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전미선의 신들린 연기, ‘제빵왕 김탁구’

朱雀 2010. 6. 1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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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터 KBS에선 수목드라마로 <제빵왕 김탁구>를 방송하고 있다. <제빵왕 김탁구>는 제목만 들으면, 왠지 명랑드라마같은 느낌을 팍팍 받는다. 허나 실제 방송을 보면 무슨 막장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다.

거성의 회장인 구일중(전광렬)은 아내 서인숙(전인화)가 거듭 딸을 낳자, 술기운에 식모인 김미순(전미선)과 관계를 가져 아들을 가지려 한다. 서인숙은 거성가에서 자신의 입지를 단단하게 하기 위해, 전략상 아들을 낳아야 하나, 자신과 남편의 사주에 아들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비서실장인 한승재(정성모)를 유혹하고 동침해, 임신하는 데 성공한다.

결국 부부가 아들을 낳겠다는 명제하에, 서로 불륜을 하고, 거기에 더해 한승재가 서인숙의 부탁을 받고 김미순을 낙태하려다 놓치는 식의 이야기 전개는, 마치 배경인 70-80년대 만큼이나, 시대를 역행한 이야기 전개에 그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그래도 <제빵왕 김탁구>가 볼만한 것은, 전광렬-전인화-전미선 같은 기존 연기자들의 열연이 진부한 스토리라인을 덮고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제빵왕 김탁구> 첫화가 방영되었을 때, 시청자들은 악녀로 돌아온 전인화의 연기에 열광했다.

전인화는 오직 아들을 낳겠다는 욕심 하나로, 첫 사랑이자 이젠 남편의 오른팔인 한승재를 유혹해 자신의 마음대로 이용하늠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줘 깊은 인상을 남겼다.

허나 2화로 넘어가면 가장 큰 활약을 펼치는 인물은 바로 김미순 역의 전미선이다. 그녀는 오늘날 가치관으로 보자면,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어린 시절 사고로 부모를 잃고 거성가의 식모로 자라온 그녀는, 술에 취한 구일중(전광렬)이 자신에게 키스를 할 때 결국 뿌리치질 못한다. -아마 그녀는 사실 구일중을 사랑한 모양이다-

 

그녀는 전근대적인 여성이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임신하게 되지만, 막상 아이를 임신하게 되자,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다. 한승재가 병원에 데려와 낙태수술을 받게 하려하자, 과감하게 도망친다. 그리고 만삭이 되어 잡혔을 때는 눈물로 호소해 한승재가 놔줄 수 밖에 없게끔 만든다.

이후 혼자서 12년간 사내아이를 키워내는 그녀의 모습은 눈물겹다. 남의 집, 그것도 사글세를 살면서 주인집의 눈치를 보며 삯바느질로 아들을 키워가는 그녀의 모습에선 우리의 어머니 세대의 사랑과 억척스러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아들 김탁구가 이불에 지도를 그리자, 혼내려고 집안 구석구석 쫓아가면서도, 그 순간이 지나면 누구보다 자애롭고 따뜻한 눈길로 봐주는 어머니. 주인집 아들을 때려, 주인집 여자가 혼내려 하자, 빗자루를 들고 쫓아가서 오히려 말릴 정도로 상황을 만들어 놓고는 막상 아들과 둘만 남자, 아들의 머리를 살피며 다친 곳은 없는지 살피는 어머니.

 

어제 방송된 3화에서 전미선은 강하고도 약한 상반된 이미지의 어머니상을 너무나 완벽하게 그려냈다. 12년 동안 김탁구를 키우기 위해 도망자의 삶을 살아온 그녀는, 아들이 ‘더이상 도망다니기 싫다’고 하자, 죽을 결심으로 거성가에 찾아온다. 그리곤 천신만고 끝에 구일중과 재회해 아들을 맡긴다.

그 과정에서 한승재가 협박하자,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을 운운하며 당당히 응수한다. 아들을 위해서는 한없이 강해지는 어머니상을 그대로 구현해낸 것이다.

그러나 문밖으로 나가자, 그녀는 문에 기대앉아 눈물을 흘린다. 아들을 호랑이굴에 놓고 온 것이 안타깝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안되서’ 서러워한다.

 

전미선이 연기하는 김미순은 어떤 의미에서 현대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녀의 사고방식이 자유분방하고 개성적인 오늘날 사고방식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미선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을 준다. 거기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상’을 구현해내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선 기꺼이 다른 이에게 머리를 숙이고, 심지어 무릎까지 꿇을 수 있는 어머니.

내 자식은 ‘금덩이’보다 더욱 소중히 여기고, 언제나 ‘미안하다’라고 끝없이 말하는 그녀. 항상 잠자고 있으면 머리맡을 쓰다듬어 주시며 한없이 자애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그녀. 여자일때는 한없이 약하지만 자식을 위해서는 투사로 기꺼이 변할 수 있는 그분. 바로 그런 우리 시대의 희생적이고 강인한 어머니상을 전미선은 너무나 완벽하게 구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예고편을 보아하니 4화에서 전미선은 결국 거성가의 비서실장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모양이다. 비록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너무나 뇌리에 선명하게 박히는 멋진 연기를 보여준 그녀가 어떻게 멋지게 퇴장할지 기대되기 그지 없다. 대본을 뛰어넘는 연기의 힘! 지금 전미선은 말은 쉽지만, 너무나 구현하기 어려운 그것을 브라운관에서, 우리 눈앞에서 똑똑히 실행에 옮기고 있다. ‘신들린 연기’란 말 외에 그녀의 연기에 대해 뭐라고 찬사를 던져야 좋을지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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