의 가족이나 친지들이 대리수상하러 나오지 못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노벨 평화상은 그렇게 끝내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쓸쓸히 퇴장해야했다. 2010년 수상자의 주인공은 바로 중국의 반체제 인사로 유명한 류샤오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수감과 석방이 반복되었으며, 2009년 12월 결국 국가권력 전복 혐의로 무려 11년형을 받고 다시 수감되었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그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내정간섭이다!’라고 반발하면서, 류사오보 자신은 물론 그 누구의 대리수상도 허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노벨 평화상 시상식장이 쓸쓸했던 것은 예정된 수순에 불과했다. 최근 출간한 는 그가 지난 2..

왜 중국은 점점 강해지고, 미국은 쇠약해지는가?

최근 읽은 의 결론부에서 ‘중국은 왜 강해지고, 미국은 왜 쇠약해질까?’라는 소제목을 뽑은 것을 보았다. 보면서 속으로 ‘이거다!’싶었다. 이처럼 섹시하고 눈에 띄는 제목이 있을까? 누구보다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라온 우리에게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흥은 몹시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사항이다. 이에 그 동안 읽은 책들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해보려 한다. 우선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고, 미국은 선거로 뽑힌 이들이 지배한다’를 꼽고 싶다. 중국은 사실상 공산당 1당 독재시스템이다. 반면 미국은 민주국가이기 때문에 선거로 대통령부터 상-하원의원까지 뽑는다. 미국은 선거제도 때문에 공직자들이 먼 미래를 내다보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사실상 매우 어렵다. 만약 캘리포니아 주지사라면,..

중국의 미래에 대한 편견과 오판들

최근 중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관련서적들을 찾아서 읽다보니 심각한 오류를 제법 발견하게 된다. 나 같은 초보자도 쉽게 문제를 찾는 걸로 봐서는,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첫 번째 이유는 중국의 미래에 대해 비관론이나 낙관론을 확실히 세워야 책이 잘 팔리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어떤 양심적인 학자가 ‘중국이 20-30년 내로 패권국이 될지 안 될지 모르겠다’라고 솔직히 적는다면 그 책을 살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 중국의 미래를 두고 많은 저자들이 낙관론이나 비관론을 날카롭게 세우는 것이리라.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중국의 양식 있는 학자들은 중국의 미래에 대해 지극히 어두운 전망을 내놓은 경우가 많은 데 비해, 서구유럽의 학자들은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허나 이런 경우..

패권국가 중국의 신(新) 조공제는 합리적일 것이다?!

‘조공’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몹시 치욕적인 말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중국 왕조에게 조공을 바친 게 사실이다. 삼국시대에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했으나, 통일신라를 거치면서 종속관계로 변하게 되었다. 특히 조선왕조에 들어서면 청나라때 병자호란을 겪게 된다. 남한산성에서 피신했던 인조는 결국 항복하면서 삼전도에서 청황제를 향해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절하는 ‘신하의 예’를 취하며, 치욕을 참지 못해 피가 날 정도로 이마를 땅바닥에 부딪치며 울분을 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 필자의 견해론 이때가 우리 역사상 왕이 경험한 치욕스런 순간이 아닐까 싶다. 몽고의 경우엔 우리가 강화도로 피신해 30년이나 항쟁했기 때문에, 원황실에서 인정하고 부마국으로 삼을 정도였으니 처지가 전혀 다르다 하겠다...

한국전에서 미군은 왜 중공군에게 밀렸을까?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6.25전쟁에 중공군이 참전할 당시 상황은 전적으로 불리했다. 우선 중공군은 해군과 공군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오로지 순수하게 육군으로 막강한 미군에 대항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처음엔 원조를 약속한 소련은 말을 바꿔 발을 빼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중공군은 매튜 리지웨이가 사령관으로 오기 전까지 압록강과 청천강에서 미군을 대파하며 순식간에 전세를 역전시켰다. 만약 누군가가 중공군이 미군을 밀어낼 것이라 이야기했다면 비웃음을 당했을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우선 당시 중공군이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을 겪은 실전 경험이 그야말로 풍부한 전력이란 사실을 우선 상기해야 한다. 중공군은 미국의 지원을 받던 국민당과 달리 ‘자력갱생’해야 했다. 이 상황에서 중공군은 (미국조차 쩔쩔맨..

중국은 절대 미국을 뛰어넘을 수 없다!

인구 약 13억 (최대 15억 이상 추정), 연평균 10%대의 높은 성장률, 2조 8500억 달러가 넘어서는 외환보유고. 오늘날 중국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수치다. 굳이 이런 수치를 대지 않더라도, 미국이 얼마 전 중미 정상회담 때 보여준 쩔쩔매는 듯한 모습과, 희토류로 일본을 굴복시킨 사례들을 떠올리면 그 엄청난 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2020년경이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초강대국이 되리란 말까지 나오고 있으니 이젠 ‘공포심’마저 생겨날 지경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보자. 정말 중국은 2020년경이면 미국을 넘어선 초강대국이 될 수 있을까? 정말 중국에겐 그만한 저력이 있을까? 의 저자 랑센핑 교수는 G2라 불리우는 오늘날 중국의 위상은 너무나 지나치..

마오쩌둥이 한국전 참전을 결심한 이유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는 마오쩌둥 -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유치원생이 대학생에게 싸움을 건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주변 사람들은 유치원생을 웃으면서 말릴 것이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중공군이 6.25 전쟁에 참여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해군과 공군이 없고 변변한 무기도 없는 중국이 (그들이) 따르는 소련보다 더 강대한 나라인 미국과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자살행위’ 이상으론 보이질 않았다. 나이를 먹고 책을 찾아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을 겪으면서 잿더미가 된 중국 공산당이 국가예산의 50% 이상과 백만명이 넘는 군사력은 동원한 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였다. -만약 그 당시 장제스가 대만에서 나와 본토를 공격했다면 상황은 어떻게 변..

장제스의 국민당 몰락이 미국에 일으킨 엄청난 파장

장제스 총통 -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요즘 읽고 있는 는 무려 1,000페이지가 넘어가는 대작이다. 무엇보다 천 페이지가 넘는 육중함 덕분에 위기의 순간에는 이리저리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 다음은 뉴저널리즘의 창시자로 일컫어지는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무려 10년간에 걸쳐 한줄 한줄 집필한 덕분에 6.25전쟁에 대해 입체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미국에게 6.25전쟁은 어떤 의미일까? 를 보면 인상적인 구절이 하나 있다. 그가 한 주립도서관을 찾아갔는데, 베트남 관련 서적은 88권정도 있었지만, 정작 6.25전쟁에 대해선 겨우 4권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는 단적으로 미국이 6.25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기억하기 싫..

중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기 소르망은 에서 중국의 미래에 대해 네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원래 그는 미래에 대해 예측하고 싶어 했으나, 중국 내부의 사정이 너무나 복잡하고 변수가 많아 ‘예언’ 대신 시나리오로 대신한 것 같다. -자신이 노스트라다무스가 아니라 학자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는 부분이랄까?- 첫 번째 시나리오는 혁명이다! 기 소르망은 현대 중국에서는 두 번의 혁명이 있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1911년 신해혁명, 두 번째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한 것이다. 그는 현재 중국 내부에 엄청난 불만이 누적되어 있다고 진단하고, 이전까지 신비주의 종교가 그런 불만을 폭발시켰다고 전한다. -아마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허약한 청왕조를 멸망직전까지 몰고 간 태평천국이나, 서구열강에 대해 말도 안되는 신비주의로 반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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