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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원 4

손문과 신해혁명이 근대중국을 망쳤다?

대만과 중국에서 모두 국부로 추앙받는 손문 -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최근 읽고 있는 에 재밌는 주장이 있어서 여기에 소개해볼까 한다. 1839-1842년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이후로 중국은 100년이 넘도록 암흑기를 지나왔다. 따라서 이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이 ‘양이의 기술만 들여오자’는 양이파와 ‘기술뿐만 아니라 제도까지 들여오자’는 변법파, 그리고 ‘서양식으로 모든 것을 갈아엎자’라는 혁명파로 나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흔히 우리는 당시 청나라가 부정부패했고, 과학기술이 서구에 비해 너무 뒤떨어져서 서구열강의 먹이감이 되고, 끝내는 일본에게 절반 이상 먹히는 수모를 겪었다가, 1949년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선언하고 나서야 혼란기를 멈추게 되었다고 알고 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손문조차 어려워한 만주군벌 장작림

장작림(장쭤린) -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중국 근대사를 보면,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시대가 있다. 바로 1912-1949년까지의 ‘군벌시대’다. 우린 흔히 1911년 신해혁명이후, 손문의 국민당 정부와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이 중국을 이끈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이는 약 40년에 이르는 혼란기에 대해 관심이 없는 탓이 크다. 당시 중국의 영토는 현재와 엇비슷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중앙의 권력이 공백이 생기면, 각 지역의 권력자들이 실제로 지역의 ‘왕’으로 통치하는 형편이 되었다. 일례로 1911년 신해혁명을 성공한 손문이 중화민국의 임시대총통이 되었다가 원세개(위안스카이)에게 총통직을 넘겨준 것은, 그가 막강한 군벌이었기 때문이다. 원세개는 1915년 시대를 잘못 해석하고 자신이 직접 황제가 되..

왜 중국은 100년이나 아편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아편의 재료가 되는 양귀비 -사진출처: 위키백과 중국 관련도서를 읽으면서 한 가지를 강력하게 사로잡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바로 ‘중국은 왜 아편에서 벗어나는데 100년이 넘게 걸렸을까?’였다. 우리가 아는 아편전쟁은 1842년 난징조약을 맺으면서 청나라에게 굴욕과 더불어 ‘아편’이 중국에 공공연하게 나도는 계기가 되었다. 무역에서 흑자를 보기 위해 아편을 뻔뻔하게 유통시킨 당시 서구열강의 태도도 놀랍지만, 그 이후 아편이 중국에 일으킨 문제를 보면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아편은 중국인들을 중독시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기 전까진 맹위를 떨쳤다. 1880년대는 4천만명이 흡연자고 전체 인구의 5%인 2천만명이 ‘중독자’가 될 지경이었으니 그 폐해는 이루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아편 때..

중국이 엄청난 외환보유고를 쌓아놓는 이유

중국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외환보유고가 무려 2조8500억 달러에 달한다. 2위인 일본이 약 1조 달러 인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액수다. 개인적으론 왜 이렇게 중국이 미련할 정도로 외환보유고를 쌓아놓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흔히 외환보유고는 ‘많이 쌓을수록 좋은 거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경제적으로 너무 많은 외환보유고는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기 쉽다. -대외자산과 대외부채를 동시에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중 무역적자에 허덕이는 미국의 입장에선 ‘위안화 절상’을 요구할 수 있는 좋은 핑계거리다. 중국 지도부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데도 왜 이토록 높은 외환보유고를 고집하는 것일까? 관련기사: 中 12월 기준 외환보유고 2조8500억弗 나는 그 이유를 지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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