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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쉐량 2

장학량은 왜 장개석 총통을 감금했는가?

청년 시절의 장학량 -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역사는 때때로 한 사람에 의해 큰 흐름이 바뀔 때가 있다. 중국의 근대사는 여러 인물들로 인해 그 흐름이 크게 바뀌었지만, 그 중에서도 장개석과 모택동의 명운을 크게 바꾼 사건을 들라면 아마도 1936년 12월 12일 벌어진 ‘서안사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공산군 토벌을 격려차 온 장개석을 장학량이 섬서성에서 체포하여 감금한 사건으로 중국 전체를 들었다 논 일이었다. 이는 당시 장학량이 남경정부의 부사령관이며, 장개석의 부하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하극상’이란 초유의 사태다. 게다가 당시 장개석이 국민당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사정을 고려했을 때, 그야말로 ‘목숨을 건 도박’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야기는 장학량의 아버지 장작림이 폭사를 당..

손문조차 어려워한 만주군벌 장작림

장작림(장쭤린) -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중국 근대사를 보면,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시대가 있다. 바로 1912-1949년까지의 ‘군벌시대’다. 우린 흔히 1911년 신해혁명이후, 손문의 국민당 정부와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이 중국을 이끈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이는 약 40년에 이르는 혼란기에 대해 관심이 없는 탓이 크다. 당시 중국의 영토는 현재와 엇비슷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중앙의 권력이 공백이 생기면, 각 지역의 권력자들이 실제로 지역의 ‘왕’으로 통치하는 형편이 되었다. 일례로 1911년 신해혁명을 성공한 손문이 중화민국의 임시대총통이 되었다가 원세개(위안스카이)에게 총통직을 넘겨준 것은, 그가 막강한 군벌이었기 때문이다. 원세개는 1915년 시대를 잘못 해석하고 자신이 직접 황제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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